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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Jun 05. 2020

"어린아이를 왜 쏴 죽였어야 했지?"

2019년 미얀마 청년들이 말하는 그들의 전쟁 -2-

이 이야기는 2019년 12월에 청취한 내용입니다. 


당시 저는 학교에서 일을 보다 미얀마로 잠깐 돌아와 2020년 여름에 만날 (만났어야 할... 아아...) 사람들과 접촉하고, 여러 시민단체와 연락을 해 만나곤 했었습니다. 하지만 너무 춥지도 않고 덥지도 않은 동남아 초성수기 12월에 카페에 앉아 일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작업을 마치면 언어교환 모임을 간다거나, 미얀마에서 일하던 시절 만난 옛날 친구들을 만나거나 하면서 노닥거리곤 했습니다.


교육열이 높지만 교육의 기회가 딱히 모두에게 열려있는 건 아닌 미얀마에서 '대학원생, ' 특히 외국인 대학원생은 생각보다 뜨거운(?) 관심을 받습니다. 한편으로는 "아니 왜 굳이 미얀마를 공부할 이유가...?" 하며 어리둥절하는 친구들도 있는가 하면, "으아니 외국인 학자라니!" 하며 외국인의 입장에서 본 미얀마에 대해 몹시 궁금해하는 친구들도 퍽 많은 편입니다. 


저는 정치학도이기 때문에, 보통 미얀마의 정치상황이라던지, 경제구조라던지, 아니면 민주주의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받는 편입니다. 지난 편을 보신 분들은 어느 정도 짐작하시겠지만(...) 미얀마에서는 대화를 나누는 쌍방의 안녕을 위해 지극히 입조심을 해야 하는 주제입니다. 



마냥 일만 하다 돌아가기엔 넘나 아름다운 것.. 해 질 녘의 슈웨다곤 파고다입니다.




아라칸을 아라칸이라 부르지 못하고


근데 어느 하루 언어교환 모임에서 맥주를 홀짝거리는데 누가 들어도 상관없다는 듯 미얀마의 민족 간 불평등과 억압에 대해 큰 소리로 대화를 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특히 라카잉 주, 그리고 라카잉 주의 다수민족인 라카잉 민족을 군부가 허락한 공식 명칭(라카잉)으로 칭하지 않고, 비공식 명칭인 "아라칸"이라 꼬박꼬박 부르는 모습에 흥미가 돋아* 통성명을 하고 얘기를 듣기로 했습니다. 여기선 그 친구의 안전을 위해 '마웅(남동생)'이라는 가명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저도 자세한 맥락은 잘 이해하고 있지 못합니다만, 미얀마가 갓 독립해 내전에 돌입한 시절, 그리고 미얀마가 한창 군부독재를 할 시절에 주의 명칭, 또는 미얀마 소수민족의 명칭을 버마어화 시킨 경우가 상당히 많습니다. 예를 들자면 '카렌'은 '까인', '아라칸'은 '라카잉(야카잉)' 등등. 국명 '미얀마'도 군부가 미얀마 내 소수민족을 포용(또는, 입장에 따라, 말살)할 요량으로 옛 이름인 '버마'를 버마어화 시킨 경우입니다.

따라서 군부에 비판적인 사람들, 또는 해외에 거주하는 미얀마 난민들은 아직도 모국을 '버마'라 부르는가 하면, 미얀마 내에 있는 많은 버마인들은 외국인이 '버마' 또는 '버마어(Burmese/Bamazaga)'라고 말하면 '미얀마' 또는 '미얀마어(Myanmar language/Myanmarzaga)'로 정정해주기도 합니다. (아직 미얀마를 버마라 불렀다고 화내는 사람은 못 봤습니다)

저는 보통 국명 변경 이전의 미얀마는 버마, 그 이후는 미얀마로 부르는 정치학계의 입장을 따릅니다. 미얀마어 또한 버마인이 사용하는 말인 만큼 버마어라 부릅니다. 혹 국제기구, 또는 구호단체 등 미얀마 정부와 자주 소통하는 직업에 종사하신다면 '미얀마' '미얀마어'라고 칭하는 게 제일 적절합니다.


마웅은 양곤으로 유학 와 이제 갓 대학교를 졸업한 친구입니다. 둥그런 안경을 쓰고 머리를 포마드로 잘 정리한 퍽 잘 생긴 친구입니다. 방글라데시에 인접한 라카잉 주에서 온 마웅에게 고향에 대해 물어보니 마웅이 먼저 물어보길 기다렸다는 듯 전쟁통인 자기 고향에 대해 얘기를 꺼냅니다.


"나는 부띠다웅에서 왔어. 방글라데시 국경 바로 옆에 있는 동네. 알지? 전투가 아주 많이 일어나는 곳이야. 매일 밤마다, 그, 왜, 있잖아; 피융- 피융- 꽝 꽝"


마웅이 입으로 손으로 포탄 날아가는 소리를 흉내 내며 웃곤 다시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같이 웃었지만 저나 마웅이나 웃는 게 웃는 게 아닙니다. 전에도 언급했지만, 라카잉 주는 현재 미얀마에서 제일 참혹한 전쟁이 일어나는 지역입니다. 


크게는 아라칸 민족의 고향인 라카잉 주의 독립, 작게는 라카잉 주의 완전한 자치권을 주장하는 아라칸 군(Arakan Army)과, 그런 아라칸 군의 평화협상 테이블 진입을 거부한 정부군 간의 전투가 지난 몇 년 간 격화됐습니다. 처음에는 라카잉 주 북부에서만 산발적인 전투가 있어왔지만, 최근에는 라카잉 주 전체가 전쟁터로 변해버렸습니다.



부띠다웅에서 작전 중인 미얀마 경찰. (Hein Htet/EPA via NYTimes)


2019년 12월엔 아웅산 수지 여사가 방문한 라카잉 주 최남단 지역에서 폭발물이 터지는가 하면, 최근에는 코로나바이러스 검사 샘플을 운반하던 WHO 차량이 주 도로에서 총격을 받아 WHO 직원이 죽는 등 상황이 몹시 나빠졌습니다. 왜 우리네도 70년 전 낮에는 경찰 세상, 밤에는 빨치산 세상이라 했듯, 그 동네도 딱 그 모양이라 미얀마 정부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행정구역들이 퍽 많아졌다는 소식도 들립니다. 공무원들이 목숨 걸고 근무하기보단 피난을 떠나는 쪽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그냥 전쟁이 우리 일상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 그래도 부띠다웅에 종종 돌아가곤 해. 부모님이 거기 계시거든. 내 친구들도 대부분 부띠다웅에서 살아"


그래도 삶은 이어집니다. 마웅은 최근에도 부띠다웅에 갔다 온 후 고향 친구들과 노는 사진을 SNS에 올렸습니다. 정부군은 아라칸 군의 통신을 방해하기 위해 라카잉 주 인터넷 접속을 모두 막아놓았기 때문에 고향에 안전히 갔다 온 후에 올렸다고 봐야겠지요.


"주변에 아라칸 군에 입대한 사람이 있어?"


"응 뭐, 내 친구들 중 아마 30-40%는 아라칸 군에 입대했을 거야"


과연 아라칸 군이 지역사회에서 얼마나 큰 지지를 얻는지 궁금해 가볍게 던져본 질문에 뜨악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어우야, 친구들은 잘 있어? 연락은?"


"응 잘 있어. 종종 군복 입은 사진이랑 뭐 아라칸 군에서 발표하는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리고 그래. 아라칸 민족에 대한 애국심이 아주 강한 친구들이야."


마웅이 남은 맥주를 쭉 들이켠 후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마치 라카잉 주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외국인들에게 알리려는 마음을 굳게 먹고 나온 사람처럼.


"그 왜, 최근에 정부군이 애 하나를 죽였잖아? 어린 초등학생. 알지? 나 사진도 보여줄 수 있어. 정말 어린아이였잖아. 교복도 입고 있었고. 왜 그 애를 쏴 죽여야 했을까? 라카잉에서 일본군과 영국군이 싸우던 시절에도 주변에 민간인이 있으면 싸우는 걸 멈췄대. 그런데 정부군이랑 아라칸 군이 싸울 때는... 주변에 애가 있던 없던 상관도 하지 않아. 그냥 막 쏴버려."


"그럼 친구들이 아라칸 군에 들어간 이유도...?"


"그렇지. 아라칸 남자들이 아라칸 군에 입대하는 이유는 아라칸 군은 정부군이 라카잉에서 벌이는 짓을 안 하는 것을 알기... 음, 하고 있지 않다고 믿기 때문이야."


마웅이 잠깐 뜸을 들인 이유는 미얀마 정부군이 살 떨릴 정도의 폭력을 행하는 것만큼은 아니더라도, 아라칸 군도 종종 정부 소속 공무원, 또는 민간인들을 정부군 협력자를 색출한다는 이유로 납치, 감금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 미얀마  페이스북 페이지에서는 많은 버마인들이 공개처형 영상을 서로 공유하며 아라칸 군이 민간인을 학살한다는 주장이 돌기도 했습니다. 


우리네도 70년 전에 경험했지만, 전쟁이라는 게 흑백으로 명확하게 나눌 수 없는 부분이 많아 참 씁쓸합니다.

2016년에 군부에서 민간에게로 성공적인 정권 이양이 이뤄졌으나, 바뀐 것보단 그대로인 게 훨씬 더 많은 미얀마입니다.


미얀마의 소수민족이 본 평화 프로세스


맥주를 한잔 더 시킨 후 문득 궁금해져서 물어봤습니다:


"아라칸 군은 로힝야를 어떻게 생각해?"


아라칸 사람들은 대부분 불교도이며, 사실 라카잉 주 안에서 로힝야 사람들과 살을 맞대고 사회적, 경제적 문제로 투닥거리는 사람들은 버마인들이 아니라 대부분 라카잉 사람들이기 때문이죠. (때문에 제 다른 아라칸인 친구는 로힝야에 대해 딱히 좋은 말을 꺼내지 않는 편입니다.) 하지만 마웅은 로힝야인에 대해서 생각의 결이 조금 달라 보였습니다.


"내가 알기론 아라칸 군은 국제 형사재판소를 지지하는 걸로 알고 있어. 정부군이 로힝야 사람들에게 했던 일을 아라칸 사람들에게 똑같이 저지르고 있으니까. 아라칸 군이 예전에 로힝야 사람들을 미워했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지금은 아라칸 사람들과 로힝야 사람들은 똑같은 적을 싸우고 있다고 생각해."


그리곤 마웅이 제게 미얀마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평화 프로세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습니다. 고백건대 저도 연구자 입장에서 전쟁을 직접 겪는 사람들에게 뭐라 말하기가 참 그렇습니다. 제가 뭘 알겠습니까.


그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고, 언젠가 평화가 온다면 아웅산 장군이 생전 구상했던 (또는 구상했다고 알려진) 미얀마 내 민족 간 신뢰와 평등한 입장에 선 연방주의 평화안이 제일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조심스레 얘기했습니다. (입조심을 계속 강조한 와중에 아이러니하게도 이건 미얀마 내 독립주의 무장단체들이 주장하는 평화안이기도 합니다;). 마웅도 그게 옳다 보는지 고개를 주억거립니다.


그리고 마웅에게 되물었습니다. 그가 보는 미얀마의 평화는 어떤 것인지. 그도 맥주를 한잔 더 시키곤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엽니다.


"내 고향 친구들은 라카잉에서 일을 하지 않으면 모두 아라칸군에 들어갔어. 양곤에 온 내가 좀 특이한 경우인 것 같아. 나는 고향에 돌아가면 고향 친구들에게 항상 로힝야, 버마, 그리고 아라칸이 모두 싸움을 멈추고 평화로이 공존할 수 있도로 대화를 해야 한다고 말하곤 해. 


물론 내 친구들은 내가 그렇게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내 친구들은 모두 버마인들을 증오해. 그리고 버마인들은 로힝야 사람들을 증오하고. 로힝야 사람들은 아라칸이든 버마인이든 모두 증오해"


그렇게 말하곤 마웅이 한참 웃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쟁을 하는 거야. 더 나아질 일은 없어(things will not get better)."




마웅이 그 얘기를 하자마자 마웅 또래 여학생들이 저와 마웅이 얘기를 나누던 테이블로 다가와, 속된 말로 쪼인을 합니다. 뭐 그 상황에서 수염 난 아저씨는 그냥 깍두기 취급이죠. 제가 맥주를 홀짝거리며 새로 만난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동안 (마웅의 윙맨 역할을 했다고 봐야겠죠) 마웅은 아주 아름다운 학생과 함께 미소를 띤 채 통성명을 하는가 하면, 서로 간 호칭*을 정하기도 합니다. 어유 전화번호도 교환하네요.


*미얀마에서는 친구 등 관계를 맺기 위해 오빠 동생, 또는 삼촌 아주머니 등 호칭을 정해 부릅니다. 예를 들어 저의 아주 친한 친구는 저를 "아코(대충 '작은오빠'라는 뜻)", 저는 그 친구를 "니마(대충 '막내 여동생'이라는 뜻)"라 부릅니다.


마감시간이 다 될 때까지 이야기꽃을 피운 그 두 사람은 그랩 택시도 같이 불러서 마웅이 다른 친구를 배웅해주기로 합니다. 아저씨는 인생 다 살아서 이제 흐뭇한 미소만 지을 줄만 알지 그런 건 이제 못 합니다. 


그래도 다 사람 사는 곳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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