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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a Mar 01. 2022

“언니들은 대체 왜..”

나도 어쩔 수 없는 한국인 인가 봐

  그땐 몰랐다. 결국그런 언니가 되어 있을 줄은. 때는 12 , 항공사에  입사한 햇병아리 시절에는 호텔에 도착해서 각자 방으로 흩어지기 ,  시에 일어나서 한식을 먹으러 갈지 정하고 식당을 예약하는 승무원 문화가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피곤한 사람은 그냥 쉬라고 해도 모두가 ( 강제적으로) 참석하는 분위기라 마음 깊은 곳에서 반항심이 꿈틀댈 때도 있었다. 3 4 비행 나와서 한식 찾는 언니들이 정말 할머니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피곤한데 밥을 먹으러 간다고?’


  당연히 식당 예약은 막내인 나의 몫이었고 그땐 우버도 없던 시절이니 내 핸드폰에는 미국 각 도시의 한식당과 한인 택시 번호가 잔뜩 저장되어 있었다. 보통 미국 현지시각으로 오전에 랜딩 해 정오쯤 호텔에 들어가고 대여섯 시간을 자고 일어나 저녁 8시쯤 모여 저녁을 먹는 패턴이다. 12시간 장거리 비행을 끝내고 호텔방에 들어가 침대에 누우면 (기분 상) 눈을 감자마자 알람이 울어댄다. 온몸을 두들겨 맞은 기분으로 겨우 몸을 일으켜 로비에 나가면 하나 둘 퀭한 얼굴로 모여든다.


 승무원들은 뭉치면 먹고 흩어지면 잔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코로나로 해외에도 우버이츠나 그랩푸드 같은 배달문화가 보편화되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만큼 배달이 활성화된 곳은 거의 없었다. 즉, 먹기 위해서는 직접 가야 한다는 뜻이었고 제대로 된 식사를 하기 위해서는 이왕이면 다들 먹을 때 함께 먹는 게 최선이었던 시절이었다. 우리는 오로지 먹기 위해 모여서 몽롱한 정신으로 삼겹살을 굽고 밥을 볶고 된장찌개를 퍼먹었다.


  이렇게 쪽잠을 자다 한식당에서 거하게 배를 채운 후 마트까지 돌고 오면 비로소 평화로운 밤이 찾아왔다. 새벽 내내 침대에서 감자칩을 끌어안고 드라마를 보다가 아무렇게나 잠들어도 되는 것이다.


남프랑스 니스의 한식당.




  비행 5년 차에 신혼여행을 갔을 때까진 열흘간 한식을 한 끼도 못 먹었지만 버틸 만했다. 나의 한식 사랑은 30대에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이제는 비행이든 여행이든 '한식을 못 먹으면 죽는' 병에 걸리고 말았다. 남편과 나는 틈날 때면 유럽 소도시를 여행하곤 하는데 어딜 가든 일단 나는 구글맵에 Korean restaurant을 검색한다. Korean이 없는 곳이 아직 너무 많아서 Chinese, Vietnam, Thai까지도 넘어가는데 이쯤 되면 괜찮은 식당 하나쯤은 발견하게 된다. Korean이 아니라도 다른 아시아 음식으로 어느 정도 대체가 가능한 건 바로 국물 덕분이다. 스테이크나 햄버거를 먹다 보면 저녁쯤 그 기름기를 씻어내 줄 뜨끈한 국물이 간절하다. 양식의 느끼함으로 몸서리칠 때 식도로 넘어가는 쌀국수나 똠양꿍은 그래도 한식에 대한 간절함을 70퍼센트 정도는 충족시켜 준다. 그걸로 내일 다시 현지식을 먹을 수 있는 힘을 얻는다.


남프랑스의 중국, 베트남 음식들.


  이제 남편은 한식당을 찾아 헤매는 수준에서 더 나아가 유럽 어느 곳의 에어비앤비에서도 한식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마트에서 파는 닭다리와 치킨스톡, 양파 한 알만 있으면 수준급의 백숙을 재현해 내고 사리곰탕면 수프와 몇 가지 재료로 뽀얀 곰탕을 끓여 내기도 한다. 펜네 파스타로 빠알간 떡볶이를 만들어내고 스위스에서는 라끌렛 치즈를 얹은 신라면을 끓인다.

밀라노, 그린델발트, 체르마트 숙소에서 남편이 차린 음식들.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엄마가 해준 뜨신 밥을 먹고 다니던, "언니들은 왜 한국에서도 매일 먹는 한식을 비행 와서까지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외국에서는 현지식 좀 먹으면 안 돼?"라고 투덜대던 막내는 자라서 결국 그런 언니가 되었다. 10년간 단골이었던 LA의 '남대문' 폐업을 마음 깊이 애도하고 시카고 '코리아나'의 소고기와 된장찌개 먹을 생각에 랜딩만 기다리며 열세 시간을 버틴다. 동료들과 졸린 눈 비벼가며 먹는 한식이 오랜 떠돌이 생활에 헛헛한 마음을 채워주는 위로와 연대의 시간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코로나 시대를 지나며 호텔 방에서 각자 끼니를 해결하는 문화가 자리 잡았지만 가끔은 우르르 한식당에 몰려가던 그때가 그립다. 언젠가 이 모든 게 끝나고 다시 마스크를 벗는 날이 오면 좋은 동료들과 다시 테이블에 둘러앉을 수 있을까. 우리의 발길이 끊긴 한식당 사장님들의 안위를 걱정하며 오늘도 비행 가방에 햇반과 캔 참치를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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