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배사

Korea Coast Guard

by 이단

어릴 적에 상상이나 해봤을까? 내가 경찰관이 된다는 것을.. 아마 내 계획에는 존재하지 않던 일일 것이다. 일반사법권을 가진다는 것의 의미는 철없는 나에게 무겁기보다는 약간은 즐겁고 신기한(?) 일이었다. 누군가에겐 조금 미안한 일일지 모르나 나는 해양경찰관이라는 직업 자체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았던 거 같다. 그저 펜데믹의 여파 속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효율적 시간을 보내기 위한 최선의 수단 중 하나 정도였다. 적어도 처음엔 그렇게 시작했다.


자의에 의해 바쁘기로 악명높은 인천회전익 항공대에 배치받았다. 누군가는 이야기했다 선택권이 주어진 상황에서 뭐하러 가장 바쁜 항공대를 택하느냐?

스스로 꾀나 계산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영종도에 위치한 인천항공대를 선택한 이유는 단지 수도권에 거주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인천공항과 김포공항이 가깝고 민항기 조종사가 되기 위해 노력했던 순간이 함께했던 지역에서 생활하고 싶었다. 항상 가까이서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었을까? 어떠한 계산보다는 가슴이 이끄는대로 결정했던거 같다.




처음 일 년 정도는 일을 배우느라 정신없이 지나갔다. 내가 정비해야 했던 헬기는 이태리산 AW-139와 러시아산 카모프(KA-32)였다. 주어진 임무는 해상순찰, 임명구조, 해상단속 등. 정비사 입장에서도 새로운 기종을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3년간 공구와 멀리했던 나에게 다시 정비를 한다는 것은 설렘과 부담감이 공존하는 일이었다.


해경생활은 군생활과 비슷하면서도 다른점이 많았다. 군은 전쟁이나 국지도발 등 아주 치명적이고 큰 일일 수 있으나 쉽게 일어나지 않을 그것에 대비하여 훈련받는게 일상이었고, 당연히 그래야만 했던 일이겠지만 실제로 7년간의 군생활동안 내가 배운 것들을 실전에 활용했던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전국 해양경찰 항공대 임무의 90% 이상의 구조실적을 자랑하는 인천 항공대에서는 하루에도 두세 건씩 실상황이 발생했으며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국민의 생명을 놓고 분초를 다퉈야 하는 실상황이 주어졌다. 세월호 사건 외에 해양사고라는 것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나는 이렇게 많은 사건사고가 매일같이 발생한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 부담과 피로는 자연스레 나의 생활에 녹아들었다. 해경생활을 시작한지 반년쯤 지나 나도 모르게 적응하며 살아가던 어느 가을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의 마음가짐이 국민의 생명을 구출해야 하는 Guardianㅡ수호자ㅡ으로써 올바른가?’ 문득 내가 하고 있는 일의 무게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어느 날 회식 자리에서 나에게 발언권이 주어졌다. 일명 건배사를 해보라는 것이었다. 뻔한 이야기로 파이팅을 외치며 건배를 제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이 간직했던 진심을 전달할 기회는 자주 오지 않았고, 한 번쯤은 우리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나의 생각을 함께 나누고 팀원들에게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군에서는 모든 것이 훈련이었습니다. 일어나지 않아야 할 일은 다행히도 일어나지 않았고 7년간 저는 매번 훈련만 하다 군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이곳의 현장은 달랐습니다. 모든 것은 ‘실전’이었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출동준비로 항공기를 점검하는 정비팀,
비바람 몰아치는 악기상을 뚫고 나아가는 조종사,
현장상황을 파악하고 전달하는 전탐팀,
높은 파고를 두려워하지 않는 전천후 구조팀,
하늘 위의 엠뷸런스 구급팀까지.

모두가 하나 되어 많게는 한 달에 수십 명의 목숨을
구조하는 우리 해양경찰 항공대의 일원이라는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국민의 곁에 항상 우리 팀이
안전하게 도달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이곳을 거쳐간다고 생각했던 나의 건방졌던 마음가짐은 실전과 같은 나날들 속에 잊혀갔고 나도 모르는 새 나는 한 명의 해양경찰관으로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종종 인천공항에서 떠오르는 항공기를 바라보면 속이 쓰렸지만 생각보다 해경생활은 만족스러웠고 나름대로 일에 대한 자부심 덕분일까 군생활을 할 때보다는 즐겁게 생활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진짜 팀워크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었던 소중한 시기였던거 같다.


그렇게 본분(?)을 잊고 살아가던 2023년 5월 어느 날. 갑자기 비행기가 보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던거 같다. 그냥 가까이서 이착륙하는 비행기가 보고 싶었고 비번이었던 날 인천공항 파이널ㅡ최종접근로ㅡ로 향했다. 오랜만에 방문한 공항이었지만 언제나처럼 분주했던 인천공항에는 끊임없이 항공기가 뜨고 내리고 있었으며, 서해안의 붉은 노을 속 고요함을 뚫고 굉음을 내며 날아오르는 수십톤의 쇳덩어리는 그 자태만 갖고도 경이로웠다. LA로 향하는 항공기일까? 프랑크프루트로 향하는 항공기일까?..... 알 수 없는 그리움에 사무쳐 가질 수 없었던 그것을 향한 마음에 가슴이 저려왔다.


끝나지 않을 긴 터널같이 느껴졌던 펜데믹은 끝을 보이고 있었고 여기저기 여행수요가 늘어난다는 뉴스를 쉽게 접할 수 있었다. 지원자의 입장에서 직접적으로 체감하기는 힘들었지만 항공시장은 살아나고 있었고, 코로나로 인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나에게 친구가 보내줬던 사진 속 문구 ㅡAviation will rise againㅡ처럼 항공업계는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는 것이 직간접적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약 4년간의 공백 뒤에 다시 입사전형을 위해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막막하긴 했으나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정말 다시 준비해야 할 때라는 것을.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독서실 정기권을 결제했고 내 마음가짐에 부응하듯 정확히 한 달 뒤 긴 코로나의 끝을 알리는 신입운항승무원 채용이 약 3년 만에 열렸다.


긴 말은 필요 없었다. 아직 늦지 않았다. 천재일우ㅡ千載一遇ㅡ와 같은 기회가 나에게 다시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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