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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Feb 07. 2021

미얀마의 청년은 민주주의를 원한다

세상이 무너질 때까지, 미얀마는 평화와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나보고 나오라고 말한다"


웬만하면 미얀마 관련해서는 최대한 밝고 긍정적인 이야기만 전하고 싶었는데, 오랜만에 올려 남기는 글에 마음이 무거워지는 주제로 시작해 착잡합니다.


2021년 2월 1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야당의 불법선거 의혹을 빌미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쿠데타를 위해 미얀마 헌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군부는 집권여당인 민족 민주주의 연합당(NLD)의 당수이자 국가 고문 아웅산 수지 여사와 대통령 윈 미인의 구금을 시작으로, 정당인, 언론인, 사회운동가와 학생운동 지도부를 체포, 구금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나보고 나오라고 말한다" 8888 항쟁의 주역 먀 에이가 체포 전 페이스북에 남긴 말. 그의 딸이자 사회운동가인 와이 흐닌 프윈 톤이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습니다


인터넷과 무선전화망 등 나라 안 통신망을 교란시켜 일사불란하게 국가 행정부처를 모두 장악한 군부는 군부 소유 방송인 먀와디 텔레비전을 통해 "군은 부정선거 혐의를 명백히 조사하기 위해 헌법 417, 418조를 발동, 국가위기상황을 선포하고, 군 총지휘관 민 아웅 흘라잉이 국정을 대리 운영한다"라고 발표했습니다.


저는 이 소식을 캐나다에서 접했습니다. 트위터 피드에는 미얀마 친구들과 연락이 되질 않는다는 트윗으로 가득했습니다. 저도 순간 멍해져 미얀마에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SNS를 통해 안부를 묻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잡혀간다는데, 어떤 말을 써야 그들이 안전할 수 있을까요? 손가락이 쉽사리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안녕, 오늘 잘 있지? 건강하고 안전히 잘 있길 바란다"

"---"


인터넷이 끊긴 그곳의 친구들은 답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박사과정을 밟는 미얀마인 친구에게 급히 안부를 물었습니다. 일생을 평화운동에 바친 그 친구는 같이 얘기를 나눌 때마다 (미얀마의 정치상황에 다소 비판적인 의견을 가진 저에게) 그는 미얀마를 믿는다며, 평화와 민주주의는 비록 천천히 오더라도, 확실히 온다고 말하던 친구였기 때문에 현 상황에 크게 낙심했습니다. 외부인인 제가 미얀마에 평생을 바친 그에게 어떤 위로를 할 수 있을까요?


쿠데타 당일 수도 네피도에서 로드 블록을 형성한 미얀마 군부 병력

아웅산 수지 여사는 쿠데타가 일어날 것임을 직감했는지 평생의 정치 동지 우 윈 테인(현재 국가반역죄로 구금되어 있습니다)에게 아래와 같은 대국민 호소문을 전달했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날 시 공개해달라는 말과 함께. 워낙 뜬소문이 많이 돌아 한때 이 호소문이 진짜인지, 아니면 군부가 대규모 시위를 이끌어 내 유혈진압을 하기 위한 미끼인지 의견이 분분했었습니다. 


호소문이 진실로 밝혀진 지금, 그 호소문을 한국어로 번역해 나눕니다. 제 미얀마어 실력이 사전보고 더듬더듬 이해하는 수준이기 때문에 아마 오역이 넘쳐날, 몹시 거친 번역임을 감안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혹 미얀마어에 능통하신 분이 있을까 싶어 원문도 함께 올립니다:




ပြည်သူသို့ပန်ကြားချက်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 

တပ်မတော်သတင်းမှန်ပြန်ကြားရေးအဖွဲ့က ဇန်နဝါရီလ ၂၆ ရက်နေ့တွင် ဗိုလ်မှူးချုပ်ဇော်မင်းထွန်း ပြောကြားခဲ့သော “တပ်မတော်က အာဏာမသိမ်းဘူးလို့ မဆိုလိုပါ” စကားအရ တပ်မတော်သည် ၂၀၀၈ ခုနှစ် ဖွဲ့ စည်းပုံအခြေခံဥပဒေကို ဖျက်သိမ်းရန် ရည်ရွယ်ကြောင်း နှင့် လိုအပ်ပါ က “အာဏာသိမ်းနိုင်သည်” ဟူသော အနေအထား အထိ လုပ်ဆောင်လာနိုင်သည်ဟု ခန့်မှန်းခဲ့ပါသည်။ 


1월 26일, 군부 대변실 소속 여단장 저우 민 툰이 “군은 정부 전복을 기도할 것인지 말하고 싶지 않다”라고 발언함으로 인해, 저는 군부가 2008년 헌법을 찢어 없앨 필요성이 있을 시, “쿠데타가 가능하다”는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၁၉၈၉ ခုနှစ် နှစ်ဆန်းပိုင်းတိုငး ဒေါ် အောင်ဆန်းစုကြည်သည် ဧရာဝတီတိုင်သို့ စည်းရုံးရေးခရီးထွက်ခဲ့ပါသည်။ ထိုစဉ်က ဧရာဝတီတိုင်း တပ်မတော်တိုင်းမှူးက ဒေါ် အောင်ဆန်းစုကြည်၏ လုံခြုံရေးနှင့် အသက်အန္တရာယ်ကို ထိပါးစေသောပြောဆိုကြုံးဝါးမှုများ ကြေညာချက်များ ထုတ်ပြန်ခဲ့ပါသည်။  


1989년 연초, 저는 에야와디 지역에 유세 운동을 나갔었습니다. 그 당시 에야와디 지역 군 사령관은 저의 안전과 생명을 위협하는 수많은 근거 없는 소문들과 발표들을 공표했었습니다. 


ဒေါ် အောင်ဆန်းစုကြည်၏ အသက်ေန္တရာယ်ထိပါးလာမည့် အရေးကို မျှော်တွေးမိသဖြင့် ထိုစဉ်က အမျိုးသားဒီမိုကရေစီအဖွဲ့ချုပ်ခေါင်းဆောင်များဖြစ်ကြသော သူရ ဦး တင်ဦး (ယခုလက်ရှိနာယကကြီး)၊ ဦးကြည်မောင်(ကွယ်လွန်)၊ ဒေါ် အောင်ဆန်းစုကြည်၏ယုံကြည်စိတ်ချရသူများဖြစ်ကြသော ဦးအေးဝင်း(အာဇာနည်ခေါင်းကြီး ဦးဘဝင်း၏သား) Mr. Leo (မြန်မာနိုင်ငံဆိုင်ရာ ဆွီဒင်နိုင်ငံ၏ဂုဏ်ထူးဆောင်ကောင်စစ်ဝန်)၊ ဦးဝင်းထိန် (ယခုလက်ရှိသဘာပတိအဖွဲ့ ဝင်) တို့နှင့်တိုင်ပင်၍ “သေတမ်းစာ” တစ်စောင် ရေးသားခဲ့ပါသည်။  


저는 제 생명을 위협하는 상황에 직면하자, 그 당시 민족 민주주의 연합당을 이끌었던 (현재 당의 큰 후원인) 영웅 우 틴, (고) 우 찌 마웅 등 제가 신뢰하는 사람들, 그리고(순국자 우 바 윈의 아들) 우 에이 윈, (주 미얀마 스웨덴 명예 영사) Mr. Leo, (현 당 이사) 우 윈 테인과 함께 “유언장” 한 장을 작성했습니다. 


ထိုသေတမ်းစာတွင် လက်ရှိ ဒေါ် အောင်ဆန်းစုကြည် နေထိုင်လျှက်ရှိသော အမှတ်(၅၄/၅၆)၊ တက္ကသိုလ်ရိပ်သာလမ်းနေအိမ်ကို ၎င်း ကွယ်လွန်ခဲ့ပါက ဖခင်ဗိုလ်ချုပ် အောင်ဆန်းနှင့် မိခင်ဒေါ် ခင်ကြည်တို့ အတွက် အထိမ်းအမှတ်ပြခန်းအဖြစ် ပြောင်းလဲထိန်းသိမ်းသွားရန်းဖြစ်ပါသည်။  


그 유언장 속에는 제가 인생을 보낸 54/56번지 유니버시티 아베뉴 길의 생가, 그리고 돌아가신 아버지 아웅 산 장군과 어머니 킨 지의 제사와 추모하는 일을 바꾸고 보존해 나아갈 일에 대해 담고 있습니다. 


ယခုအခါတွင်လည်း တပ်မတော်က နှုတ်ဖြင့်မြွက်ဟပြောကြားခြင်း၊ မြို့ကြီးမြို့ငယ်များတွင် စစ်အင်အားများပြသနေခြင်းတို့ဖြင့် အများပြည်သူအား ခြိမ်းချောက်လျက်ရှိနေပါသည်။  


(그때와 같이) 지금 이 시간 또한 많은 국민들이 군부가 입으로 내뱉는 말과, 크고 작은 많은 도시들 속에서 마치 전쟁에 나가는 듯한 모습들로 인해 불안을 느끼며 살고 있습니다. 


“အာဏာသိမ်းနိုင်သည်” ဟူသော အရေးကို မျှော်ထွေးလျက် ဒေါ် အောင်ဆန်းစုကြည်သည် ၎င်း၏ နိုင်ငံရေးလုပ်ဖေါ် ကိုင်ဖက်အချို့နှင့် တိုင်ပင်ပြီးနောက် ပြည်သူလူထုသို့ပန်ကြားချက်တစ်ရပ်ကို အောက်ပါအတိုင်းရေးသားထားရစ်ခဲ့ပါသည်။  


(그때와 같이 지금도 군부의) "쿠데타가 가능하다"라고 생각되어 저, 그리고 몇몇 동지들이 함께 논의한 후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아래와 같이 적습니다: 

--- 

အမျေိုးသားဒီမိုကရေစီအဖဲ့ချိုပ် ဥက္ကဋ္ဌ ဒေါ် အောင်ဆန်းစုကြည်၏ ပြည်သူသို့ ပန်ကြားချ်က်

"민족 민주주의 연합당 대표 아웅 산 수지 여사가 국민에게 드리는 호소" 


၁။ အမျေိုးသားဒီမိုကရေစီအဖဲ့ ချိုပ်သည် ၂၀၀၉ ခုနှစ် ဖွဲ့စည်းပုံအခြေခံဥပဒေကို လက်မခံသော်ငြားလည်း၊ လွှတ်တော်နိုင်ငံရေးသို့ ဝင်ရောက်ခဲ့သည့်အချိန်မှစ၍ ထိုဖွဲ့စည်းပုံအခြေခံဥပေဒကို လေးစားလိုက်နာခဲ့ပါသည်။ 


1. 민족 민주주의 연합당은 2008 헌법을 수용치 아니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의회 정치로 나아가 당도할 시간이 다가온 바, 현 헌법을 준수해 따르고 있습니다.  


၂။ ထိုဖွဲ့စည်းပုံအခြေခံဥပဒေကို ပြင်ဆင်ရန်အတွက်လည်း ဥပဒေဘောင်အတွင်းမှ အစဉ်တစိုက်ကြိုးပမ်းခဲ့ပါသည်။  


2. 우리는 오직 헌법 개혁을 위해 그리고 법 준수를 위해 노력하고 있을 뿐입니다.  


၃။ ၁၉၉၀ ခုနှစ်အထွေတွေရွေးကောက်ပွဲ၊ ၂၀၁၂ ခုနှစ်ကြားဖြတ်ရွေးကောက်ပွဲ၊ ၂၀၁၅ ခုနှစ်နှင့် ၂၀၂၀ ခုနှစ်အထွေထွေရွေးကောက်ပွဲများထွင်လည်း တည်ဆဲ ရွေးကောက်ပွဲဆိုင်ရာဥပဒေ၊ နည်း ဥပဒေများနှင့် အညီလိုက်နာ၍ယှဉ်ပြိုင်အနိုင်ရခဲ့ပါသည်။  


3. 우리는 1990년 총선, 2012년 재보선 선거, 2015년과 2020년 총선을 현존하는 선거법과 그 외 법안을 준수하며 완전한 승리를 했습니다. 


၄။ ဤစာကို အများပြည်သူတို့ ဖတ်ရူရချိန်တွင် တပ်မတော်သည် ၎င်းတို့ကိုယ်တိုင်ရေးသားအတည်ပြုခဲ့သော၂၀၀၈ ခုနှစ် ဖွဲ့စည်းပုံအခြေခံဥပဒေကိုပင် လစ်လျှုရှုပစ်ပယ်ပြီး ပြည်သူလူထုကြီးက တခဲနက်ဆန္ဒမဲပေး၍ တရားဝင်ရွေးချယ်တင်မြှောက်ထားသော မိမိတို့လွှတ်တော်နှင့် အစိုးရအဖွဲ့ကိုလည်း ဖျက်သိမ်းခဲ့ပါသည်။  


4. 여러분이 이 글을 읽는 순간, 군부는 우리들의 요구로 기어코 관철한 2008년 헌법을 무시하고, 존경하는 유권자가 투표로 선출한 정부와 의회를 무너뜨리려 할 것입니다.  


၅။ တပ်မတော်၏ လုပ်ရပ်သည် ယခုအခါ အများပြည်သူတို့ ရင်ဆိုင်နေရသော ကိုဗစ်ရောဂါကပ်ဆိုးကြီးကို ဂရုမြားသည့်အပြင် တိုင်းပြည်အား စစ်အာဏာရှင်စံနစ်အောက်သို့ ပြန်လည်သွတ်သွင်းရန် ကြိုးပမ်းသောလုပ်ရပ်ဖြစ်ပါတည်။သို့ဖြစ်ပါ၍ တပ်မတော်မှအာဏာသိမ်းခြင်းကို ပြန်လည်သူလူထုအနေဖြင့် လုံးဝလက်မခံဘဲ တခဲနက် ဆန့်ကျင်တုံ့ပြန်ကြပါရန် တိုက်တွန်းလိုက်ပါသည်။   


5. 이러한 군부의 행동은 이 시간 수많은 사람들이 감내하고 있는 코로나 19의 확산을위급히 막고 있는 이 나라를 군사독재 속으로 다시금 밀어 넣고자 하는 행동입니다. 그러하여, 우리는 국민들에게 군부의 정부 전복 행위를 부디 용납하지 말고, 다시 한번 저항하는 국민의 행동으로 함께 뭉쳐 저항, 또 저항을 호소, 또 호소합니다.


ပြည်သူသာလျှင် အမိက ဖြစ်ပါသည်း။

오직 국민이 있어야 제가 있습니다 


ဒေါ် အောင်ဆန်းစုကြည်

아웅    여사  




2월 6일 양곤 흘레단 삼거리로 나서는 시민들. 맨 앞에 선 두 사람 중 우측 여성은 로힝야 학살을 목소리 높여 비난한 사회운동가 중 하나입니다. 까렌 전통복장이 인상적입니다.


"다시 한번 저항하는 국민의 행동으로 함께 뭉쳐 저항, 또 저항을"


쿠데타 당일 새벽의 혼란과 당혹감을 뒤로한 채 미얀마 사람들은 행동에 나서고 있습니다. 2021년에 맞춰 인터넷, 그리고 인터넷의 주 사용자층인 청년들이 저항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미얀마에서는 인터넷 그 자체나 마찬가지인 페이스북 페이지와 그룹을 통해 일반 시민들이 저항에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공지하는가 하면, 경찰 배치 현황, 그리고 현지 언론의 솔직하고 용감한 보도가 배포되고 있습니다. 답신이 없었던 제 친구들도 인터넷망이 복구되자 군부 욕을 한 바가지를 쏟아붓는 걸로 답을 대신하며 저항에 참여했답니다.


그중 외신의 큰 주목을 받은 운동은 "악귀 쫓아내기" 운동입니다. 큰 소리를 내서 악귀를 쫒는 전통 풍습에서 착안, 매일 저녁 8시마다 집에 있는 대야와 냄비, 프라이팬 등을 두들기는 시위가 매일매일 이어지고 있습니다. 인터넷 접속상태가 불안정하고 온갖 뜬소문이 나도는 와중에 "매일 밤 저녁 8시"에 군인들 물러가라- 하고 가재도구를 두들기는 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지 로이터 소속 기자가 올려 전한 영상입니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 쿠데타 반대 운동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프로필 사진을 NLD의 상징색인 빨간색으로 한껏 꾸며 올리지 않으면, 아웅산 수지 여사의 이미지를 올리거나, NLD 당기를 올리거나, 아니면 빨간 NLD 당기를 배경으로 한 아웅 산 수지 여사의 이미지를 올리거나(...) 미얀마 민주주의의 상징을 한껏 끌어다 인터넷 공간에 때려 붓고 있습니다.


그리고 군부에 대한 도전의 의미로 손가락을 들고 찍은 셀카를 SNS에 릴레이처럼 올리고 있습니다. 영화배우 패잉 표 두(ပိုင်ဖြိုးသု - Paing Phyo Thu), 모델 파잉 타콘(ပိုင်တံခွန် - Paing Thakon) 등 청년층이 사랑해 마지않는 스타들도 이 인증 릴레이에 동참했습니다. 


동맹 파업을 하는 간호사들도...
저 멀리 방글라데시에서 고향 땅을 그리워하는 로힝야 난민들도...
미얀마 최고 영화배우도...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도 모두 세 손가락을 들며 인증숏을 남기고 있습니다.


페이스북을 중심으로 미얀마 시민들의 저항운동의 방법과 결과가 공유되자 군부는 페이스북을 2월 7일까지 금지시켰습니다. 그런 행위를 비웃듯 미얀마 시민들은 트위터, 인스타그램 등 다른 플랫폼으로 옮기는가 하면, VPN을 통해 페이스북에 접속하고 있습니다. 군부가 이번 주말의 시위 확산세를 저지하고자 잠깐 인터넷을 끊기도 했지만, 하루를 조금 버티곤 망을 다시 복구했습니다.


현장에서 민주화 운동을 목격, 기록하고 있는 아이 민 탄(Aye Min Thant - 퓰리처 상 수상자입니다)은 "나는 지금 진짜로 찻집에 앉아 아저씨들한테 VPN 쓰는 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내가 판티야(미얀마 ICT 지원 NGO)에 일하던 때가 생각난다"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세상이 무너질 때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글을 남기는 2021년 2월 7일 오후 양곤에서의 시위. 술레 파고다 근처로 보입니다.


제가 글을 쓰는 지금, 미얀마 시민들은 인터넷 공간을 벗어나 현실에서도 실력행사에 나섰습니다. 쿠데타가 일어난 날부터 미얀마 전국의 의료진, 교육자, 공기업, 공무원들이 쿠데타를 반대하는 동맹파업에 나서고 있습니다.


어제부터 시작된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는 이틀째 미얀마 대도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평화로운 가두행진을 하며 "민주주의 쟁취 - 우리의 의무!"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경찰과 맞닥뜨리면 "국민의 경찰! 국민의 경찰!"을 연호하며 (공식적으론 군부의 통제를 받는) 경찰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시민들은 서로에게 물과 간식을 나눠주고, 땡볕에 고생하는 경찰들에게도 물과 꽃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꼰대미 작렬하던 동네 이모 삼촌들도, 흘라잉 타야 공단지구에서 불철주야 작업하던 누나 동생들도 도시락 바구니를 들고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시위대를 지나는 버스기사, 택시 운전자들도 창 밖으로 세 손가락을 내보이거나 빵빵 경적을 울리며 시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NLD 정권이 들어서도 많은 핍박을 받았던 사회운동가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맨 앞에서 시위대를 이끌고, 온갖 소송과 살해 협박으로 마음고생이 심했었던 기자들도 다시 한번 카메라를 들고 민주화 운동 현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1988년 8월 8일에 시작한 민주화 운동, '8888'항쟁 때 불리던 노래 '카바 마쩨부(ကမ္ဘာမကြေဘူး - "세상이 무너질 때까지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가 다시 불리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임의 행진곡'정도 위치의 노래입니다. 미얀마의 뜨거웠던 1988년 8월 8일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트기 전이 제일 어둡다고 합니다. 


미얀마도 곧 긴 밤이 끝나고 저 멀리에 밝은 동이 틀 것임을 믿습니다.




저지선을 만든 경찰에게 꽃을 나눠주는 미얀마 시민들. 2021년 2월 7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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