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어떤 민족입니까? 정치학이 바라본 민족 정체성
"... 그래서, 한국인의 민족 정체성은 개화기에 서방으로부터 도입된 근대적인 개념이라 하겠습니다"
"슈미드 교수님, 하지만 한민족은 예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오래된 공동체가 아닌가요? 조선인들은 서로를 조선인이라 여겼는걸요"
한 한국인 학생이 물었습니다 (소식을 듣자 하니 요즘 외신기자 하더라고요. 참 똑똑한 친구였습니다).
"프랑스라는 정치공동체도 참으로 오래됐습니다만, 프랑스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프랑스인이라 여긴 건 아니지요? 프로방스인과 브르타뉴인이 서로를 프랑스라 부른 것은 아주 최근의 일이랍니다. 당시 조선이란 정치공동체 안에 살았던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답니다."
제가 학부 애기였던 시절의 일입니다. 토론토 대학교의 한국 근대사 강의는 강의를 맡은 앙드레 슈미드 (한국에서도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이란 책으로 유명하신 분이죠)와 한국 학생들 간의 논쟁으로 첫 주를 시작하곤 했습니다. 슈미드 교수와 한국 학생들 간 '한민족'의 시작점에 대한 견해가 몹시 달랐거든요.
슈미드 교수는 민족이란 개념을 서구적인 개념으로 보아, 19세기 말에나 한반도에 도입된 개념이라 보는 입장이었던 반면, 우리 한국 학생들은 국사 교과서에 발맞춰 아주 오래전부터 한반도 거주민들이 늦어도 고려시대에 들어 함께 공유한 오래된 공동체 의식이라 생각했었습니다.
사실 민족이 무엇인지는 아직도 학자들 간 키배의 영역입니다. 워낙 민족이란 개념이 뜬구름을 잡는 개념이기 때문에 민족이란 개념이 뭘 포함하는지 좀 많이 애매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민족을 문화, 언어, 혈통적인 동질감, 역사적 기억 등의 특징을 공유하는 하나의 사회적 공동체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버나드 약(Yack 2015)은 민족을 "서로가 동일한 공동체와 역사적 유산을 공유한다고 믿는 우발적인 공동체"라 정의합니다. 너와 내가 우리를 한 민족이라 여기고, 어떤 기억을 함께 공유하고 기념하기 때문에 너와 나는 한 민족이다- 라는 얘기죠. 예를 들자면:
'짝 짝 짝짝짝'
... 하면 한국인이라면 당연 "대~한민국"이 나오겠죠? 1-1-3 박수 후에 대한민국이 나오고, 왠지 귓가에 소프라노 목소리가 들리며 홍명보가 두 팔을 쭉 펴고 웃으며 앞으로 달려 나와야 할 것 같고... 그리고 이 모든 걸 자연스레 연상하는 우리들 모두가 이걸 연상하는 모두를 한국인이라고 여기니 우리들이 한민족이라는 얘기입니다(...)
우리가 홍명보(?)를 한민족의 상징으로 여기듯, 각 공동체는 그네들이 중요하다 여기는 몇 가지의 특징을 뽑아 그것을 민족 공동체의 증거로 흔히 삼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의 경우 혈통의 흐름에서 공동체를 찾아 한국인의 혈통을 지닌 사람을 한민족이라 여기는가 하면, 프랑스 또는 미국과 같이 국가관, 또는 사회의 가치에 동의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를 하나의 민족이라 여기기도 합니다.
그린펠드(Greenfeld 1983)는 한국과 같은 경우를 혈족 민족주의 (Ethnic nationalism), 프랑스, 미국과 같은 경우를 시민 민족주의(Civic nationalism)라 불렀습니다... 만, 이에 대한 반론도 참 많았습니다. 대표적으로 버나드 약은 시민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사람들이 과연 그곳에서 태어나지 않았으나, 같은 사회적 가치를 공유하는 이방인을 완전히 같은 민족으로 여길 수 있는지, 그리고 시민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나라 속엔 정말로 합의된 국가관에 배치되는 사상을 가진 이들이 없는지를 물으며 시민 민족주의는 허상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참 애매하죠? 이렇게 애매하기 때문에 많은 학자들이 "민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은 잠시 덮어두고 민족 개념의 근원, 그리고 민족 개념의 영향을 더 흔히 공부한답니다.
과거에는 민족이란 개념이 예부터 유유히 전해지는 하나의 특성이라 여겼습니다만, 사회과학이 진보함으로써 우리는 이제 민족이 사회 공동체의 편의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에 어느 정도 합의를 보고 있답니다. 베네딕트 앤더슨(Anderson 1991)은 민족은 근대화의 산물로, 서로가 공통된 언어를 공유하고, 같은 문화적 바탕을 공유하기 시작하며 만들어진 상상의 공동체라고 주장합니다.
예를 들어 유럽에서 활자 인쇄가 보급된 후 여러 나라에서 성경, 백과사전 등 보편적으로 읽히는 책을 입말로 번역하며 나라 안에 하나의 공통어가 주된 언어로 자리 잡았고, 모두가 같은 입말로 같은 책을 읽으며 하나의 공동체로서의 동질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앤더슨은 근대화와 함께 입말 사전을 집필해 보급한 사람들을 민족 공동체 수립의 선구자라 여겼습니다.
물론 이런 민족 공동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게 아니라 역사적인 뿌리를 두고 있답니다. 한국인이 한국인이 될 수 있는 것은 한국인들이 가진 보편적인 믿음(빨간펜으로 이름 쓰면 큰일 나요)과 습관(깻잎 사랑), 그리고 서로 간 공유하며 전래된 이야기들(인간으로 변신하려면 삼칠일 동안 달래와 쑥을 섭취하면 좋다), 그리고 서로가 고향이라 여기는 영토(한반도)의 존재 등이 한민족의 '특성'을 이룰 수 있는 여러 가지 재료를 마련해주기 때문이죠. 따라 앤소니 스미스(Smith 1986)는 민족을 구성하는 특징이 굉장히 오래됐음을 지적하며, 민족은 역사적으로 내려오는 여러가지 뿌리를 취합해 만들어진다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이런 뿌리를 배합해 민족 공동체로 새로이 빚어내는 과정은 필수적으로 사람의 손을 타게 됩니다. 앤더슨은 책과 입말의 전파가 민족을 만들었다고 주장했지요? 그렇다면 책을 찍어낼 자본이 있는 사람, 어떤 책을 어떤 입말로 찍어낼지를 결정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국경 안에서 어떤 말을 써야 하는지 정할 수 있는 사람들은 모르긴 몰라도 민족 공동체의 특성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그리고 짐작하셨겠지만, 이런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사람들은 보통 한 사회의 큰 권력자였겠지요? 홉스봄(Hobsbawm 1983)은 생전에 민족의식을 이러한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통치행위와 지배받은 인민들의 희생을 정당화하기 위해 구성한 내러티브, 그리고 그 내러티브를 강화하기 위한 기념비, 제사의식 등의 행위로 인해 이뤄진 "만들어진 전통"이라고 주장했었습니다.
예를 들어, 1차 대전을 겪은 영연방 나라들은 1차 대전이 종료된 11월 11일을 Remembrance Day, 달리 말해 현충일로 부르며 기념하고, 휴전협정이 효력을 실시한 오전 11시에 전몰자를 기리는 기념행사를 진행합니다. 늦가을 즈음에 영연방 나라들을 여행하신 분들은 아마 아시겠지만, 가슴에 양귀비 꽃을 형상화한 핀을 단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모든 마을에는 전몰자들을 기리는 기념비가 서 있고, 역사가 좀 된 학교에는 학교 재학생 전사자들을 기리는 명패가 여기저기 달려 있기도 하지요. 역사가 비교적 짧은 캐나다와 같은 영연방 나라의 경우 비미 능선 전투, 노르망디 상륙작전 등 양차 대전의 기억, 그리고 그 기억을 기념하는 행위를 민족 공동체의 근간으로 여기기도 합니다.
시답잖은 이유로 일어난 전쟁에 끌려가 어쩌면 정말 의미 없는 죽음을 당한 젊은이들의 희생에 의미를 부여하고, 젊은이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 통치행위를 자유니, 정의니 따위의 내러티브로 정당화하기 위한 행위라고 봐야겠지요. 그리고 그 아픈 내러티브를 그 공동체 속 사람들이 공유하며 민족적 동질감을 느끼는 것이겠습니다.
이런 만들어진 전통 따위에 왜 사람들이 목숨을 걸곤 할까요? 다음회에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