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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두박사 Sep 06. 2023

현장연구의 끝에서

박사논문을 쓰기 직전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그게 말이죠 교수님... 이제 더 인터뷰할 사람이 없어요."


"그래? 고생했어. 그럼 이제 집에 와야지."


2023년 9월, 저는 토론토에 있습니다. 


지난 14개월간 썽태우, 스쿠터, 그리고 트럭 뒤에 올라타 빨빨 이동하며 이어진 현장연구는 96회의 인터뷰를 끝으로 그 막을 내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온 지금은 다시금 캐나다의 일상에 적응하고, 학교로 돌아가기 위해 마음의 준비 심신을 추스르고 있습니다.


 제 필드 리서치 일기도 (이제 끝났으니까...!) 이 편을 종점 삼아 마무리하게 되었습니다.


현장연구를 준비하는 분들을 위해, 그리고 박사과정 현장연구의 결과는 과연 어떤 것일까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14개월을 소회 하며 느낀 두 가지 생각을 글로 엮어봤습니다.




폭우로 물이 불어난 모에이 강변에서 평화로운 태국을 바라보며


현장 연구의 가치란 뭘까요?



"만두박사, 우리 솔직히 얘기하자. 여기 있는 거 괜찮아?"

"네?"


커뚜레이에 갓 도착해 모기를 쫓으며 살인적인 습도와 더위를 인내하던 어느 오후, 저를 커뚜레이로 데려온 카렌민족해방군 장교가 저를 조용히 끌어다 얘기했습니다.


"비록 휴전지대인 7 연대 영역이지만, 전폭기 폭격은 종종 있는 일이야. 특히 모두가 잠든 새벽에. 여기 있는 모두는 국가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 위험을 감수하는 거지만, 너는 그러지 않아도 괜찮잖아? 혹시나 무서우면 나한테 얘기해. 해질녘에 돌아가는 배편을 마련해 줄 테니."


그날, 저는 '모두가 함께 온 만큼 나도 자리를 지키겠노라' 대답했습니다. 물론 저도 인간인지라 (...) 그날 저녁, 저는 지금 눈을 감으면 영영 깨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되돌아 생각하건대 그곳 모두가 소등하지 않고 힘겹게 잠을 청한 것을 보아,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을 겁니다.


사회과학에서 대면 인터뷰를 포함한 질적 연구는 양적 연구와 함께 사회과학적 데이터 수집의 양대산맥을 이룸에도 불구, 북미 사회과학의 영향을 짙게 받은 학계에선 어디까지나 비교적 마이너에 속하는 영역입니다. 사실 좋게 말해 '비교적 마이너'지, 양적 연구를 주로 진행하는 연구자들이 질적 연구자들을 낮춰 보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소수의 케이스 연구로는 외적 타당도를 얻을 수 없다면서요. 어찌나 그런지, 가끔 "필드 인터뷰는 그냥 날 좋은 곳에 앉아서 한가로이 맥주나 마시는 거 아니야?" 하는 비아냥을 들을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태국어가 버마어로, 버마어가 카렌어로, 카렌어가 샨어, 카레니어로 바뀌다 다시 샨어로 바뀌는 태국-미얀마 국경지대에서 현장에서만 볼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들을 보고, 들었습니다. 이는 책과 논문이 핵심을 짚고 디테일을 축약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굉장히 깊고 드넓은 이야기의 바다의 일부분만 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척 극단적인 사례긴 하지만 상술한 저의 경험 한 토막에서 볼 수 있듯 한가로이 맥주만 마신 건 아니었지요. (물론 술만 한 도구가 또 없어서 사람들을 만나며 정말 많이 마시긴 했습니다... ^^;) 


이러한 경험을 통해 저는 글과 영상만으로 전쟁을 접한 게 아니라 간접적으로나마 전쟁을 직접 보고 느끼며, 생사의 기로에 서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요하는 일인지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현장연구 중 이러한 경험을 통해 느낀 감정들, 그리고 현장에서 인터뷰와 별개로 수집한 수많은 이야기들은 제 논문을 쓰는데 아주 귀중한 자료가 되었습니다.


또 저는 내전 정국 속에서 미얀마를 수놓은 수많은 별들의 이야기를 목격했습니다. 저는 다음에 봅시다- 악수를 청하며 포연 속 저 너머로 건너가 두 번 다시 볼 수 없었던 뜨거운 열정의 청년들을 보고, 매일 밤마다 고지를 타격하며 대지를 울리던 포성의 굉음을 들었습니다. 국가의 부름에 기꺼이 희생하곤 의수, 의족에 적응하며 새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청년들도 보았습니다. 


큰 부상을 당해 사경을 헤맨 후에도 전우들과 생사를 같이 하겠다며 전선으로 돌아간 남동생, 도저히 혈청을 구하지 못하는 국경지대에서 환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는 의료인들, 그리고 머나먼 한국 땅 제 외가 고향(!)에서 풍요로이 일하다 민족의 부름을 받들어 귀국해 전장에 뛰어든 사촌 오빠도 보았습니다.


이러한 아픔과 희생, 그리고 국가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은 축약된 핵심만을 담은 책과 논문으로는 쉽사리 접할 수 없는 이야기들임이 분명합니다.


가끔 경이로울 정도로 만석이었던 커뚜레이 지경으로 가는 썽태우 안에서. 왕복 10시간의 여행이었지만, 지루하진 않았습니다.
현장연구를 빌미로 맥주 한잔하러 왔습니다. 이제 더 이상 감출 수 없는 뱃살이 인상적입니다 ㅎ_ㅎ 前 시인 現 버마인민해방군 지휘관 마웅 상카의 시집을 펼쳐보는 중입니다.


"연구자로서의 쓰임새"를 찾기



"그래서 반군 비즈니스를 조사하는 네 연구가 미얀마 혁명에 어떤 쓸모가 있지?" 국경지대에서 미얀마 민간정부와 시민운동가들을 지원하던 한 서양인 친구가 제게 종종 묻던 말이었습니다. 사실 당장의 현실적인 기여가 확실치 않은 지식 발전의 의의에 퍽 비판적인 친구라 자주 나온 말이긴 한데... ^^; 저도 현장연구 내내 제게 되묻던 말이기도 했습니다:


자유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는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란 무엇일까? 
그런 그들에게 나는 어떤 쓸모가 있었을까? 

쌩쏨과 싱하맥주로 다져진 술배를 통통 튀기며 다니던 외국인이 폐나 끼치지 않았다면 다행입니다. "제가 어떤 일을 도울 수 있을까요? 가능하다면 무엇이든 제 능력 안에서 돕도록 하겠습니다"가 제가 현장에서 제일 많이 되뇐 말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스스로 나의 쓰임새를 찾지 않더라도,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저와 함께 같이 미얀마 내전에 대한 지식을 쌓아 올린 많은 연구 참가자들이 제 쓸모를 찾아 연락해 주셨습니다. 왜 저였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존중과 이해, 그리고 겸손을 우선으로 여긴 자세를 좋게 봐주시지 않았나, 짐작만 할 뿐입니다. 으레 앞서기 위해선 인정을 둘째 쳐야 한다고 가르치는 세상이지만, 어쩌면 우리 세상엔 그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가치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 연구활동 내내 적잖은 반군 어른들이 가끔 저를 불러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대외비인 (...) 그들의 변화무쌍한 정무적 판단과 결정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도 같이 옳고 그름을 고민해 달라는 신호로 느껴져 여러 가지 질문을 던지는 소크라테스식 강의법(?)으로 그분들이 스스로 생각을 정리하는데 최대한의 도움을 주려 노력했습니다. 그들이 가는 길에 더 큰 자신감을 얻을 수 있도록.


그리고 카레니민족진보당 지도자 중 한 분은 주변 사람들을 통해 저를 콕 짚어다 "우리 정부의 연구역량을 향상하기 위해 도와달라"는 요청을 하셨었습니다. 최근 개선된 전황에 힘입어 출범된 카레니 임시정부는 해방된 카레니주에서 근거기반 정책입안에 큰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카레니 주민들에게 더욱 효과적인 정책사업을 가져다주기 위한 노력입니다. 그 작업을 돕기 위한 연구자가 필요하던 중, 너무나도 감사하게도 '만두박사'란 이름을 떠올려 주신 겁니다.


그 외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이러한 사소한 기여를 통해 저 또한 미얀마 사람들과 함께 더욱 밝을 미얀마의 미래에 벽돌 한 장을 쌓을 수 있었어서 너무나도 큰 영광이었습니다.


카레니민족진보당 연구원 트레이닝 워크숍 후.




"비록 네 몸은 떠날지라도, 심장은 여기 우리 곁에 두고 떠나잖아?"


태국 어딘가의 버스 터미널에서 지난 14개월 간 깊은 우정을 쌓아 올린 샨주 남부군 장교 A가 제 손을 덥석 잡으며 말했습니다. 그는 바쁜 스케줄 속에서도 굳이 저를 배웅하겠다며 도푸운을 배불리 먹이곤 트럭에 제 배낭을 실었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고, 다음에 또 봅시다."


비록 무언가가 끝나고, 무언가가 새로이 시작되지만, 저는 제 심장을 국경지대에 묻어놓았습니다.


언젠가 제 심장을 따라 국경으로, 끝내 해방된 미얀마로 다시 찾아갈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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