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박사 Jun 11. 2020

"지독한 가난이 사람들을 군대로 잡아가는 거지"

2019년 미얀마 청년들이 말하는 그들의 전쟁 -3-



이 이야기는 2016년 1월, 2019년 12월에 청취한 내용을 중심으로 재구성했습니다.



제가 미얀마에서 처음으로 군인을 본 것은 2015년, 양곤에 도착한 지 아마 이틀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당시 시내를 구경하며 미얀마 최대 도시인 양곤에서 군인을 보기 참 힘들다는 점에 놀라워했었습니다. 당시 석사논문을 미얀마 내전을 중심 사례로 삼아 썼었기 때문에 제 머릿속의 미얀마는 몹시 군사화된 나라였거든요.


그 생각이 하던 중 더플백을 맨 군인과 마주쳤습니다. 아마 휴가를 나온 것 같았습니다. 어깨에 커다란 가방을 멘 그 군인은 먼지에 뒤덮인 진녹색 군복을 입고, 제멋대로 자라난 폭탄머리를 하고는 저를 지나쳐 걸어갔습니다. 저를 뚫어지게 응시한 그의 눈은 (그분에게는 참으로 미안한 말이지만) 마치 호랑이굴에서 빠져나온 사람처럼 혼이 다 빠져 초점이 없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그 군인의 눈빛에서 전쟁을 봤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글에도 잠깐잠깐 언급되었듯, 미얀마 군부, 땃마도(တပ်မတော် - Tatmadaw)는 미얀마 내전에서 악당 역할을 아주 지독하게 해내는 집단입니다. 음, 뭔가 좀 좋게 얘기해주고 싶어도 딱히 해줄 말이 없네요. 1962년 군사 쿠테타로 미얀마 중앙정부를 손아귀에 쥔 군부는 무장단체로 나가는 자원을 끊기 위해 소수민족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들을 혹독하게 억압했던 이른바 "사면 절단 전략 (4-Cuts Strategy)"을 도입했습니다. 전략의 일환으로 작전지역을 흰색, 황색, 흑색으로 구분해, 미얀마 정부군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흑색 지역'에서는 듣고 있으면 말문이 턱 막히는 폭력을 휘두르기도 합니다. 1988년, 2007년에는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에 발포를 하며 유혈진압을 하기도 했지요.


따라서 대부분의 미얀마 사람들은 군부라면 정말 학을 떼는 수준입니다. 특히나 버마인이 아니라 실제로 내전의 주된 피해자들인 비 버마 민족 출신의 경우 학을 떼는 수준을 넘어서 증오*를 표출하기도 합니다. 고향집이 샨 주에 있는 제 친구 하나는 "나는 군인들이 정말 너무 싫어. 무례하고. 매사에 명령 조고. 너무 싫어." 라 제게 종종 얘기할 정도로 군부, 그리고 군인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은 편입니다.


*혹시 샨 주에서 만난 친구의 이야기를 기억하시나요? "정부군에 지원하는 거라면 모를까, " 라 언급할 정도로 비 버마인으로서 정부군에 복무하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은 나쁜 걸 넘어 배신자로 인식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반면 최근 미얀마에서 만난 한 친구는 군부에 대해 조금 미묘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의대*를 나와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그 친구는 아버지가 군인입니다. 그냥 군인도 아니고, 군부 지명 상원의원**으로 활동했던 분이라고 합니다. 그 친구의 시각에서 본 군인은 사랑하는 본인의 아버지입니다.


"군인들 중에 나쁜 짓을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적어도 우리 아버지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가끔 집권 여당이 어떤 일을 잘 못하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나라를 더 옳게 만들지 말씀을 하시곤 해. 무조건 반대를 위한 반대가 아니라, 본인의 신념에 의한 반대를 하시는 거지."


다만 그 친구의 시각은 저도 위에 상술했듯 미얀마 대중의 시각과는 조금 괴리가 있는 편입니다. 그 친구도 그 때문에 마음고생을 톡톡히 한 모양입니다.


"내 친구들은 내가 군부에 대해 좋은 얘기를 하는 걸 많이 싫어해.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랑은 이런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이야. 그런데 그래도 나는 내 아버지를 보건대  군인들 중에는 좋은 사람들도 많고, 진정 나라를 위하는 사람들도 있는 게 확실해."


훌륭한 아버지, 좋은 사람이 되어 대중이 나아가고자 하는 길을 가로막는 편에 선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요? 미얀마 군부는 대변인을 통한 공식입장 외에는 학계 등 외부와 접촉을 조금 꺼리는 편이라 저는 군부가 가진 그 신념이 뭔지 아직은 잘 모릅니다. 그래도 언젠가 만나 이야기를 나눌 일이 있겠죠?


군부 지명 상원의원들이 상원의회에 출석하는 모습. 군복을 입은 채 입장하는 게 인상적입니다. (Steve Tickner/Nikkei Asian Review)
* 한국도 비슷하지만, 미얀마에서는 보통 공부를 아주 잘하는 학생들은 특히 의대와 공대에 주로 입학합니다. 대학 졸업 이후 진로는 딱히 의학, 공학에 국한되는 건 아닌 거 같습니다. 보통 여성은 의대, 남성은 공대 입학을 한다는데... 체감상 남녀 불문하고 의대 출신을 더 많이 만났던 것 같습니다.
** 미얀마는 하원, 상원이 나뉜 양원제로, 상원 하원 모두 개헌 저지선인 총의석의 25%를 군부가 지명합니다. 그 외 USDP(Union Solidarity and Development Party; 통합 단결 발전당)와 같이 사실상 군부 당인 친군부 당이 지역구 후보를 내고, 또 군부가 정부 내 몇몇 핵심 부서의 부서장 임명권을 가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는 명목상 민주주의임에도 불구하고 군부의 입김이 아직도 굉장히 강한 편입니다.




"지독한 가난이 사람들을 군대로 잡아가는 거라고 봐야지"


또, '군부'와는 달리 '군인'에 대해서는 뭔가 미묘한 감정이 교차하기도 합니다. 비록 수많은 폭력과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의 최전방에 섰긴 했지만, 그래도 일반 병사들은 '군부'와는 달리 봐야 할 딱한 사연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없잖아 있거든요. 제가 미얀마에서 일하던 시절 한번 동료 직원에게 미얀마 군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군대에 가는지, 군인들을 좋아하는지.


"미얀마 사람들은 군인들은 괜찮게 생각하는 편이야. 어찌 됐건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니까. 군부와 군인을 달리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있어. 나만 해도 내 친척 중에 군인이 된 사람들이 많아. 모두 성실하고 좋은 사람들이야"


"삼촌, 그럼 군대는 어떤 사람들이 가는 거예요?" 제가 물었습니다.


"징병법이 있긴 한데 징병은 안 하고 대부분 모병을 하지. 보통 가난한 사람들이 군인이 되겠다고 가는 거야. 징병을 하지 않지만, 대신 지독한 가난이 사람들을 군대로 잡아가는 거라고 봐야겠지"


최근에 아라칸 군이 정부군 병사 몇 명을 생포해 인터뷰한 영상을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영상에서도 한 병사가 "모병관이 제가 육군에 입대하면 부모님께 쌀과 기름, 그리고 콩을 매달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모병관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항복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라 말했었지요. 어떻게든 부모님을 모셔야겠다는 청년의 마음이 그를 전쟁으로 내몬 것입니다.


샨 주에서 작전 중인 정부군 병사 (Steve Tickner/Frontier Myanmar)


가난이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몰지 않으면, 갈 곳 없는 청소년들을 납치하거나 꾀어 내 군에 입대시키는 경우도 흔했습니다. 국제사회가 미얀마의 소년병 사용을 규탄하자 미얀마 군부가 유엔과 함께 소년병 모집을 근절하기 위해 이런저런 노력을 하는 모양입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8년에 많은 숫자의 모병관 및 장교들이 소년병 모집을 이유로 처벌받기도 했습니다.


시내 찻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자면 팔, 다리를 잃은 노병들이 목발에 의지해 손님들에게 책을 팔며 다니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사정은 잘 모릅니다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정부군 일반 사병들이 전투 중 크게 다쳐 상이 제대를 할 경우 연금도 영 시원찮고, 취업도 어려운 경우가 많아 결국 노년에 들어서는 소설책을 판 돈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양곤의 밤은 휘황찬란한데, 지독한 가난이 청년들을 전쟁터로 내몹니다.




"더 이상 총을 쏘고 싶지가 않아요"


연구를 위해 정부군과 무장단체 군인들의 수기, 또는 인터뷰 내역을 읽어보면 정말 굳은 심지를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그들도 결국 사람이구나- 하며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어느 한 무장단체 병사는 조사자에게 "더 이상 총을 쏘고 싶지가 않습니다. 내 목숨이 소중한 만큼 저들의 생명도 너무 소중합니다"라고 털어놓았습니다. 소수민족 출신 정부군 병사 하나는 "정부군에 복무하는 모든 병사가 버마인인 건 아닙니다. 서로 오해를 풀어야 합니다. 저는 까친족 출신으로 다른 까친 형제들을 쏘아 죽이는 게 너무 괴롭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했지요.


인터뷰로 본 그들은 누구보다 평화를 갈망했습니다. 어느 한 병사는 "우리나라에 평화만 올 수 있다면 전쟁터에서 잃은 제 다리는 아무것도 아닙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다른 한 병사는 "야지에 나갈 때마다 가족들이 제가 부디 안전히 돌아올 수 있도록 잠을 설치며 기도를 한답니다. 얼른 평화가 와서 제 집에서 평화로이 가족들과 남은 삶을 보내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은 계속됩니다. 왜 우리는 죽고 죽여야 하는 걸까요? 미얀마에서도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 따로 있고, 전쟁에서 몸과 마음이 상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코로나 19 이후 미얀마 이모저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