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은 대립하는 두 주장 사이 어딘가에 있을까요?
** 아래 내용은 2022-23년 태국-미얀마 국경에서 청취된 내용을 바탕으로 각색됐습니다 **
혹시 라쇼몽이라는 영화를 아시나요?
라쇼몽은 한 사무라이 살인사건의 내막을 밝히기 위해 살인 용의자인 도적, 사무라이의 아내, 심지어 사무라이의 혼령(!)까지 불러내 진술대조를 한 내용을 담은 영화입니다. 스스로 자기의 이야기가 진실이라 주장하는 세 사람의 이야기는, 큼지막한 몇 가지 사실 빼고는 서로 맞는 점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도적은 현란한 검술실력을 발휘해 사무라이의 아내를 겁탈하고 사무라이와의 대결에서 승리했다고 주장했지만, 사무라이는 자기는 싸움에 진 적이 없으며, 겁탈당한 아내가 되려 도적에게 자기를 죽이라며 닦달하는 것에 대한 치욕감에 자살을 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는 식이죠.
라쇼몽은 실제로 현장을 모두 목격한 제4자, 나무꾼의 눈을 빌어 진실은 엇갈리는 세 개의 이야기보다 더 보잘것없고, 추악하며, 흑과 백이 나뉘지 않는 짙은 잿빛이었음을 관객에서 보여줍니다.
2012년, 미얀마 군부와 휴전협정을 맺은 KNU 또한 그 안에서 서로 대립하는 세력,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탓하는 이야기들이 엇갈리고 있습니다. 마치 라쇼몽처럼.
사건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2012년, 계속된 전쟁에 지친 KNU는 당시 지도자 보 먀 장군의 결단으로 휴전을 고려하게 됩니다. 2000년대 초부터 몇 차례 미얀마 군부와 KNU의 휴전 협상단이 태국과 미얀마 본토를 오갔지만 큰 진전은 없었습니다. 군부가 '총을 내려놓고 정당을 꾸려 민간정부 수립에 참여하라'는, 즉 '합법적 정치 안으로 들어오라'는 좀 헛물켜는 요구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군부의 입장은 2008년에 새로이 군부에 유리한 헌법을 만들고, 친군부 정당이 들어서 정권을 잡으며 조금 변화가 생깁니다. 당시 친군부 정권의 수장이었던 떼인 세인은 KNU를 비롯한 모든 소수민족 무장단체들에게 조건 없는 평화회담을 제의했습니다. 무기를 내려놓지 않아도 되고, 병력을 해산시키지 않아도 좋으니 휴전으로 현 상황을 유지하며 내전을 끝낼 길을 찾자는 제의였습니다.
물론 그 휴전의 말로야 2021년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금 와선 빛 좋은 개살구였었다는 점이 까발려졌지만, 당시 많은 무장단체들이 떼인 세인의 제의를 아주 진지하게 고려했었습니다. 표면상 잃을 게 없는 정치회담 제안이었으니까요. KNU 또한 그 제안을 진지하게 받아들여 다시금 휴전을 고려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싸우기 위해 총을 든 게 아냐. 제대로 된 대화를 위해 총을 든거지."
한 KNU지도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카렌 민족에게 평화를 가져다줄 수 있다면, 그 어느 제의든 진지하게 수용하고 협상에 임하는 게 우리 당의 방침이야. 싸움은 협상을 위해 하는 거지, 협상이 있는데도 싸움을 하는 것은 무의미한 살육이다."
그 이유로 2012년 1월, 당시 KNU를 이끌던 데이비드 딱카보 의장과 지포라 세인 부의장은 최고위급 인사들로 구성된 협상단을 보내 미얀마 군부의 제안을 받기로 했습니다. 임무는 '군부 측 협상단과 만나 서로의 조건과 제안을 교환하고, 그 결과를 논의하기 위해 사령부로 돌아온다'였습니다.
그런데 이 협상단이 큰 사고를 치고 맙니다.
KNU 최고 지휘부와 상의 없이 미얀마 군부와의 첫 만남에서 덜컥 휴전에 합의해 버린 겁니다.
휴전에 막무가내로 합의한 사람들과 그들의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들을 쉽게 '주화파'라 부르겠습니다. 이곳저곳에서 만난 그들은 제게 왜 KNU가 휴전이 필요했는지 설명하는데 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수십 년 간 전쟁을 벌이면서 우리에게 남은 건 잿더미와 비탄에 빠진 카렌 인민들 뿐이었다." 쏘 바우 지 시절부터 혁명에 가담했던 한 주화파 원로가 제게 말했습니다. "미얀마 군부도 우리를 없애지 못했고, 우리 또한 미얀마 군부를 커뚜레이에서 쫓아내지 못했다. 이기지 못할 싸움을 계속한다면, 잿더미로 변한 커뚜레이의 인민들은 누가, 어떻게 돌볼 것인가? 그게 우리가 휴전에 합의한 제일 큰 이유였다"고요.
그는 거기에 더해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끝없는 전쟁은 결국 우리의 논을 마르게 하고, 마을을 불살라버리고, 아낙들이 남편과 아들들을 잃게 만들었다. 수많은 카렌 사람들이 마음속에 슬픔을 품고 국경을 넘어 태국으로 넘어왔어. 이건 도저히 감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일리가 있는 주장입니다.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미얀마 내전은 카렌 사람들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또 다른 지도자는 조금 더 현실적인 관념으로 제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마너쁠로가 함락된 이후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걸 잃은 게 사실이야. 솔직히 진영을 가리지 않고 수많은 지도자들이 우리가 좀 더 일찍, 조금이라도 더 많은 걸 가졌을 때 휴전했어야 했다는 사실에 동의할 거야. 조금이라도 힘이 남아있을 때 협상을 해야 협상장에서 더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거지... 계속 싸웠으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초라했겠지."
주화파에 가까운 카렌민족해방군 지휘관도 비슷한 말로 거들었습니다.
"전쟁을 하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돈도, 무기도, 탄환도 다 떨어진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할 수 있었을까? 혁명의 동력을 보존하고 훗날을 도모하기 위해, 그리고 미얀마의 정치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해결방안을 찾기 위한 휴전과 회담은 애초에 우리 KNU의 방침이었다"
과연 그의 말대로 전쟁은 정말 큰돈이 듭니다. KNU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얻는 탄환이며, 무기도 보통 비싼 것이 아닙니다. 한 미얀마 인민방위대 친구는 병사 하나를 무장시키는데 3만 달러가 든다고 귀띔해줬습니다. 물론 이것도 탄환 시세가 오르기 전의 이야깁니다. 이젠 총 한번 빵 쏘면 맥주 한 병이 날아가는 셈일 정도로 값이 오를 대로 올랐습니다. 이제 카렌주 이곳저곳에 알 박힌 미얀마 군부의 조그만 전초기지 하나를 함락시키는 데도 수십만 달러가 소요됩니다.
제게 전투에 소요되는 비용을 자세히 설명해 준 한 장교도 "나도 이 셈을 해 보곤 무력투쟁을 통한 군부 축출에 대해 생각을 다시 하게 됐다" 농담하며 너털웃음을 지었습니다.
또, 주화파들은 지금은 어긋나버린 휴전과 평화협상이 카렌민족을 위한 길이었다고, 그리고 온전히 카렌민족의 번영을 위한 결단이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말대로 휴전은 카렌주에 경제성장, 카렌 사람들의 자유로운 통행, 그리고 KNU의 행정과 이념이 카렌 민중 사이로 더 잘 스며들 수 있도록 평화와 KNU의 합법화를 이끌어냈습니다.
"당시 휴전 협정이 카렌 사람들에게 큰 지지를 받았던 건 아닌데... 객관적으로 보아 휴전을 통해 KNU가 가장 크게 얻어낸 점은 바로 자유로이, 심지어 도심 안까지 스며들어 KNU의 이념과 방향을 카렌 민중에게 자세히 보여줬다는 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 카렌 언론인이 제게 말했었습니다.
"양곤 턱 밑 에야와디 지역까지 KNU 기관지가 유통되고, 카렌 청년단체가 여기저기 조직돼 KNU와 긴밀하게 소통했었으니까요. 과거와 달리 잡혀가는 사람도 없었고. 카렌 사람들의 정말 큰 소득이었습니다"
그들은 되려 휴전에 반대한 사람들에 대해 현실감각이 결여된 사람들이라며 날을 세웠습니다. 도저히 싸울 수가 없는데, 뭘 가지고, 누구의 도움을 받아 싸우겠냐는 자조감 섞인 비난이었습니다. "나도 뭐 저쪽 사람들 얘기처럼 아예 전쟁을 끝내자고 고집한 건 아니야." 한 주화파 원로가 제게 털어놓았습니다.
"하지만, 그래, 좋다, 전쟁을 하자! 그럼 누구의 도움으로 어디서 무기를 얻어다 전쟁을 지속할 건가? 온 세계가 우리에게 싸움을 끝내라 압박하고, 우리 카렌도 비빌 언덕이 다 닳은 마당에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방안을 생각을 해 봐야지. 세계 게릴라 전쟁사를 다 돌아봐도 외부의 지원 없이는 이기질 못했다."
그는 한번 숨을 고르곤 땅을 보며 말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우린 그런 지원을 단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어."
비록 최고 지휘부의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해선 솔직히 잘못한 건 맞으니까 말을 아꼈지만, 그들은 그 결정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휴전 협상단에 참가했던 한 KNU 원로의 말이 그들의 입장을 제일 잘 대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휴전은 나의 결정이었고, 민족을 위한 결단이었다. 지금은 그 결정에 대해 여러 말들이 있지만, 결국 역사가 나를 평가할 것이다."
반면, KNU의 다른 한 축은 이들이 돌발적인 휴전 협정으로 미얀마 군부에 민족과 혁명을 팔아 넘겠다고 비난했습니다. KNU 내 이 축을 쉽게 말해 '척화파'라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은 애초부터 미얀마 군부와의 휴전에 깊은 불신을 가졌던 사람들로, 휴전에 극렬하게 반대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미얀마 군부의 계략에 속아 넘어갈 필요가 없으며, 지난 수십 년을 돌아봤을 때 군부와의 휴전은 득 보단 실이 더 컸다는 입장을 지금도 고수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들 말대로 휴전은 싸움을 멈추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2012년 1월에 맺은 휴전은 싸움의 빈도를 크게 줄이긴 했지만 싸움이 멈추진 않았습니다. 매년 몇 차례 씩 크고 작은 시비가 전투로 번졌고, 2017년 이후에는 KNU 통제지역 깊숙이 '국토개발'을 위해 포장도로를 깔고 중화기를 옮기는 미얀마 군부의 행동에 폭발한 (척화파로 분류되는) 카렌민족해방군 제3, 5 연대가 전면전을 벌였고, 대표적 주화파 연대인 7 연대 관할구역까지 전투가 번졌습니다.
또, 휴전으로 인해 미얀마 군부와 중앙 정부가 커뚜레이 깊숙이 세력을 뻗치게 됐습니다. 상술한 도로 건설은 물론, 원래 KNU가 꾹 쥐고 있던 국경지역 곳곳에서 미얀마 군부가 소위 '알 박기'를 해버렸습니다. 군부는 그저 국토방위를 위한 주둔이라 에둘러 변명했지만, 실상은 커뚜레이 안에서 국경을 오가는 물자와 사람들을 감시하고, 또 카렌민족의 영토 자주권을 훼손하려는 시도였지요. 고산지대 깊숙이 주둔하고 있는 5 연대를 제외한 대부분의 KNU 연대 관할구역에서 이러한 알 박기 행위가 일어났습니다.
그들은 이런 엉터리 휴전을 밀어붙인 사람들은 민족과 혁명을 위한 결단을 내린 게 아니라, 금전적 이익에 눈이 멀어서 휴전에 덜컥 합의해 버렸다고 주장합니다. 커뚜레이는 지하자원이 풍부하고, 티크목재 산지로 유명한 지역입니다. 미얀마 군부, 그리고 커뚜레이의 개발 이익을 노린 태국 등 여러 나라들이 KNU에게 휴전을 하라 구슬리지 않으면, 압박을 하며 휴전을 강요하려 하기도 했습니다. 2010년 이후 태국 국경지에서 활동하는 미얀마 시민단체들에게 모든 금전적 지원을 끊은 서방세계가 그 예시입니다.
"돈에 눈이 먼 사람들이 최고지휘부의 명령을 어기고 휴전에 덜컥 합의해 버린 거야. 그게 독인지, 거짓인지도 모르고 미련하게 낚인 거지." 당시 최고지휘부 가까이에서 사태를 지켜본 한 척화파 지도자가 제계 얘기했었습니다.
"당시 많은 젊은 지도자들이 휴전을 간절히 원했었어. 왜 저러나, 하고 그 친구들이 하는 말들을 들어보면 뭐 어디에 금이 있니, 목재가 있니, 광업을 할 수 있니... 카렌 민족과 커뚜레이의 발전을 위해 평화가 필요하다나? 순 거짓의 속임수뿐인 미얀마 군부를 상대로 말이야."
위 이야기에 덧붙여, 몇몇 척화파 지도자들과 장교들은 아예 뇌물이 오갔다는 의심을 떨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느 원로급 주화파 지휘관이 미얀마 군부에게 4천만 태국 바트, 즉 미화 백만 달러를 받아 챙겼니- 하는 소리가 종종 들리기도 하면, 주화파 지도자들이 본격적으로 권력을 잡은 15대 카렌민족총회*는 금권선거에,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을 하기도 합니다. 돈으로 표를 사지 않으면, 개표조작을 해서 당선자를 조작하곤, 투표지를 일찍 태워 증거인멸을 한 것 같다는 이야기입니다.
*KNU는 보통 4년에 한번 열리는 민족총회에서 토론을 통해 다음 4년 간의 정책노선을 결정하고, 그 그 정책을 이끌어나갈 지도부를 투표를 통해 선출합니다. 많은 카렌 사람들이 "우리는 너무 민주주의가 넘쳐나서 문제다" 농담할 정도로 민주주의적 절차를 잘 지키는 단체입니다.
그들은 이러한 행태가 KNU 혁명정신의 타락을 불러왔다고 우려했습니다. 수많은 연대들이 사업이윤을 노리고 무분별한 투자 유치를 하지 않으면, 휴전과 평화협상으로 가능해진 자유통행 보장으로 자식들은 물론, 본인들도 대도시와 태국에 살림을 차리고, 혁명완수는 뒷전으로 미뤘다고 비난합니다.
그들은 대표적으로 휴전으로 인해 깊어진 KNU와, DKBA 등 KNU에서 분리돼 떨어져 나간 친군부 카렌 무장단체들 간의 합종을 그 예시로 듭니다. KNU가 다시금 전쟁에 돌입한 지금도 7 연대 관할지인 태국-미얀마 사이 국경도시 먀와디 인근은 비공식적으로 KNU와 미얀마 군부 간 휴전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얀마 군부와 친군부 무장단체들, 그리고 KNU가 그곳의 경제적 이윤을 가져 남기기 때문이라 합니다.
미얀마 먀와디 인근에 무분별하게 세워지는 불법 카지노 단지에도 주화파 KNU 지도자들이 깊게 연루돼 있다고 입을 모았습니다. 지난 몇 년간 화교 투자자들이 미얀마의 내전상황을 이용해 불법 이윤을 남기기 위해 모에이 강변을 카지노 단지로 가득 메웠습니다. 그리고 이 단지들 중 많은 곳은 온라인 사기, 성착취, 인신매매 등 불법행위가 아주 빈번하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그런 무서운 사업장에 몇몇 KNU 주화파 지도자들이 얼굴을 드러내지 않으면, 심지어 카지노 준공식(!)에 참여하는 모습이 포착돼 큰 파문을 일으켰습니다.
카렌민족을 최선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타락이 벌어진 것이죠.
"애초부터 나는 휴전을 통한 군부와의 협력관계 조성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한 척화파 지도자가 제게 말했습니다. 인터뷰 당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주화파들이 야심 차게 추진한 미얀마 중앙정부와 공조하는 개발사업의 책임자였습니다
"뭐 휴전을 원하는 사람들이 이런저런 얘기를 했고, 우리에게 어떤 혜택이 있고, 어떤 전략적 이득을 가지고 올 거라 말했는데... 지금 와서 보면 다 허황된 이야기였을 뿐이잖아요? 다 잿더미가 됐을 뿐이지."
라쇼몽이 그랬듯, 진실은 대립하는 두 주장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곤 합니다. 그럼 주화파와 척화파로 대립한 KNU 지도자들 사이의 진실은 어디에 있을까요?
사실 두 번째 주장과는 달리, 휴전을 주장한 주화파들은 돈을 크게 벌지도, 큰 권세를 누리며 사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미얀마 군부에게 거액의 뇌물을 받아 부자가 됐다는 소문이 파다한 주화파 지도자 한 분은 제 기준은 물론, 미얀마 사람들 기준으로 보더라도 안쓰러울 정도로 허름한 주택에서 가족과 함께 살고 있었습니다.
"사실 '거마비'를 받았다 치더라도... 백만 달러가 개인에겐 큰돈이지만, 정치 거물에겐 푼돈이잖아? 돈이 생기면 한두 명만 챙겨야 하는 사람들이 아니잖아. 대대, 연대급으로 돈을 써야 하는데" 미얀마 무장단체들과 가까운 한 친구가 제게 말했었습니다. "내가 보기엔 그냥 KNU 내부 권력투쟁 때문에 이상한 낭설이 도는 거 같아."
또 다른 한 주화파 지도자는 폭염이 내리쬐고 전기와 깨끗한 물이 부족한 커뚜레이에서 저와 함께 필사적으로 산모기를 잡으며 긴 저녁을 견뎠습니다. 그가 정글에서 유일하게 즐기는 사치는 중국인 친구가 최근에 선물해 줬다는 고급 중국 담배였습니다. 미얀마에서 아주 영세한 권력자들이 즐기는 여러 사치를 떠올려보면 어쩌면 사치 축에도 못 드는 아주 검소한 기호품이었습니다.
또, 척화파들이 주화파들에 맞서 적극적으로 전쟁에 대비한 것은 아니었고, 또 금을 돌 보듯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척화파 연대들 중 몇몇은 휴전 덕에 가능해진 지하자원 채굴에 열을 올리면서, 그들이 외친 전쟁에 대한 준비나 주화파 연대들이 집중했던 민간행정 고도화 작업엔 비교적 미흡했습니다."그렇게들 얘기할 거면 훨씬 더 적극적으로 무기를 모으고, 병사들을 모집했어야지..." 굳이 따지자면 주화파에 가까운 한 카렌민족해방군 원로가 제게 얘기했었습니다. "다들 나름 준비 한 다곤 했지만, 사실 95년에 비해 얼마나 나아졌던가?"
"까놓고 얘기해서, 휴전협정으로 당이 군을 지켜냈잖아요? 그런데 그동안 군이 당을 지켜줬던가?" 역시 주화파에 가까운 한 KNU 지도자도 제게 되물었습니다. "휴전으로 군을 보존해 줬으면, 군이 필사적으로 당을 보호할 정도로 회복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때도 그렇듯 지금도 많은 연대 사령부가 변변한 보루도 없이 수시로 기동을 하는 중이잖아." 말은 전군을 통칭했지만, 말속의 뼈는 척화파들에 대한 섭섭함을 내비쳤다고 하겠습니다.
반대로, 첫 번째 주장과는 달리 주화파들 또한 그들이 하는 말처럼 꼭 민족과 국가만을 위한 결단을 내린 건 아닌 것 같은 증거가 차고 넘쳐납니다. 주화파로 분류된 몇몇 KNU지도자들이 태국-미얀마 국경지대에 위치한 불법 카지노 단지에 땅을 임대해 주고, 개인 사업에 KNU 직함을 오용했음이, 그리고 그 지도자들 중엔 최고위급 지도자들도 연루됐던 것이 제17대 카렌민족총회 중 사실로 밝혀졌습니다.
또, 카렌민족해방군 제4 연대는 2012년 1월 11일, 휴전협정을 맺기 하루 전에 지역 기업가들과 손 잡고 '미인미옉또 민따,' 이른바 '노블 프린스' 회사를 미얀마 투자기업청에 등록했습니다. 사업 구상과 등록준비에 들어가는 자본과 시간을 생각하면 이미 휴전 전에 구상해 놓은 계획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KNU는 휴전 직후 각 연대의 무분별한 사업등록과 투자유치의 폐해를 우려해 영토 내 투자와 기업경영을 관리 감독하고 각 연대의 위법행위를 조사하는 카렌 경제위원회를 설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물론, 총 든 사람들의 돈 문제와 정치가 다 그렇듯, 경제위원회의 손이 미처 닿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비록 여러 부정 의혹과 오해가 쌓여 흰색의 혁명이 잿빛으로 변했더라도, 혁명은 혁명이었습니다. 2021년 미얀마 군부의 쿠데타로 평화협상이 모두 백지화된 지금, 다시금 군부와의 전쟁에 돌입한 KNU는 주화파, 척화파 가리지 않고 민간정부와 시민들에 대한 지지, 그리고 군부에 대한 저항을 선언했습니다.
한 주화파 원로는 "어차피 2018년부터 몇몇 연대들은 군부 상대로 전면전에 돌입했는 걸. 돌이킬 방법도 없고, 약속 어기는 군부 믿지도 않았다"고 말했습니다. 평소에 절 만나면 주화파 흉보는데 열심이었던(...) 한 척화파 원로 또한 주화파들이 주도하는 전쟁에 큰 이견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모인 병력을 무장시키고, 지금과 같은 게릴라전으로 적의 힘을 빼놓는 게 중요해. 지금처럼 하면서... 적의 병력이 절반으로 줄면, 도심 인근으로, 그리고 도심 인근을 접수하면 시내로 진격한다. 그게 우리 카렌민족해방군의 대전략이다."
물론 그렇다고 휴전 사태(?)로 빛은 KNU 내부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닙니다. 상술한 충돌하는 두 파벌의 입장과 반대파에 대한 힐난은 쿠데타 이후 청취한 현재진행형의 갈등입니다. 위 내용도 2022-23년 사이에 청취한 내용이 그 바탕이니까요. 하지만 그들은 서로의 입장이 글러먹었다 툴툴대면서도, 군부를 무너뜨리고 민주세력과 함께 카렌민족이 온전한 자치를 누릴 수 있는 연방 민주주의를 수립한다는 대의엔 이견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대의를 위해 손잡고, 미얀마인 모두의 공동에 적을 물리치기 위해 힘을 모았습니다.
서로 혁명정신이 타락했다며, 현실감각 없는 사람들이 대비도 소홀했다며 비난하지만, 어떻게 됐던 휴전을 거친 KNU는 전보다 더 단단해졌습니다. 날 선 정쟁 중에도 수많은 지도자들과 장교들이 KNU의 행정력, 그리고 카렌민족해방군의 재건을 위해 힘썼습니다. 미얀마 군부에 맞서 학교와 보건소를 세우고, 새로이 뽑은 병력은 물론 꿋꿋이 버틴 역전용사들까지 모두 모아 전술훈련을 실시했습니다. 휴전 후 더욱 풍부해진 세입으로 무기와 탄환 보급 경로도 다각화했습니다.
행여나 공들인 평화협상이 무너지진 않을까, 행여나 무책임한 휴전으로 인해 카렌 민족의 주권이 영영 버마인들에게 넘어갈까 우려한 사람들의 진영을 초월한 피나는 노력으로 KNU 내 갈등을 극복한 것입니다.
언젠가 간신히 기어들어갔던 커뚜레이에선 한 지도자를 만났습니다. 나이가 많아봐야 제 나이 또래로 보이는 그는 최근 선출된 지도자들 중 어린 축에 드는 사람입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카렌민족연합, 그리고 수십 년간 이어진 혁명의 성과에 큰 자부심을 내비쳤습니다. 그런 그에게 제가 물었습니다: 다시 전쟁에 돌입한 지금, 커뚜레이 정부의 사업수행에 큰 어려움은 없느냐고.
"전쟁 때문에 우리의 행정사업과 지역개발 사업이 다 멈췄을 거라 생각하는 거죠?"
(영어를 참 잘하지만 굳이 대동한) 통역장교의 통역을 들은 그가 제게 되묻곤, 미소 지으며 대답했습니다.
"전쟁이 있든, 없든, 우리 카렌민족연합은 우리 민족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합니다.
그게 우리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