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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Jul 15. 2020

연구 중립성도 폭력이 될 수 있을까?

안토니오 그램시는 글을 쓰는 것이 곧 권력이라는 말을 했습니다만...

이번 달 초에 드디어 7개월간 쓰고 고치고를 반복한 학술 블로그 글이 게재되었답니다. 젠더의 시각으로 미얀마의 내전을 관찰하고, 전쟁이 각 젠더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를 조사하고, 젠더를 지금과 같이 무시하면 안 된다는 주장을 담은 글이었습니다. (그리고 글에 녹아들어 간 여러 미얀마인들의 경험은 '만두박사 필드 리서치 일기'에서 확인할 수 있답니다)


글에 게재되기 전 동료평가*를 진행하던 도중 한 리뷰어가 코멘트를 남겼습니다:


"대부분 괜찮고 조금씩만 손 보면 될 거 같은데요... 미얀마 내 무장단체에 대해 너무 부정적인 톤으로 글이 나가는 것 같아요. 전쟁으로 인한 문제에 눈을 감자는 얘기는 아니지만, 무장단체와 정부군의 폭력을 병기한 부분을 조금 더 '균형 잡힌' 시각으로 수정해 주세요"


아무래도 정부군에 맞서 용감한 저항을 지속하는 여러 무장단체들이 글 내내 정부군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는 게 못내 마음에 걸렸던 것 같습니다. 이 리뷰어는 미얀마 카렌 주에서 오랫동안 거주하며 카렌족 커뮤니티를 깊이 연구한 친구였거든요.


보통 학술적인 공간에서 쓰이고 올라가는 글은 여러 학자들의 동료평가(peer review)를 통해 수준을 검증받는 작업에 들어가게 된답니다. 권위 높은 학술지의 경우 객관적인 평가를 위해 몇 차례의 익명 평가를 하기도 합니다.

제 글이 게재된 티 써클(Tea Circle Oxford)은 아무래도 연구자들 외에도 다양한 사람들이 미얀마에 대한 글을 올릴 수 있도록 마련된 플랫폼인 만큼 그 정도로 빡세지는 않았답니다.




"Calling a fig a fig (그저 무화과를 무화과라 부르는 것)"이라는 영문표현이 있죠? 괜히 말을 빙빙 돌리지 않고, 보이는 걸 곧이곧대로 집어 말하겠다는 뜻이랍니다. 홍시맛이 나서 홍시맛이 났다고 말했을 뿐이라는 소줏간의 어느 아이처럼, 저도 글을 쓰고 조사를 할 때 관찰한 걸 곧이곧대로 적는 걸 좋아합니다. 특히나 정의와 불의가 불분명한 전쟁과 폭력을 공부하기 땜시롱 제가 양측에 공평할 수 있는 제일 최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행동만 있을 뿐, 행동의 결과와 명분은 고려하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제가 연구를 할 때 기본적으로 지키는 위와 같은 방침을 연구 중립성이라고 흔히 부릅니다. 학술연구는 그 결과에 따라 사람들의 사고를 휙휙 바꿀 수 있기 때문에 사감을 넣어서 연구를 하는 행위는 아주 좋지 않은 행동입니다. 연구자의 정치적인 믿음이나 개인적으로 가진 신념이 연구에 흘러들어 가기 시작한다면 진실과는 퍽 동떨어진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기 때문이죠.


따라 리뷰어가 위와 같이 '균형 잡힌' 시각으로 수정해 달라고 했을 때, 저는 그것을 제가 가진 연구 중립성에 대한 신념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미얀마의 비정부 무장단체들도 '독립투사'라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민간인 살해, 성폭력, 강제징집, 지뢰 설치 등 국제적으로 지탄받을 수 있는 일들을 자주 저지릅니다. 비록 미얀마 정부군의 수준은 아니지만, 전쟁이 본래 사람이 죽고 다치는 일이다 보니 전쟁터에서 나타날 수 있는 모든 추악한 일들이 편과 관계없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해야겠지요.


저는 이런 것을 솔직히, 그리고 가감 없이 드러내 보고하는 것을 연구자로서 제 본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구시렁거리며 리뷰어가 하란대로 글을 고쳤답니다 얼른 안 올라가면 교수님한테 혼나니까




하지만 이 리뷰어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위 리뷰어는 수정된 텍스트를 검토하며 다시금 내용을 조금만 더 다듬고, 더 많은 출처를 제시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였답니다:


"제가 미얀마 무장단체들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아니면 뭐 사실을 숨겨달라고 하는 부탁이 아닙니다. 그저 전쟁터의 폭력에 관련한 사실을 폭 넓게 명기하는 것은 미얀마 소수민족 주에 들어가는 국제사회의 지원의 정도와 규모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특히나 국제사회와 함께 지역사회 개선사업을 시도하는 여러 무장단체들의 정당성을 크게 훼손할 수 있어서요."


리뷰어의 설명을 읽자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저는 마치 벽에 붙은 파리와 같이 가만히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목격하며 "진실"을 기록하는 게 제 본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리뷰어는 서구인의 입장에서 본 세상을 객관적으로, 드라이하게, 나열하는 것이 제가 연구하고자 하는 세계 속 "생태계"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생각해달라는 부탁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의 연구와 글쓰기가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우려였던 것입니다. (연구 윤리를 위해 익명성을 보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쓴 글에 사람들이 크고 작은 피해를 받는다면, 그것 또한 연구 윤리에 벗어나는 일이겠지요.


요기 이 애기와 같은 아이들의 삶이 영향받을 수 있다고 하니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3MDG/UNOPS)




엘리 비젤은 "우리는 항상 편을 들어야 합니다. 중립은 항상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를 돕습니다. 침묵은 고통에 몸부림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위입니다" 라 주장한 바 있습니다.


물론 가해자의 행동에 분노하며 연구자가 편을 들게 된다면, 연구자가 관찰한 것은 진실이 아닌 편향된 연구자만의 시각일 수도 있겠습니다. 하지만, 미얀마와 같이 정당성이 결여된 '가해자'가 존재하는 곳에서 중립을 지킨다는 것은 어쩌면 그 사회에 내재된 힘의 불균형을 무시하는 가해자에게 힘을 실어주는 행위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요즘 "진실"과 "정의" 사이에서 큰 고민을 하고 있답니다. 물론 진실을 규명하는 게 즉 정의일 때가 훨씬 많지만, 가끔은 정의를 추구하기 위해 객관적인 "진실"과 조금은 멀어져도 괜찮을까- 하는 고민을 종종 하곤 합니다. 명확한 답은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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