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년의 약속>은 어찌 됐느냐고요?

by 전여래

남편 : 햄버거와 라면을 줄이겠습니다.

아내 : 과자와 초콜릿을 줄이겠습니다.


남편 :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아내 : 옷을 아무 데나 던져두지 않겠습니다.


남편 : 1주일에 두 번 이상 운동하겠습니다. 함께 산책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내 : 올빼미 습관을 고쳐보겠습니다. 늦어도 2시 전에는 자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편 : 가끔은 당신이 좋아하는 독립 영화도 함께 보러 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아내 : 가끔은 당신이 좋아하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남편 : 당신이 함께 길을 걷다 노래를 부르더라도 창피해 하지 않겠습니다.

아내 : 노래방에서 당신이 일본 만화 주제가만 부른다고 구박하지 않겠습니다.


남편 : 짜증이 나더라도 일단 한 번 더 생각한 뒤 내겠습니다

아내 : 화를 한 번에 터뜨리지 않고 조금씩 나눠서 내겠습니다.


<백 년의 약속>이라는, 썩 거창한 제목을 단 이 짧은 글은 결혼식에서 남편과 내가 성혼선언문 대신 읽은 우리만의 결혼 맹세다.

이나영 원빈이 들판에 가마솥을 내걸기 전이라 보리밭 결혼식 같은 건 생각도 못했고, 순전히 할인 때문에 남편 대학 동문회관으로 식장을 정한 터라, 결혼식 자체만큼은 재미있게 하고 싶었다.

아래 위 시뻘건 한복을 입고 뒤에 록밴드를 세우고 신디사이저를 치면서 직접 축가를 부른 뒤, 사물놀이패를 불러 어른들을 덩실덩실 춤추게 하면서 이은결이나 최현우를 불러 신랑을 없애버리……. 이렇게 저렇게 야심찼던 나의 결혼식 계획은 남편의 침울한 한 마디에 사그라들고 말았다.

“제발… 평범하게 해요.”

예식장이 평범하니 식 자체는 비범하기 바라는 나와, 평범한 식장에 뜬금없는 파격이 웬말이냐는 남편이 팽팽히 부딪치다가 결국 헤겔이 이겼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느니 어쩌느니 한 헤겔의 말대로, 동문회관이란 평범한 형식에 내가 궁리한 모든 이벤트들은 영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빨간 한복도, 록밴드도, 사물놀이도, 마술사도, 혼을 담은 신부의 축가도 없이 지극히 평범하게 진행되는 식이라니. 무난하게 시작해 무던하게 끝나버리는 결혼식이라니, 눈물 나도록 슬펐다.

“무슨 결혼식이 이래. 재미 하나도 없어.”


그렇다. 재미, 오직 재미! 죽어도 재미! 내 삶의 이유이자 유일한 목적인 재미! 결혼식 주체는 난데, 정작 내가 재미없는 결혼식이라니, 상상만으로도 나는 세상없이 우울해졌다.

외부 섭외가 힘들면 내 선에서 뭐라도 해볼까? 신랑을 슬쩍 자빠뜨릴까? 아니면 내가 드레스를 밟고 벌러덩 넘어질까?

내겐 성공이나 자아실현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는데, 그건 바로 ‘누군가를 웃기는’ 것이다. 가끔 웃기고 싶다는 열망이 지나쳐 웃겨야 한다는 강박이 되고는 하는데, 마누라의 야망을 정확히 꿰뚫어 본 남편이 다시금 경고를 날렸다.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아무것도!”

에이, 쓸데없이 예리한 넘. 끓어오르는 개그 본능을 억누르며 생각해낸 것이 바로 맹세문 읽기였고, 이것만큼은 남편도 오케이해주었다. (지도 양심이 있으면 이것까지는…….)

상대가 고쳐주기 바라는 점들을 받아 적어 넣고 빼고, 읽기 쉽도록 문장을 다듬으며 몇날 며칠 피, 땀, 눈물로 뽑아낸 <토황소격문> 이래 희대의 명문.

맹세를 읽는 동안 어른들은 잔잔하게 미소 지었고, 친구들은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그 뒤 열린 결혼식에서 우리의 맹세를 벤치마킹한 사례를 심심찮게 보았으니, 나름의 흥행 성공한 것 같아 두고 두고 뿌듯했다.


아마도 그날 하객 중에는 우리를 처음 본 사람도 있었을 텐데, <백 년의 약속>을 통해 신랑신부가 얼마나 모자란 사람들인지 대충이나마 알게 됐으리라.

햄버거와 라면을 좋아하고, 분리수거에 관심 없고, 운동이라고는 쥐뿔도 안 하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 환장하고, 일본 만화에 푹 빠진 오타쿠에, 짜증까지 많은 신랑이라니!

설상가상 그 나이 먹도록 과자 나부랭이나 좋아하고, 아무 데나 옷을 던져두고, 몹쓸 야행성에, 길 가다 뜬금없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감정기복이 널을 뛰는 신부라니!

지나고 보니 <백 년의 맹세>는 우리 부부의 결함을 만천하게 까발리는, 상당히 부끄러운 이벤트였지 뭔가. 그렇다면, 수백 명 앞에서 진지한 얼굴로 또박또박 읊은 맹세들을 우리는 잘 지키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맹세요? 무슨 맹세요?’랄까. 헤헷.

남편은 여전히 햄버거와 라면을 좋아하고, 여전히 분리수거에 서툴다. 나는 과자와 초콜릿은 줄였지만 젤리라는 생의 동반자를 뒤늦게 만났고, 쌓을 수 있는 곳마다 옷을 쌓아두고 있다.

남편은 여전히 블록버스터를 즐겨 보고, 나는 여전히 영화관에서 한국 영화 찾아보는 낙에 산다. (작년에는 <찬실이는 복도 많지>, 올해는 <세 자매>가 단연 최고였다.)

그럼에도 맹세를 완전히 잊지는 않아 잊어버릴 만하면 한 번씩 바꿔보려 노력하고, 서로가 그 노력을 가상하고 어여삐 여겨준다. 그거면 되지 않을까? 백 세까지 계속 노력하다 보면 구십구 세쯤에는 완벽해질 수 있지 않을까? 헤헷.


(결혼식 이야기 나온 김에, 축가를 불러준 블루스 가수 ‘씨 없는 수박 김대중’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후배 대중이는 결혼식 얼마 뒤 지상파 방송에 첫 출연했는데, 그 방송이 무려 <유희열의 스케치북>이었고, 시부모님 성당 분들이 ‘아들 결혼식에서 축가 부른 가수, TV에 나오던데요?’ 알은체를 많이 하셨단다. 내가 선사하려 했던 재미를 대중이가 드렸으니, 두 배로 고마워해야 마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