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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Mar 04. 2021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납시다"

2021년, 군부에 맞서는 미얀마 청년들이 남긴 말들


군인들이 사람들 머리를 향해 쏘고 있어.
시위를 해산하려는 게 아니라 그냥 살인을 하려는 거 같아.
매일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도 우리나라는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어.
어쩌면 좋지?


요즘 메신저로 계속 본인이 접하는 시위 소식을 전달해주는 친구 '수'가 남긴 말입니다 (혹시 기억하시나요? 작년 코로나 19 시국에 직장 동료들과 돈을 모아 이웃에게 식자재를 나눠준 친구입니다). 지속적으로 시위와 시민 불복종 운동(CDM)에 참여하고 있는 수는 최근 시위에 참가했다 경찰의 집중 사격을 피해 저녁 늦게까지 미얀마 플라자(양곤에 위치한 몹시 큰 쇼핑몰입니다)에 갇혀 있다 간신히 탈출한 청년들 중 하나였습니다.


수 뿐만 아니라 제 대부분의 친구와 옛 동료들도 거리에 나와 시위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가까이 일했던 쩌 삼촌은 팔에 혈액형과 응급 연락처를 적었으며, 이름을 언급하기 어려운 다른 친구는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저항하는 미얀마 청년들의 목소리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그들이 시위에 나가며 무슨 기록을 남겼는지, 그리고 군부의 폭력성이 하늘까지 솟은 지금, 어떤 방법으로 저항을 계속하고 있는지 사진과 함께 간단히 남겨봤습니다. (오역이 있을 수 있음을 미리 양해 부탁드립니다)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쨔 신 양이 피격당하기 직전 찍힌 사진들. 깝깝할 때는 달달한 탄산음료가 생각이 많이 나죠? 쨔 신 양도 그랬던지 한 손에 콜라병을 든 모습이 참 마음이 아픕니다.

19세 쨔 신(중국명 덩지아신, 영문명 엔젤)양은 만달레이에서 시위 중 피격당해 사망했습니다. 그와 태권도장을 같이 다녔고, 당시 현장에 있었던 친한 친구 먓 뚜 양은 쨔 신 양이 그에게 마지막으로 "앉아! 앉아! 총에 맞을라! 그렇게  있으면 마치 무대 위에  혼자  있는  같잖아"라는 말을 남겼다고 합니다.


쨔 신 양은 그의 마지막 시위에 참가하기 전 장기 기증을 부탁하며, 친한 친구에게 SNS 메신저로 "혹시 두 번 다시 말해줄 수 없을까 봐 메시지를 남긴다. 나는 너를 몹시 사랑해. 그걸 꼭 잊지 말아 줘" 하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사나라는 친구가 혈액형, 긴급 연락처와 유사시 장기 기증을 부탁하다는 메시지가 담긴 카드.
"ကျွန်မ လူကောင်းအတိုင်းပြန်ဖြစ်ဖို့
မသေချာတော့ဘူဆိုရင် ကျေဇူးပြုပြီးမကယ်ပါနဲ့ --။
ခန္ဓာကိုယ်မှအသုံးဝင်သေးသောအစိတ်အပိုင်းအာလုံးကို လှူပါတယ်။
ကျေဇူးတင်စွာပြီး - စ္နၖ ကူး"

"저는 선행을 하고자,
만약 (제가 다쳤을 시) 제 상태가 확실치 않다면 부탁컨대 치료를 지속하지 마세요.
제 몸속에 남은 쓸만한 장기를 나누어 기부하고자 합니다.
감사를 올리는 마음으로- 사나 서명함"


쨔 신 양과 같이 사선에 나서는 많은 청년들은 장기 기증을 부탁하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습니다. 사나(စ္နၖ)라는 친구도 위와 같은 메시지를 적은 카드를 목에 걸고 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사나는 다급한 상황 속에 이 카드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그가 위험에서 벗어나 무사히 잘 있기를 바랍니다.



니니 아웅 텟 나잉이 남긴 마지막 말(좌), 그리고 니니 아웅 텟 나잉의 빈소를 지키는 그의 고양이(우)


"ဒါလေး ပြိုင်တူတင်ရအောင်"

"지금,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납시다"


IT 엔지니어로 일하던 청년 니니 아웅 텟 나잉은 2월 28일 양곤 흘레단에서 군경에게 피격당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가 피격당해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그리고 총격을 피하던 청년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앰뷸런스로 옮기는 모습이 인근 아파트 발코니에서 취재를 하는 기자들에게 찍혀 미얀마인들에게 큰 아픔을 안겨주었습니다.


니니 아웅 텟 나잉은 시위에 참가하기 직전 페이스북에 "지금 우리 모두 함께 일어납시다" 라는 말을 남기고 먼 길을 떠났습니다.


그의 쌍둥이 형제는 그의 장례식에서 니니 아웅 텟 나잉의 고양이가 집사가 그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난 걸 아는지, 그의 영정 사진을 떠나지 못하는 모습을 SNS에 공유하기도 했습니다.


이 분은 군부의 타깃인지라 이 분이 누군지 이름은 공유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မကြောက်တာက သတ္တိ မဟုတ်ဘူး ကြောက်လျက်နဲ့ လုပ်ရဲတာ - သတ္တိပဲ"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는 용기가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행동에 나서는 것 - 오직 용기만!"


이 인권운동가는 본인 SNS에 자기가 시위에 들고나간 팻말을 공유했습니다. 이제는 전설이 된 존 웨인의 대사를 미얀마어로 의역한 것 같습니다.


미얀마 청년들의 이런 용기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모든 시위자들이 집권여당인 NLD를 지지한 것도 아니고, 아웅 산 수 치 여사를 지지하는 입장은 아닙니다. 당장 저 사진의 주인공도 NLD가 정권을 잡았던 시절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 로힝야 학살, 그리고 언론인 탄압에 대해 핏대를 올리며 비판한 사람들 중 하나였습니다. 아웅 산 수 치 여사의 많은 실책과 NLD의 생각보다 비자유적인 모습에도 불구하고 민의를 거스른 쿠데타를 다시는 앉아 지켜보고 있을 수 없다는 마음 이리라 짐작합니다. 심지어 아버지가 군부 지명 상원의원을 지냈던 그 친구마저도 주변 사람들에게 총상 대처와 지혈방법을 공유하며 민주화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시위에 참가하는 어느 이름 모를 학생은 대자보에 "어머니, 걱정하지 마세요. 이번엔 꼭 이길 때까지 싸우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이 범 국가 저항운동의 결과가 어떻게 되던, 시위에 참여한 모두가 똑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그 와중에도 드립 본능을 이기지 못하는 청년들


"စစ်တပ်ဆိုတာ
အမျိုးသမိးထုအတွက်
ကပ်စွာတစ်ခု လောက်တောင်
လုံခြုံမူမပေးနိုင်ဘူး"

"군부라 하는 것들은
여자나 치고 다니는
끔찍한 배신자들 뿐.
(우리들) 안전도 보장하지 못하는 것들."


절박한 와중에도 미얀마 사람들의 해학은 멈추지 않습니다. 혹시 미얀마 여성들을 괴롭히는 '폰' 문화와 여성을 부정스럽게 여기는 인식에 대해 기억하시나요? 미얀마는 여성의 속옷, 또는 생리혈을 보거나, 손에 닿으면 일종의 기운인 '폰'을 빼앗겨 큰 부정을 타게 된다는 참 할 말이 없어지는 미신이 존재한답니다.


내전이 지금보다 더욱 격렬히 일어나던 시절, 미얀마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은 이 미신을 이용해 여성의 속옷이나 생리혈을 나무나 수풀에 걸어놓는 부비트랩(...)을 설치하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미신이 깊숙이 자리 잡은 미얀마 군인들에게 정신적 고통을 한껏 안겨주려는 의도였지요.


까친 주 미치나의 여성들은 속옷과 생리대를 내걸며 시위 저지선을 구성했습니다. (우) 새빨갛게 칠한 생리대에 군부 지도자 민 아웅 흘라잉 사진을 붙여 저주한게 인상적입니다.(좌)


이를 이용해 까친 주 미치나의 여성들은 시위대의 안전과 군경의 기분 더러움을 위해 옷장을 털었습니다. 빨갛게 칠한 생리대에 군부 지도자 민 아웅 흘라잉의 얼굴을 붙여 길에 뿌리지 않으면, 속옷과 생리대로 시위 저지선을 만들어 가까이 다가오는 군경의 폰을 단숨에 빼앗아(?) 버리고 있습니다.


또한, 민 아웅 흘라잉의 얼굴을 인쇄해 저지선 바로 앞 길바닥에 촘촘히 붙이기도 했습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머리를 몹시 신성한 부위로 여기고, 사람 머리를 치는 것은 물론,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 또한 몹시 조심스러울 정도로 머리에 대한 에티켓(?)이 상당합니다. 그 신성한 부위를 발로 잘근잘근 밟는 것은 몹시나 부정을 타고, 또 굉장히 큰 모욕이죠. 그래서 그런지 시위대가 집에 간 후 경찰들이 길에 쭈그려 앉아 도로에 드넓게 도배된 민 아웅 흘라잉의 얼굴을 조심스레 떼내고 있는 모습이 심심찮게 포착돼 웃음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뿐인가요, 어제는 경찰들이 보는 사람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민 아웅 흘라잉 얼굴을 일부러 밟으며 지나가는 모습이 영상으로 찍혀 공유되어 미얀마 페이스북에서 크게 흥하기도 했답니다.


그 짝 사람들도 뭐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아니겠죠... 뭐 그러리라 믿습니다...


또한 밈 컬처에 푹 빠진 미얀마 청년들은 아래 사진과 같은 밈을 만들어 뿌리기도 했답니다. 실제 시위 현장에서 찍힌 사진이라 그런지 미얀마 개드리퍼(...)들에게 사진 속 청년의 용기가 큰 인상을 준 모양입니다:

인터넷에 익숙한 미얀마 청년들의 개드립 본능은 멈추지 않습니다.




미얀마 청년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그들의 말을 부디 기억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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