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만두박사 Jun 05. 2020

박사과정을 하시려고요?

캐나다 박사과정 대학원생 썰 푼다 ㅋㅋ

대학원을 가시려고요? 아이고 반갑습니다. 어서 오세요.


저는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에서 비교정치학과 국제관계학 박사과정 중인 대학원생입니다. 이제 전공시험을 모두 통과했고 논문만 쓰면 된답니다. 하 논문만 쓰면 되는데...


브런치를 보시는 분들 중 박사과정을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까 싶어 제 경험에 대해 간단히 썰을 풀어볼까 합니다.




박사과정 대학원생은 학생이라기보단 교육서비스 노동자


많은 대학교들이 보통 학비 면제와 생활비 지원에 조교(Teaching Assistant; TA) 근무를 조건으로 걸어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다니는 토론토 대학교 정치학과의 경우도 생활비가 1년에 210시간 정도 근무하게 되는 조교 월급 명목으로 지급됩니다. 조교 안 하면(사람에 따라, 안되면) 땡전 한 푼도 없는 것이죠.


조교는 교수의 강의활동 지원(채점이라던지... 채점이라던지..)을 하기도 하지만, 1~2학년이 듣는 대규모 강의의 경우 매주 한 반에 10-20명이 들어가는 튜토리얼 세미나*를 진행하고 이메일, 또는 매주 몇 시간 학생들을 면담하는 오피스 아워를 여는 등 대학교 교육서비스의 큰 축을 담당하는 서비스직 노동자입니다.


*많은 대학교들이 대형 강의를 보충하기 위해 매주, 또는 격주 튜토리얼, 또는 세미나로 불리는 모듈을 운영합니다. 그 주, 또는 그 전주에 커버한 주제를 좀 더 깊이 있고 심화해 학생들 주도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셈입니다.

교수마다 다르겠습니다만, 토론토 대학의 경우 튜토리얼 세션은 TA의 영역으로 존중하고, 세션의 운영과 커버할 내용을 TA 자율에 맡기는 경향이 큽니다. 물론 애기들이 내가 준비한 걸 좋아하고 잘 따라오면 뿌듯하고 성취감 들고 그러긴 하는데... 문제는 할 일이 늘어납니다;;


토론토 대학교의 튜토리얼은 대충 이런 느낌입니다. 같은 코스를 TA 하는 친구와 기말고사 대비 튜토리얼을 운영했었습니다.




박사과정생이 매일 학교를 가는 건 매일 출근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


제가 학부생 애기였을 때 어느 명예교수님께 "대학원을 간다는 건 어떤 느낌인가요?" 하고 여쭤본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대학원을 간다는 건 매일 공부를 시키는 직장에 다니는 것과 같다"라고 말씀하셨었습니다.


그분 말씀하시는 게 딱 맞더라고요. 저의 경우 코스워크를 위해 일주일에 대략 300-450페이지 분량의 논문과 책 챕터를 읽고 (인고의 시간), 튜토리얼 세션 세 개 운영(세션당 한 시간), 튜토리얼 준비(튜토리얼 운영시간의 두세 배의 시간이 들어감), 그리고 학부 애기들 면담에 일주일 2시간을 의무로 남겨놓는 편입니다. 남는 시간엔 제 관심 주제에 관련한 논문을 읽고 정리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저 스케줄에 학부 과제 채점이라는 대형 참사가 터지면 이제 난리 나는 겁니다


ㅎ_ㅎ 제 책상임다.

고로, 코스워크와 TA를 병행하는 와중에 자기 연구를 챙기는 건 말 그대로 주경야독의 모양새가 나올 때가 많습니다. (저는 생활리듬이 많이 무너진 편이라) 11시~12시 정도에 학교에 도착한다면, 새벽 1시 30분 내지 2시에 버스 막차를 타고 집에 가는 게 일상입니다. 


직장 다닐 때보다 학교에 묶여있는 시간이 좀 더 긴 것 같습니다. 물론 저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받는 거니 비교가 안되긴 합니다.




박사과정은 길고, 힘들고, 몹시 더러운 과정

[대학원생의] 인생은 고독하고, 가난하고, 불결하고, 잔인하고, 짧다 - 토대스 홉스(?)


비교정치학 종합시험(Major Field Exam) 공부량 딱 절반 넘겼을 때 정리한 코스워크 인쇄물. 음 지금 봐도 토 나오네요.

저도 이제 3년 차라 뭘 알겠습니까만, 박사과정은 길고, 힘들고, 몹시 더러운 과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제 선배가 그리 말하고, 제 동기가 그리 말하고, 제 후배가 그리 말하니 그런 거라 믿어야겠지요?


따라서 박사과정을 하기 전에 왜 내가 이걸 해야 하는지, 이걸 함에 있어 무엇을 이루고자 하는지, 정말로 평생 공부하는 게 내 적성에 맞는지를 진지하게 고민해보시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청춘을 고스란히 학교에 매어놓고 또래 친구들이 직장에서 승진을 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솔직히 그리 유쾌한 경험이 아니라서 이 모든 걸 견딜만한 뭔가 큰 동기가 있으면 고생길을 가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저와 같은 경우는 석사를 마치고 2-3년 정도 국제기구에서 근무를 했습니다. 국제기구에서 다양한 사람과 함께 일하는 건 좋았지만 딱히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석사 졸임에도 불구하고 제가 실제로 할 줄 아는 건 이메일 보내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박사과정을 하게 되었답니다.


제가 박사가 된 후 다시 현업으로 돌아갈지, 교수가 될지, 백수가 될지(...)는 아직 정해진 게 없습니다. 다만 박사를 하기 전에 일을 했던 경험에 빗대 보건대, 일을 하는 것보단 불확실한 미래에 청춘을 거는 게 더 나아 보인다는 생각은 제가 박사과정의 여러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데 큰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박사과정은 돈 받고 하는 것


박사과정은 길고, 힘들고, 몹시 더러운 과정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부디 돈 받고 하시길 바랍니다.


5년 동안 장학금 없이 학교를 다닌다면 기둥뿌리가 뽑혀나가기도 하거니와, 톡 까고 말해 자비부담 박사과정생과 학교에서 장학금을 지원하는 박사과정생이 받는 관심의 정도가 큰 차이가 납니다. 물론 서류상 똑같은 박사생이긴 한데... 뭔가 설명 못할 그런 미묘한 기류가 있습니다. 뭔가 더 진중하게 여겨 준다고 할까요. (물론 저의 지극히 개인적인 보고 느낀 점이기 때문에 학교 마다, 교수 마다 분위기가 아주 다를 수 있겠습니다. 예를 들자면 영국의 경우 유학생이 장학금을 받는 건 몹시 어려운 일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종종 저를 비롯한 다른 박사생들이 박사 지원을 하는 석사 친구들에게 "셀프 펀딩을 조건으로 내 거는 박사과정은 리젝트와 다를 게 없다"는 말을 자주 해 줍니다. 그 정도로 분위기 차이가 크게 나니 아무리 하버드, 옥스퍼드가 부르더라도 장학금을 안 준다면 가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