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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a Apr 20. 2021

나의 빛나는 시절

꽃보다 예쁘고 햇살보다 반짝였던

  어설픈 화장에 뾰족구두. 절대  얼굴과 운동화로는 학교에 가지 않겠다는 혼자만의 룰이 있었다. 백팩도 매지 않았다. 뾰족구두에 올라타 뒤뚱뒤뚱 걸으면서, 작은 핸드백을 옆에 매고 두꺼운 일반생물학 책을 품에 안고  보일 사람도 없는 캠퍼스를 부지런히도 누비고 다니던 스무 . 적당한 학교, 적당한 과에 점수 맞춰 들어갔다. 공부를 죽도록 하진 않았지만 수능에 대한 예의로  12시까지 학교 자습실 책상에 앉아있던  3 지나온 우리 모두는 엄청난 해방감을 만끽하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쌩쌩 부는 부산의 꽃샘추위 속에서도 짧은 치마만 고집하며 오들오들 떨던 3월이 가고 캠퍼스에는 벚꽃비가 내렸다. 그 사이 동기들 사이에서도 친한 무리가 생겨났다. 미래는 2학년 쯤 부터 고민 해 볼 참이라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었다. 점심 메뉴가 가장 큰 고민이었고, 공강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가 제일 걱정이었던 시간.


  쉬는 시간에는 동전을 던져 앞면이 나오면 노래방에 가고 뒷면이 나오면 수업을 듣기로 했다. 그리고 앞면이 나올 때까지 던졌다. 어쩌면 앞면도 노래방, 뒷면도 노래방이었을지도 모른다. 봄 햇살이 하얗게 부서지는 캠퍼스를 가로질러 우리는 아침부터 노래방엘 갔다. 맥주 한 모금 마시지 않은 오전 열한시의 맑은 정신으로 젊음에 취한 나와 친구들은 술에 취한 듯 소리를 질러댔다. 점심으로 돈가스를 먹고 오후엔 당구장에 갔다. 사이사이 한 시간씩 수업을 듣기도 했다. 수업 사이사이에 놀기보다는, 노는 중간중간에 수업에 들어갔다. 넓은 캠퍼스와 학교 주변을 바지런히도 누비고 다녔지만 지치지 않았다.


  미친 1학년에게도 네 번의 시험기간은 온다. 시험공부를 할 생각은 별로 없지만 새벽부터 도서관에 가 자리를 잡았다. 아침 8시만 되어도 도서관에 자리가 하나도 없었기에 새벽이슬을 맞으며 버스에 올랐다. 공부가 될 리 없는 그 시절엔 왠지 평소보다 시험기간에 노는 게 더 재밌었던 것 같다. 도서관 휴게실에서 수다 떠는 게 너무 짜릿해서 그렇게 매일 아침 졸린 눈을 비비며 학교로 달려갔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비둘기를 잡아 튀긴다는 소문이 도는 학교 앞 통닭집에서 입천장이 까지도록 딱딱한 프라이드치킨에 소주를 먹는다. 다음 코스는 노래방 아니면 당구장, 가끔 남자 동기들을 따라 PC방에서 피 튀기는 총질을 할 때도 있었다. 막차가 종점에서 출발할 때쯤, 후다닥 학교로 달려가 도서관 책상에서 온종일 외롭게 나를 기다리던 전공서적을 챙겨 발갛게 달뜬 얼굴로 버스에 올랐다. 막차를 놓치는 날엔 첫차를 기다렸다. 시험은 되는대로 쳤고, 다들 적당히 공부하고 신나게 놀았기에 학점은 그런대로 받았다.


  우리 과 건물 뒤쪽으로 가면 키 작은 나무들로 담장을 쳐 놓은 틈에 개구멍이 있었다. 허리를 숙이고 개구멍을 통과하면 바로 광안대교 끝자락이었다. 그렇다. 정문 앞은 부산에서 손꼽히는 대학가였고 개구멍은 광안리라니, 나의 학교는 참으로 바람직한 입지조건을 자랑하고 있었다. 공강이 긴 날도,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바이킹을 타고 싶을 때도, 광안대교에서 불꽃이 팡팡 터지는 밤도, 나와 친구들은 허리를 숙이고 개구멍을 지났다. 그 바닷가를 깔깔대며 걷고 또 걸었다. 벚꽃이 흩날릴 때도 뜨거운 여름날에도 낙엽이 질 때도 낮이고 밤이고.


  그때 공부했던 것들은 지금 아무것도 기억이 안 난다. 대학 졸업장은 나에게 취직을 위한 '최소한의 자격'을 충족 시켜 주었을 뿐, 사회에서 다시 모든 것을 새롭게 배워야 했다. '비싼 등록금'(이라기엔 국립대라 많이 저렴했다.) 내고 얻은 것은 어쩌면 햇살 쏟아지는 캠퍼스에서 그 햇살보다 찬란히 반짝였던 청춘의 시간들 일 지도 모른다. 다시는 평생 느껴볼 수 없을 그 나이, 그 시절, 그때 만의 감각과 자유로움, 어른도 아이도 아닌 그 무언가로 존재하던 시간들, 스무 살이었기에 용서받을 수 있는 크고 작은 실수와 친구들끼리만 아는 흑역사 같은 것들 말이다.


Sakura, Oamul lu


  꽃을 보다가 문득 왜 이제서야 꽃이 예쁠까 생각했다. 꽃은 언제나 예뻤지만 그 시절 우리는 꽃보다 더 예뻤기 때문에, 그리고 스무 살의 세상에는 꽃보다도 새롭고 신기한 게 너무나 많았기 때문에 지천에 피어있는 꽃을 볼 겨를이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내 인생 마지막으로 조금의 어둠도 없이 반짝이기만 할 수 있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 조금 서글퍼지기도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쌓여 어른의 삶을 지탱해 주고 있는 건 아닐까. 그때의 촌스러운 나와 친구들이 보고 싶고, 창밖에 흩날리는 벚꽃이 새삼 예쁜 서른다섯의 봄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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