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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Jun 03. 2020

"영어로 얘기하면 괜찮아"

2019년 미얀마 청년들이 말하는 그들의 전쟁 -1-

아름다운 경치, 마음씨 좋은 사람들이 넘치는 미얀마의 겉모습과는 다르게, 미얀마는 현재 전쟁 중입니다. 2015년에 미얀마 정부와 몇몇 무장단체 간 휴전협정을 맺었고, 지지부진하나마 평화협상을 이어가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각지에서 무장 충돌이 일어나고 있지요.


2020년 5월 기준 라카잉(Rakhine) 주는 주 전체가 전쟁터로 변했고, 수려한 경치와 트레킹으로 유명한 샨 주의 씨포(Hsipaw)도 관광지를 조금만 벗어나도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는 지역이랍니다. 씨포의 경우 근래 독일인 부부가 도로변에 매설한 지뢰를 밟아 죽고 크게 다치는 사고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 덕에 학교로 돌아왔지만, 저는 미얀마에서 박사 연구를 하고 있습니다. 평화협상 도중에 왜 계속 무장 충돌이 이어지는지, 그리고 서로가 격렬한 전투를 치르는 와중에도 경제적, 사회적으로 서로 협력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기 위해 종종 미얀마를 방문해 여러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답니다. 연구를 진행하며 듣는 이야기 중 덜 민감한 부분을 골라 종종 공유하고자 합니다.


오늘 공유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2019년 7월 샨 주 방문 중에 청취했습니다. 당시 샨 주는 샨족 무장단체인 RCSS (Restoration Council of Shan State; 샨 주 회복위원회)와 SSPP (Shan State Progress Party; 샨 주 진보당) 사이 몇 달간 격전이 이뤄지고 휴전에 합의한 상태였습니다.


사실 현지에서는 RCSS는 '남군', SSPP는 '북군'이라 불릴 정도로 가까운 단체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서로 입장이 크게 달라졌다고 합니다. 당장 RCSS는 2015년에 미얀마 정부와 휴전협정을 맺은 반면, SSPP는 휴전협정에 참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만두박사 기차표를 끊다


위에 언급한 씨포는 양 단체 나와바리(?) 사이에 위치한 최전선이고, 2019년 5월에 휴전에 합의한 지역입니다. 내전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어찌 그곳을 방문하지 아니할 수 있겠습니까? 당장 가방을 싸고 만달레이-라시오 구간 기차표를 예매하러 기차역으로 갑니다.


한참 헤매다가 매표소를 찾았습니다. 밍글라바! 무척 친절한 역무원 삼촌에게 인사를 건네고 티켓 예매를 시도합니다.


"우레이, 씨포 뜨와진 메 (삼촌, 씨포 가고 싶은데요)"


"베마 레? (어디?)"


"씨-파우. 씨-파우 뜨와진 메 (씨포. 씨포 가고 싶어요)"


"?"


음. 내 발음이 문제인가. 턱을 살살 문지르며 어찌할꼬 고민하다 영어로 'Hsipaw'라 써주니 다른 역무원 삼촌이 보고 웃습니다.


"ㅋㅋㅋ 띠보(Thibaw)!"


"아 띠보! 호께바~ (아 띠보! 알겠습니다~)"


알고 보니 씨포는 샨어; 버마어로는 띠보라 부르는 모양입니다. 여권을 확인하고 1등석 기차표를 손으로 쓱쓱 써서 끊어줍니다 (낮은 등급의 자리는 나무 좌석이라 엉덩이가 좀 많이 아픕니다). 새벽 네시 기차. 그날 밤 잠은 다 잤습니다.


그때 역무원 삼촌이 끊어준 기차표. 손글씨로 티켓을 끊어준 게 인상적입니다.


새벽에 기차에 오르니 생각보다 사람이 많습니다. 관광객도 많고 짐을 바리바리 싼 귀성객도 많았지만, 사실 군인이 제일 많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제가 가는 씨포는 분쟁지역이고, 라시오는 샨 주 북부 최대 군사도시 중 하나입니다. 제 앞에도 아내분이 기차가 움직일 때까지 챙겨준 두꺼운 옷과 반찬거리를 손에 한가득 쥔 군인 아저씨가 앉았습니다.


부사관 계급장을 달았던 그 군인은 2019년 8월의 대공세를 안전히 잘 보냈을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필자 주: 2019년 8월에 아라칸군 (Arakan Army), 미얀마 민족민주동맹군(Myanmar National Democratic Alliance Army), 탕 민족해방군 (Tang National Liberation Army) 셋이 뭉친 북부 결사 (Northern Brotherhood)가 라카잉 주에서 격전을 치르는 아라칸군을 응원하기 위해 핀우린(Pyin Oo Lwin)에서 무세(Muse)까지 이르는 도로망과 철도망에 대한 대대적인 공세를 벌인 바 있습니다.


2019년 7월 만달레이-라시오 열차. 내걸린 꽃은 아이들이 종종 파는 백짯짜리 재스민 꽃입니다.




씨포에 도착


얼마나 기차를 타고 갔을까, 씨포에 도착해 트랙터를 타고 게스트하우스에 도착합니다. 2층 침대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하니 생각보다... 할게... 없습니다(...)


딱히 트레킹 취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자연경관에도 좀 심드렁한 편이라 마을을 돌아다니며 사람 구경을 하고 얘기를 듣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어 보여 다음날 일어나 동네를 슬슬 돌기 위해 자전거를 빌립니다.


정처 없이 시장 구경도 하고, 사람 구경도 해 봅니다. 새벽장에 들러 할머니가 말아준 국수도 먹고, 방과 후 학원에서 공부하는 동생들도 구경합니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꽃게처럼 시뻘겋게 익은 외국인이 재미있는지 웃어주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멀리서 손을 흔들어주는 분도 있습니다.


제 말 뽄새가 이 모양이라 그렇지, 씨포는 참 아름다운 곳입니다. 우기에 방문했음에도 불구하고 낮엔 여행 내내 맑았습니다.




"영어로만 얘기한다면 괜찮아"


그러다 동네 청년을 만났습니다. 씨포 외곽에 사는 그 친구는 일감을 찾으러 가끔 시내에 내려온다고 합니다. 미얀마의 평화 프로세스를 공부한다는 외국인 박사생이 재미있는지 흔쾌히 씨포, 그리고 본인이 씨포 근교에서 목격한 전쟁을 얘기해 준다고 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어?" 


제가 물었습니다. 저야 어쩌면 제 호기심을 위해 방문한 외지인이지만, 그 친구는 본인의 말한 내용에 따라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죠. 그가 잠깐 침묵하더니 대답합니다:


"괜찮아. 버마어나 샨어로 얘기하면 좀 그렇지만, 영어로만 얘기한다면 괜찮아"


잠깐 숨을 고르더니 청산유수로 말을 이어갑니다. 어쩌면 그도 누군가에게 본인이 보고 들은 것을 나누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보기엔 이 전쟁은 좋은 전쟁이 아니야. 샨 사람들, 그러니까 같은 민족끼리 싸우는 거잖아? 지금은 상황이 많이 나아진 편이야. 몇 주 전만 해도 내가 사는 동네는 총소리가 많이 들렸어. 해가 지면 우리 집 마루에서 총알 날아가는 불빛이 보일 정도였으니까. 매일 밤마다 싸우더라고. 


그래서 근교에 사는 사람들이 수도원이나 절로 많이들 피난을 가기도 했어. 지금은 다들 집으로 간 거 같지만."


버마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이 나라가 전쟁을 하는 건 맞는지 싶지만, 까친, 샨, 카렌 사람들이 모여사는 미얀마 외곽에서는 전투와 살상, 그리고 그것을 피하려는 난민 생활이 일상입니다. 


이제 갓 군부독재에서 벗어난 미얀마에서 군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있겠느냐만, 전쟁의 화마를 온몸으로 버텨내는 비 버마인들은 특히 정부군 군인들에 대해 큰 적개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부군 작전지역에서 흑색 지역으로 분류된 지역에서는 살인면허라도 가지고 있는 마냥 살인, 강간, 방화를 빈번히 저지른다면서요. 


근래에 국제사회의 안타까움을 자아낸 라카잉 주의 이른바 로힝야족 제노사이드도 다른 주는 지난 수십 년간 수 없이 일어난 일상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힝야인들을 불청객, 또는 불법 이민자들로 보는 미얀마 전반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몇몇 무장단체는 지난 12월 국제 형사재판소의 로힝야 학살에 대한 권고를 환영하기도 했습니다. 자기들도 똑같이 당해온 일이거든요. 




"군대를 가고 싶어 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


"샨 주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군인이 되는 거야?" 


제가 물었습니다. 사실 무장단체에 대한 연구는 퍽 많이 진행된 편이지만, 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인력을 차출하는지는 생각보다 알려진 바가 없거든요. 샨 주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징집이 이뤄지는지 궁금했습니다.


"당 (그 친구는 각 무장단체를 샨 민족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생각했습니다) 소속 군인들이 마을을 방문해 아들이 있는 집에서 아들 하나씩을 데려가. 보통 마을 이장님한테 필요한 사람 숫자를 얘기해. 이장님은 어느 집이 아들이 몇 명 있는지 알고 있으니까. 


군인들이 이장님 집 앞에 가서 '아들 일곱 명, 여덟 명이 필요합니다' 얘기하고 이장님이 집어준 집을 들러서 남자아이들을 데려가는 식이야. 만약 네가 외동아들이라면 너는 안 데려가. 운이 아주 좋은 거지. 내가 바로 운이 엄청 좋은 그 외동아들이야"


굉장한 운빨로 면제 혜택(?)을 받은 그 친구가 한참 웃고선 얘기를 이어갑니다.


"그래서 보통 시골 마을에서는 샨 사람들이 조혼을 많이 하는 편이야. 우리 문화에서는 신혼부부는 아예 다른 가족으로 여겨져서 갓 결혼한 남자는 군대를 안 가도 되거든. 군대를 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어. 너무 길어. 시간낭비잖아. 남군(RCSS)은 3년, 북군(SSPP)은 5년을 복무해야 해. 너무 길잖아 그렇지?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북군에 징집되면 얼른 도망가서 대신 남군에서 복무하기도 해"


음. 아무리 그래도 서로 총 쏘는 사이인데 괜찮은 걸까요. 그래도 괜찮은 거냐고 물어보니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당 군대에서 그렇게 신경을 크게 쓰는 것 같지 않아. 정부군에 지원하는 거라면 모를까, 어느 당에서 복무하든 간에 샨 민족을 위해서 복무하고, 싸우는 거니까. 괜찮을 거야. 그래서 어쩌면 한 집에서 온 형제들이 서로 다른 당에서 복무할 수도 있고... 아마 이번에 서로 싸우지도 않았을까?"


동족상잔을 넘어 친구 형제끼리도 서로 총을 겨누고 죽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그 친구가 잠깐 생각에 잠겼다 말을 잇습니다.


"... 그래도 괜찮을 거야. 총을 쏘더라도 친구한테 쏘는지, 형제한테 쏘는지 모르니까. 멀리서 총을 쏘면 누굴 쏘는지 안보이잖아. 그렇지?"


멀리서 날아온 총알에 감정을 담을 수 있을까요? 철책 너머 얼굴도 한번 못 본 사람들에게 두려움과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교육을 받았었던 저에겐, 얼굴도 안 보이는 사람을 원망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한 그 친구의 사고방식이 뭔가 새롭게 느껴졌습니다.



나무 아래 앉아 휴식을 취하는 샨 주 북군 병사. 사진 출처: Irawaddy


"이제 우리 마을엔 젊은 남자가 나밖에 없어"


대화를 나누는 동안 주변이 갑자기 조용해져 화제를 돌리기로 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각 당이 샨 사람들을 위해 어떤 복지를 하는지, 씨포는 어느 당의 지지세(?)가 높은지 따위를 물어봤습니다.


주변에 혹시나 엿듣는 사람이 있을까 꺼낸 가벼운 얘기였지만, 그 친구는 제 마음은 아는지 모르는지, 활짝 웃으며 더 깊숙이 대화를 끌고 내려가버립니다.


"딱히 뭐 복지를 하는 건 없어. 뭐 병원을 짓거나 학교를 짓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보통 여기 사람들은 북군보다 남군을 더 좋아해. 남군이 진정 샨 민족을 위해 일한다고 생각하거든. 북군은... 샨 민족을 위해 싸우는 것 같지 않아. 그냥 자기들 내키는 대로 하는 것 같아."


그가 잠깐 침묵하더니 얘기를 이어갑니다.


"왜 내가 외동아들은 군대를 안 가도 했잖아? 그런데 마약 운반하는 트럭들은 그런 거 신경 안 쓰고 외동아들들도 마구 데려가버려. 남군은 마약상들과 싸워서 샨 주에서 마약을 근절하려고 해. 그런 와중에 어떤 단체들은 마약상들이랑 같이 일하기도 해."


"마약상들이랑 일하는 단체들은 어떤 단체들이야? 나한테 말해주지 않아도 좋아"


그가 침묵하더니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봅니다. 잠깐 멈추더니 목소리를 한껏 낮추곤 잽싸게 어느 단체가 어느 마약을 파는지, 어떤 단체가 미얀마 이웃나라 사업가들과 어떤 유착을 했는지 잽싸게 얘기합니다


사실 그 친구가 말해준 내용보다는 그 친구의 불안한 눈빛,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소리를 낮춰가며 여행자에게 자기가 보고 느낀 것들을 전하려는 그 의지가 더 기억에 크게 남았습니다. 그 친구는 무슨 이유로 그날 처음 본 외국인에게 자기 고향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전하려고 했을까요? 지금도 잘 모르겠습니다.



슬슬 갈 때가 되어 굳세게 악수를 하고 통성명을 합니다. 저는 언제 양곤으로 돌아가는지, 이제 무엇을 할 건지 묻습니다. 다시 씨포에 돌아오면 함께 보기로 약속하고 서로 길을 떠납니다. 갈 때가 되자 그 친구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마지막으로 한마디를 건넵니다:


"있잖아, 그저께 우리 마을에 남은 마지막 아들들이 군대에 갔어. 이제 우리 마을엔 젊은 남자가 나밖에 없어"


작별을 하고 강가로 자전거를 몰아 석양을 보러 갔습니다. 해가 져서 어두워진 산등성이 저 너머에서는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듯 산 뒤편이 번쩍번쩍 울립니다. 


제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아마 저 머나먼 남국 땅에서는 청년들이 열대우림 속에서 새벽이슬을 맞으며 짐승처럼 쫒고 쫒기고 있을겁니다.


씨포에서 만난 그 친구는 잘 있는지, 몸은 건강한지 궁금합니다. 언젠가는 다시 볼 수 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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