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박사 Jun 09. 2020

코로나 19 이후 미얀마 이모저모

 고마해라 마이 무따 아이가, 코로나 니도 이제 좀 들어가라...


입으로 무지개를 토하며 국제관계학 전공시험을 준비하던 4월 초, 같은 지도교수님 지도 아래 코넬 대학교에서 포닥을 하는 아저씨한테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내용인즉슨, 3월 말부터 미얀마에 코로나 19 확진자가 늘어나고 있으니 미얀마 정부가 코로나바이러스에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정리해 달라는 부탁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너무 정신 없어서 안 물어봤지만, 모르긴 몰라도 당시 연구팀에 언론 문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저나, 포닥 아재나, 지도교수님이나 미얀마를 수년간 연구를 해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기승전결이 머릿속에 그려진 채 조사를 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내전 덕분에 나라 전체에 지원을 할 여유가 없는 정부, 굉장히 낙후된 의료시설, 그리고 빈랑*을 꼬독꼬독 씹고 뱉는 문화 덕분에 비말 감염 최적의 조건. 코로나 19 전파에 퍼펙트 스톰이 있다면 아마 미얀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미얀마에선 꽁야(ကွမ်းယာ)라 불리는데, 빈랑나무 잎사귀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빈랑 열매 등을 넣고 돌돌 말아 씹습니다. 꽁야를 좋아하는 친구들의 말에 의하면 알싸하면서도 떫은맛이 올라온답니다.

다 좋은데 씹을 때 입에 고이는 빨간 침을 바닥에 찍 뱉습니다. 꽁야 씹는 아저씨들을 지켜보고 있으면 이거 뱉고 싶어서 꽁야 씹나-싶을 정도로 아주 시원하게 잘 나갑니다. 가끔 지나가다 운이 나쁘면 그 침에 맞기도 합니다(...) 뱉은 아저씨도 놀라고 나도 놀라고...


그런데 조사를 하다 보니 미얀마 정부가 필사적이지만, 굉장히 효과적으로 바이러스 전파를 막고 있었던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WHO와 함께 협업하며 최초 확진자가 나오자마자 발 빠르게 접촉자 추적을 완료하는 건 물론, 부족하나마 지정 치료시설을 각 지역에 빠르게 선정하고 치료기구와 의료물품을 모아 배치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한국처럼 정말 이상적인 방법으로 확산을 막은 건 아니기 때문에 양곤, 만달레이 등 대도시엔 저녁 외출금지령이 내려지고, 격리기간을 의무 격리, 자가격리를 합쳐 징역살이 28일(!)로 늘리는가 하면, 구 단위로 격리를 실시하기도 하는 등 "그때 그 시절"을 연상케 하는 조치도 시행되었습니다.


하여튼 식겁할만한 대처와 참 발 빠르다 싶었던 대처 덕분에 미얀마는 지금도 누적 확진자가 240명대로, 걱정과는 다르게 방역에 큰 성공을 거두고 있으며 일상으로 복귀하고 있답니다.


근데 그 일상에 제가 없네요... 후. 지금쯤 저도 미얀마에서 장맛비 쫄딱 맞으며 공부하고 있어야 하는데, 제가 사는 캐나다는 아직 바이러스 확산이 잡히지 않아서 아마 올여름은 집과 (학교 문을 여는 대로) 독서실에서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아쉽기 때문에 코로나 19가 빠르게 퍼지던 시절 미얀마의 이모저모를 모아보며 아쉬운 마음을 달래 보겠습니다.



1) 2020년 띤쟌 전격 취소


띤쟌(သင်္ကြန်)은 보통 4월 초중순 즈음에 있는 미얀마 최고 명절로 우리나라 설날에 해당하는 명절입니다. 방생을 하고, 시카카이 물로 머리를 감는 등 여러 가지 전통 풍습이 있지만, 고향에 돌아가 친지들과 시간을 보내는 걸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답니다.


서로 물을 뿌리며 새해를 맞아 액운을 씻겨내는 풍습의 스케일이 주체 못 할 정도로 커져 대도시에서는 지역 유지들이 골목골목에 플랫폼을 지어 소방호스 등으로 물을 뿌리고 음악을 틀며 남녀노소 관계없이 모두 달리는(?) 모양새가 연출됩니다. 왜, 전에 방영했던 배틀 트립 미얀마 편에 나왔었지요? 보통 EDM을 트는데, 정말 해 뜰 때부터 해 질 때까지 움쓰 움쓰 하는 소리에 집 바닥이 울립니다.


그림이 점잖아 보이는 건 그저 EDM 울리는 소리는 그림으로 옮기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3월 말에 첫 확진자가 나오고 지역사회에 스멀스멀 전파되기 시작하자 띤쟌 기간 자택 대피령이 내려지고 공무원들은 휴가가 전부 취소되는 등 거의 명절이 취소되다시피 했습니다. 이때 즈음해서 미얀마 정부가 저소득층에 식량배급을 하고 집에서 에어컨 맘 편히 켜시라 전기세를 감면하는 등 여러 가지 혜택을 줬는데... 그럼 뭐합니까... 집에 갇혀있는데...


이때 즈음에 양곤 인세인 구역에서 종교행사를 하다 집단감염이 발생했는데 제 친구들 중 제일 마음씨 착한 친구인 '수'마저도 가택연금을 방불케 하는 상황에 지치다 못해 "이 시국에! 머릿속에 국수만 가득 차 가지고!" 등 품위 있는(?) 말을 쏟아내며 격분할 정도로 띤쟌 취소는 미얀마 사회에 큰 아픔(...)을 안겼습니다.




2)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화

시사만화가 모 트윈(မိုးသွင်) 작품입니다. 사실 이거 올리고 싶어서 글을 닦았습니다..ㅋㅋ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어느 정도 확산세가 잡히자 미얀마 정부가 비말 전파를 막기 위해 실외에서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하고, 마스크 착용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5천짯 (한국 돈으로 대략 5000원 정도) 벌금을 매기기도 했습니다. 위 만화와 같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부가 낸 법을 과연 사람들이 순순히 따를까(...)에 고개를 갸우뚱하면서도, 일단은 "그럼, 당연히 그래야지!" 하며 반기는 분위기랍니다.


다만 대졸 초임 월급이 30만짯(대충 30만원) 언저리인 나라에서 벌금 5천짯은 실제로 자의던 타의던 법을 어길 가능성이 제일 높은 저소득층에게 너무 가혹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기도 했습니다.





3) 얼른 비가 내려 꽃이 피었으면 하는 소망을 모으는 사람들


전에도 언급했지만, 미얀마의 부족한 부분은 미얀마 사람들이 훨씬 더 민감합니다. 그래서 코로나 19 확진자 발생 뉴스가 뜨자 미얀마 내 페이스북 페이지 요소요소에서 "아 헐 ㅋ 망했다" 식의 반응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첫 확진자가 나오자마자 미얀마의 의대생들, 그리고 의대 졸업생들이 생업을 온전히 내려놓고 자원봉사자로 변신해 방역 일선에서 큰 고생을 했습니다. 각 지방 간호학교 학생들 또한 주민들의 의료 서비스 접근이 몹시 어려운 국경지역, 그리고 의료인력이 부족해 허덕이는 무장단체 활동지역으로 들어가* 무장단체들이 설치한 검진소와 격리시설에서 근무하기도 했답니다.


* 지금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미얀마 소수민족 대학생들은 방학마다 각 민족을 대표하는 무장단체 활동지역으로 들어가 자원봉사나 일손을 돕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던 때도 있었다고 합니다. 비슷한 이유로 많은 학생들이 의료인력과 의료물품의 태부족을 겪는 본인들의 고향 땅에서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힘을 보탰다고 봐야겠습니다.


훌레잉 격리시설 화제의 그 영상. 여담입니다만, 미얀마 분들은 무슨 노래던  노래에 춤이 빠지면 좀 허전해합니다.


흘레잉 구역 격리시설 자원봉사자들이 21일(!) 간 의무 시설 격리를 해야 하는 격리자들을 위해 저녁마다 띤쟌 모(သင်္ကြန် မိုး)* 등 노래를 부른 영상이 화제가 되기도 했었습니다.


*직역하자면 "띤쟌 비"라는 뜻으로, 80년대에 개봉한 동명의 영화 삽입곡입니다. 매년 4월 즈음이면 항상 들리는 성탄절 캐롤급 노래입니다. 미얀마는 띤쟌 전에 40도 이상까지 기온이 올라가는 등 더위가 최고조에 달하고, 띤쟌 즈음에 비가 오며 더위가 좀 가십니다. 그리고 이 비가 내린 후에 미얀마 사람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노란 빠다욱 꽃이 핍니다.

그래서 띤쟌에 오는 비는 미얀마 사람들 사이에서 여러모로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답니다.


그 외 미얀마 정부가 전기세 감면을 하자 많은 시민들이 전기세 감면액을 코로나 19 방역물품 확보와 불우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그대로 기부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선행 소식이 있었습니다. 띤쟌 축제 취소에 멘붕이 왔던 친구 '수'도 직장 동료들과 돈을 모아 동네 필요한 곳에 식료품과 마스크를 기부했답니다.


이런 사람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얼른 바이러스가 물러가 저도 얼른 연구하러 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나 좀 들여보내 주세요...



매거진의 이전글 우와, 미얀마를 가신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