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막힌 도로에 음악이 울려퍼지는 것 같은 영화
꽉 막힌 도로에 음악이 울려퍼졌다. 흥에 겨운 사람들이 차 위로 올라가 춤을 췄다. 찡그리는 사람도 바쁜 사람도 없었다. 그 도로에 있는 모두가 신이 났다. 요란하고 웅장해서 놀이공원 퍼레이드를 보는 기분이었다. 프롤로그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은 “와, 돈 진짜 많이 들었겠다” 였다.
미아(엠마 스톤)와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이 우연히 만났다. 동화 같은 씬이 지나갈 때마다 이별이 다가오는 듯 했다. 특히 그라데이션 효과를 준 것 같은 하늘을 배경으로 탭댄스를 출 때, 그리피스 천문대에서 허공에 떠올라 별들에 둘러싸였을 때 그랬다. 현실에 동화가 펼쳐질 일은 거의 없고, 미미한 확률에 기대 둘의 해피엔딩을 점칠 수는 없었다.
결국 둘은 헤어졌다. 미아는 헐리우드에 입성했고, 세바스찬은 바를 운영하며 재즈를 연주했다. 미아는 새로운 가정을 이뤘다. 멋진 남편이 있었고 화려한 집이 있었고 아이도 있었다. 세바스찬은 미아와 함께 꿈꾸던 자리에서 계속 피아노를 쳤다. 바 이름은 미아가 추천해줬던 이름이었다. 미아에게는 세바스찬이 없었는데, 세바스찬에게는 여전히 미아가 있었던 것이다. 파티에서 두 사람이 재회했던 날이 떠올랐다. 사실 세바스찬은 언덕을 오를 필요가 없었다. 미아가 본인의 차를 타고 떠난 후, 세바스찬은 같이 걸었던 길을 혼자 되돌아왔다. 그의 차는 파티장 앞에 있었다.
미아가 남편과 세바스찬의 재즈바에 들어섰다. 세바스찬이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다. 미아는 자문한다. ‘우리가 그때 헤어지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우리가 조금 나중에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음악이 흐르는 내내 미아의 상상이 이어진다. 미아의 상상 속에서 둘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다. 음악이 끝났고 미아의 상상도 끝났다. 바를 나서는 미아와 무대 위의 세바스찬이 서로를 바라봤다. 슬펐다. 세바스찬이 계속 피아노를 치고 미아가 세바스찬에게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지금 미아 옆에 있는 사람보다 세바스찬이 미아를 훨씬 미아답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미아는 바를 나섰다. 세바스찬은 또 혼자 남았다. 현실이다.
'라라랜드'는 꽉 막힌 도로에 음악이 울려퍼지는 것 같은 영화다. 있을 수 없는 일을 지나치게 예쁘게 그려서, 그 일이 진짜이길 바라게 한다. 현실은 사방 빵빵 대는 고속도로인데.
누군가는 인생영화라고 했지만, 누군가는 발리우드 같다고 했고, 누군가는 흐름이 너무 느리다고 했다. 인생은 타이밍이다. 미아와 세바스찬의 타이밍이 좋지 않았던 덕분에 나는 라라랜드를 제때 만날 수 있었다. 인생영화까지는 아니지만,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영화였다.
한 친구의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나와 같은 마음을 읽은 적이 있다. 영화관을 나와 찬바람을 맞으며 딱 한가지를 바랐다. 바에서 세바스찬을 바라보던 미아의 표정은 죽을 때까지 지을 일이 없기를,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