멈춤은 멈춤이 아니었다
나는 경력이 조금 특이하다.
해외 생활, 임신과 출산으로 3년 반의 공백이 있었고,
둘째까지 출산하고, 출산한 지 얼마되지 않아 다시 일을 시작했으니까.
사실 재취업을 알아보던 그땐 둘째가 생길 줄도 몰랐다.
한국에 돌아올 계획이 잡히자, 미리 면접을 봐둔 곳이 있었는데
면접을 마치고서야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입사가 어렵겠다고 정중히 양해를 구했지만,
외국계 회사였던 그곳에서 나를 끝까지 고집한 사람이 있었다.
면접관이었던 미국 매니저였다.
“그때 당신이 종이에 수식을 써가며 설계를 풀어나가던 걸 보고,
‘아, 이 사람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는 훗날 그렇게 말했다.
그렇게 들어간 회사는 내 인생 마지막 설계 엔지니어 직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채용이 많이 늦어진 부분에 대한 미안함과 낯선 어색함이 있었지만,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소소한 농담에 부장님이 크게 웃던 순간,
묘하게 얼어 있던 공기가 풀리던 게 기억난다.
그 뒤로는 동료들과 빠르게 가까워졌고,
지금도 연락할 만큼 좋은 사람들이었다.
그때의 나에겐 일보다 더 큰 과제가 하나 있었다 — 육아.
아직 어린 둘째는 시댁에서 봐주셨고,
첫째는 어린이집에 다녔다.
나는 7시 출근, 4시 퇴근
남편은 9시 출근, 6시 퇴근.
우리는 늘 눈치를 보며 하루를 맞바꿔 썼다.
아이들은 자주 아프고, 회사에서는 그걸 이해해주는 눈이 많지 않았다.
어느 날, 지사장이 나의 빠른 퇴근시간에 대해
“Looks not good.”
이라 했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마음이 무너졌다.
그때 함께 일하던 선배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니가 늦게까지 남아 있으면 불편해.
업무도 완벽히 마무리하고 가는데 그런 말 신경 쓰지 마라.
회사가 너를 선택했듯, 너도 회사를 선택한 거야.
그러니까 눈치 보지 말고, 당당하게 퇴근해.”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그 말이 없었다면, 나는 아마 버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 한계가 왔다.
일주일 간격으로 아이 둘이 잇따라 입원했다.
열이 떨어지지 않아 병원과 회사를 오가던 그 시절,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는 걸까.’
경제적인 이유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공허함이 마음을 채웠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그때, 회사에서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나는 고민하지 않았다.
그다음 날, 조용히 사직서를 냈다.
그렇게 나는 정말로 멈췄다.
현실의 책임과, 나 자신 사이에서 끝없이 흔들리던 시간을 멈춰 세웠다.
손끝에 남은 설계의 감각이 아직 따뜻했지만,
그보다 더 소중하게 지켜야 할 온기가 있다는 걸,
나는 정확히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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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이야기로 흐르다
토요일 오전 9시.
5회. 퇴사 이후, 나의 질풍노도
by Mokh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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