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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a Mar 15. 2022

인디아, 그 해 겨울은

Diarrhea가 뭐죠?

  그 해 겨울은 요상했다. 짜이와 온갖 종류의 라씨, 복통과 ‘Diarrhea’로 점철된 그 겨울을 나는 ‘인도 거지 시절’이라 부른다. 유럽은 여름, 인도는 겨울에 가는 거라고 어디서 주워들은 탓에 그 해 겨울 유럽 행 캐리어를 쌀 뻔하던 나와 친구는 20kg짜리 배낭을 짊어지고 인도로 향했다. 바지와 속옷 사이 단전에 달러 400불과 여권이 담긴 복대를 소중히 차고.


  영영 돌아오지 않을 사람처럼 휴대폰도 한국에 놓고 갔으니 신용카드는 챙겼을 리 없었다. 달러 400불은 한 달간 먹고, 자고, 입고, 이동하기에 부족하지는 않았지만 풍족하지도 않은 액수였다.

 

  처음 도착한 뭄바이의 숙소는 천장이 없이 칸막이만 있는 방이었다. 욕실은 당연히 공용이었고 창 밖엔 아침부터 밤까지 경적소리와 까마귀 떼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 후로 묵은 숙소들은 천장이 없진 않았지만 대체로 공용욕실을 사용해야 했고, 95% 확률로 온수가 안 나왔으며, 창문이 없으면서 낮 동안 전기 공급이 안 되는 곳도 있었다.

 

뭄바이에 도착해서 처음 마주한 풍경. 타지마할호텔과 아라비아해.


  아무리 인도라도 겨울은 겨울이었다. 뭄바이 같은 중부는 괜찮았지만 위로 올라갈수록 아침저녁은 코끝이 시릴 정도로 쌀쌀했다. 매캐한 매연이 차가운 아침 공기에 실려오면 숙소 근처의 노점으로 갔다. 짜이 장수는 도처에 있었다. 리어카 정도면 양반이었고 길에 쪼그려 앉아 짜이를 끓이는 사람도 있었다. 한국의 가을 날씨 정도였지만 인도 아저씨들은 얇은 목도리를 얼굴 주위로 빙빙 둘렀다. 터번처럼 머리에 두른 게 아니라 정말 정수리부터 귀를 지나 턱까지 빙빙 감았다. 마치 단체로 치통을 앓는 사람들처럼.


매일 아침 짜이, 짜이, 짜이.


  인도의 겨울에 무지했던 나는 신발이라곤 샌들 한 켤레뿐이었기 때문에 언 발을 꼼지락 대면서 얼굴을 돌돌 감은 아저씨들과 짜이를 호호 불어 마셨다. 가끔 노점에서 식빵이나 비스킷을 사다가 찍어먹기도 했다. 짜이 잔은 흐물흐물한 플라스틱 컵 아니면 흙으로 빚은 도자기 잔이었다. 말이 도자기지 흙 가루가 부슬부슬 묻어나는 것 만 같은 이 도자기 잔은 마신 후 아무렇게나 던져서 깨트리면 되는 것이었다. 이 잔을 길바닥에 던질 때마다 나는 묘한 쾌감을 느꼈다.

 



  아무리 여유가 없어도 상상 이상으로 싼 인도 물가 덕분에 삼시세끼 먹고도 하루 두 번 간식 정도는 사 먹을 수 있었다. 관광객들이 갈 법한 식당만 피하면 됐다. 허름한 내부에 현지인들이 한 두 명 앉아있고, 안쪽에 손 씻는 세면대가 있고, 우릴 보고도 애초에 숟가락을 안 준다? 그 정도면 합격. 이런 곳에서는 20루피(당시에 약 600원)에 한 끼를 때울 수 있었다.


  매일 커리, 비리야니, 볶음밥, 볶음면을 돌아가며 먹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 소고기를 접하기 어려운 인도에서 육식주의자인 나는 매번 치킨을 선택했다. 정말 닭을 한 끼만 더 먹으면 내가 알을 낳겠다 싶을 때 가끔 양고기를 택했다.


 아침을 짜이로 시작했다면 오후엔 라씨를 마셨다. 인도식 요거트인 라씨는 플레인 라씨부터 망고 라씨, 바나나 라씨 등 온갖 과일이 든 것까지 종류가 다양했다. 보통 우리가 먹는 요거트 보다 조금 더 달고 시큼하고 묽어서 유리잔에 담아 빨대로 마시는 형태였다. 점심을 먹고 나면 상큼 달달한 라씨가 떠오른다. 하루 두 잔. 어느 도시를 가든 라씨집을 찾아내었고 대체로 큰 기복 없이 평균 이상의 맛을 구현했다.



 

  문제는 ‘Diarrhea’. 난 그 해 인도에서 이 단어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렇다, 인도 여행자라면 그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설사.

 

  여행을 떠나기 전 이미 그 명성을 알고 있었기에 가방 한 켠에 지사제를 왕창 챙겼음에도 나의 준비성을 비웃기라도 하듯 한국 약은 도무지 힘을 쓰지 못했다. 균이 다르기라도 한 걸까, 아무 소용이 없었다. 열악한 위생 상태와 더불어 유산균 득실 한 요거트를 하루에 두 잔씩 들이키니 그 어떤 약이 이겨낼 수 있을까. 일기장을 들춰보니 이런 문장이 있다.

 ‘라씨.. 정말 그만 먹어야 하는데, 배가 아파도 안 먹을 수가 없다.’


  결국 여행 중반부에 접어 들어서 나는 델리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제 발로 찾아가고야 만다. 사리를 입은 인도 아주머니들 사이에 홀로 흰 가운을 입은 젊은 여의사에게 손짓 발짓을 해댔더니,

“음 그러니까 너 지금 Diarrhea 구나! 감기도 있고. 오케이 처방전 줄게. 약국 가서 약 사 먹어.”


  무려 응급실을 갔는데 병원비는 무료였다. 처방전에는 약 종류가 대 여섯 개 적혀있었는데, 예상치 못한 약값이 부담이었다. 약사에게 처방전을 한 줄 한 줄을 짚으며 이건 무슨 약이냐고 물었다.

“내가 가난해서 그러는데.. 이 약들 다 빼고 ‘Diarrhea’ 약만 주면 안 될까?”


  그리하여 처방전 맨 마지막 줄에 적혀있던 Diarrhea약만 받을 수 있었다. 처방받은 약 덕분인지 잠시 라씨를 끊어서인지 몰라도 몸 상태는 금세 회복되었다. (그래 봐야 며칠 못 갔다.) 역시 인도 균에는 인도 약인가?

 

지금도 일기장에 붙어있는 병원 서류와 약 봉투


  짜이와 라씨 외에도 배고픈 배낭여행자에게 단돈 몇 루피 짜리 길거리 음식들은 너무나 꿀맛이었다. 그리고 Diarrhea와의 싸움은 여행이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었다.


  그 해 겨울 나는 아무리 먹어도 살이 쭉쭉 빠지는 기적을 경험했다. 체중 따위 신경 쓰지 않고 설탕이 왕창 든  초코케익을 와구와구 먹어대도 점점 말라비틀어져가는 기적.

 

   아, 얼마나 젊고 무모하고 용감하고 말랐던! 청춘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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