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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Jun 29. 2020

미얀마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 -2-

"모든걸 해 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1편에서 이어집니다)


분쟁지역에서 사는 여성들의 경우 전쟁으로 인해 더욱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분쟁지역에서는 가정과 공동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남성들이 전쟁으로 인해 짐꾼, 또는 병사 (또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아예 태국이나 중국 같은 이웃나라로 일하러 가는 경우도 흔합니다) 끌려가는 경우가 잦습니다. 그리고 전편에 잠깐 언급했듯, 미얀마의 성역할 관습 상 자리를 비운 남성들의 역할을 여성들이 그대로 메우기가 몹시 어렵습니다. 


경제활동이 대부분 멈춘 분쟁지역에서 여성들이 쉽게 찾을만한 일자리가 매우 부족하기도 하지만, 행여나 그 집 아저씨가 전쟁터에 끌려가 죽기라도 하면 눈 앞이 깜깜 해지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생계는 물론, 집과 땅을 어떻게 지켜야 할까를 걱정해야 하거든요.


그래서 분쟁지역에 사는 많은 여성들이 생계유지를 위해 이주노동을 선택합니다. 국경을 맞대는 중국, 또는 태국에 들어가 일을 하면 분쟁지역에서 버는 돈보다는 훨씬 많은 돈을 만질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성들이 친척에게 가족을 맡긴 후 국경을 넘어 이웃나라 공장, 또는 가사도우미로 취직하는 경우가 몹시 흔합니다.


혹시 태국 치앙마이를 가 보셨나요? 치앙마이는 미얀마 샨 주와 몹시 가까워 (태국에서는 '타이 야이'라 부르는) 샨족 이주노동자들이 굉장히 많이 모여 삽니다. 방콕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미얀마에서 온 가사도우미"는 카렌족 여성일 경우가 굉장히 높습니다. 전쟁과 가난을 피해 국경을 넘어온 것입니다.


치앙마이의  왓 쿠 타오 사원. 치앙마이에 거주하는 샨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 중 하나입니다.


이주를 선택한 여성들이 좀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안타깝게도 이웃나라로 이주하는 행위도 분쟁지역에 있는 것만큼이나 위험한 경우가 많습니다. 


분쟁지역에 사는 많은 여성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정부에서 발급한 신분증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사실상 무국적자인 것입니다. 신분증이 없으니 합법적으로 국경을 넘을 수 있는 여권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따라 대부분의 여성들이 중개인을 사용해 밀입국 경로로 국경을 넘으며, 이 과정에서 큰 위험에 처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일단 안전한 경로를 통해 여행을 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며, 여행 과정에서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면, 아예 중개인에게 사기를 당해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합니다. 중국과 국경을 맞댄 까친 주의 경우 많은 여성들이 일자리 사기를 당해 중국 남성들의 매매혼 대상이 되거나 아예 성매매 포주에게 팔려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합니다.




"한번 피해자한테 물어보세요. 가해자 군번이 뭐랍디까?"


치안공백으로 인한 성폭력도 분쟁지역의 여성들을 위협하는 큰 문제 중 하나입니다. 정부군의 경우 성폭력을 무기화해 소수민족 억압의 도구로 삼기도 하며, 정부군과 싸우는 소수민족 무장단체 병사들도 종종 가해자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습니다. 저번의 언급한 여성문제 활동가의 얘기를 들어봅시다:


"성폭력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더라도 정부군은 보통 성폭력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잡아뗍니다. 보통 다른 무장단체들이 한 것이라 덮어 씌우기도 하고요. 만약 정부군 쪽에 피해자 진술을 거론하면 대면한 장교들이 "한번 피해자한테 물어보세요. 가해자 군번이 뭐랍디까?"라고 종종 묻기도 합니다. 


피해자가 군번이 뭔지 어떻게 알고, 또 그런 상황에서 어디 달려있는지 모를 군번을 어떻게 외울 수 있을까요?"


지역사회에 뿌리를 내린 무장단체들의 경우는 그나마 처벌을 위해 범인을 색출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는 편입니다만, 범인 색출을 위한 노력과는 달리 처벌 자체는 솜방망이 처벌인 경우가 잦습니다. 보통 마을 원로들과 함께 관습에 따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다 보니 제대로 된 처벌보단 피해자 가족에게 식량이나 돈으로 위로금을 전달하거나, 아니면 피해자와 가해자를 결혼(!)시키기도 합니다.


지역사회의 화합, 그리고 피해자 가족의 명예를 위해 정작 제일 큰 고통을 겪은 피해자가 소외된 것입니다. 




"여자들도 똑같이 민족과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까요"


물론 여성들이 수동적으로 이런 상황을 그대로 수용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분쟁지역 내 여성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소수민족 여성 단체들이 미얀마 정부, 그리고 무장단체들과 함께 이러한 문제를 이슈화를 시키며 큰 진전을 이루고 있습니다. 비록 미얀마 정부가 약속한 참여인원 30%을 여성으로 채우기로 한 여성 쿼터에는 한참 못 미치는 숫자이긴 하지만, 많은 여성들이 미얀마 정부의 평화 프로세스에도 참여해 젠더를 미얀마 평화 프로세스의 제일 시급한 과제 중 하나로 여길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아라칸 군 여성 지원자들을 취재한 RFA 보도 영상입니다


많은 소수민족 여성들이 미얀마의 성역할 고정관념을 극복하고 무장단체 소속으로 군 복무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라카잉 주에서 투쟁을 이어가는 아라칸 군의 경우 여성을 전투병과로 모집하고 훈련시켜 서방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습니다. 


물론 논란이 없는 건 아니라서, 이러다간 여성도 전쟁터에서 남성들과 똑같이 희생될 것이다(...)는 좀 마초적인 친정부적 비판이 있는가 하면, 여성을 병력자원으로 활용하는데 그치지 말고, 여성 지휘관 또한 양성시켜 더 많은 여성이 무장단체 지도자 자리에 올라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미얀마 여성계의 비판도 있었습니다.


제니 헤드스트롬(Hedstrom 2016)은 미얀마 소수민족 여성들의 군 복무 경험이 여성인권 강화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고 주장합니다. 그는 까친 독립군 (Kachin Independence Army; KIA) 속 젠더 문제를 깊이 연구하며 많은 여성들이 오랫동안 KIA에서 보급, 의료 등 단체 유지를 위해 필수적인 병과에서 복무해 왔으며, 이런 경험이 까친 여성들의 주체적인 정체성 확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여성도 남성과 같이 민족 공동체를 위해 복무하며 남녀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이 점차 해소됐다는 것이죠.


헤드스트롬이 인터뷰했던 한 여성은 그의 KIA 간부학교 졸업식을 아래와 같이 회상합니다:


"(그곳에 있던) 모든 여자 졸업생들이 최전방으로 가게 해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전선으로 너무 가고 싶었습니다. 모두 굉장히 강하게 요청을 했었어요. 전선에서 싸우는 전우들을 돕기 위해 모든 걸 해 낼 자신이 있었습니다. 여자들도 똑같이 민족과 사회를 위해 봉사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으니까요."




<커버 이미지 - Women recruits perform drills at the Arakan Army base near Laiza in Kachin State on March 9. (Hkun Lat | Frontie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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