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로 항공사 떠나는 승무원들의 유형 3가지

남겨진 이, 떠난 이 모두에게 건투를 빌며

by Flying Johan


사람의 만남이든, 연인과의 사랑이든, 부모 자식 간의 인연이든 간에 인생을 살 때 처음이 있으면 항상 마지막이 있는 법이다.


직장도 마찬가지다. 특히 직장인들에게 본인이 다니는 회사만큼 애증의 대상이 어디 있으랴.


지금 세계 항공업계에선 인력감축이 한창이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세계 항공사 직원 40만여 명이 이미 해고·일시 해고됐거나 실직 가능성을 통보받았다고 보도했다. 북미에서 13만명, 유럽 11만7000명, 아시아·태평양 10만2000명, 중동·아프리카 5만2000명 등이다.



중동 최대 항공사인 에미레이트항공은 지금까지 1만명 가까운 직원을 이미 해고했다. 현재도 전 직원 대상으로 무급휴가 신청을 받는 등 인력 줄이기에 총력을 기울이는 중이다. 아랍에미리트(UAE) 국영항공사인 에티하드항공은 지난 5월 직원 수백 명을 해고했다.


코로나19는 많은 것을 바꿔놓았고, 특히 항공업계에 많은 인력감축을 불러오고 있다. 코로나19 방역복을 입은 에미레이트 항공 승무원들 / (출처: 에미레이트 항공 홈페이지)

가까웠던 지인 승무원이 떠나는 순간을 지켜보는 것은 참 마음이 아픈 일이다. 그러면서도 '나는 괜찮아야 할 텐데'라고 비는 내 자신은 참 간사하다. 나는 아직까지는 안전하지만 미래를 누가 알겠나.


이렇게 슬픈 시절, 인력감축으로 인해 뜻하지 않게 떠나게 된 주위 에미레이트항공 승무원들의 마지막 순간을 간략히 정리해봤다.



1. 분노의 5단계형


가장 평범하면서도 보편적인 반응이다.


'도대체 내가 왜?'라고 생각하면서 지금까지 열심히 일하면서 열정을 바쳤던 항공사에 분노를 느낀다. 평소 칭찬레터를 많이 받았거나 승객으로부터 평판이 좋았던 승무원일수록 더 큰 배신감을 느낀다.


이와 같은 이유는 항공사 내부 해고 기준이 불명확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선풍기에 이력서 수만 장 늘어놓고 돌려서 멀리 날아간 사람부터 해고시킨다란 말이 있을 정도다. 컴퓨터가 로또 당첨자 뽑듯이 무작위 추첨한다는 말도 있다. 내부 기준이야 있겠지만 정확한 것은 아무도 모른다.


이런 걸 보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분노의 5단계(Five Stages of Grief)'를 정확히 따르는 듯하다.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가 거론한 죽음과 관련된 임종 연구(near-death studies) 분야의 이론으로 인간이 자신의 죽음을 서서히 맞이하는 데에 부정에서부터 분노, 타협, 우울감, 납득을 거쳐 수용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이를 받아들이게 되는 과정을 말한다.


에미레이트항공의 한 승무원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은 얘기를 들려줬다.


인도 출신 한 크루가 평소 평판도 좋고 주위에도 참 친절했던 사람이었는데, 이번에 해고대상자가 된 뒤 충격을 심하게 받았는지 성격이 180도 변해서 맨날 허구한날 짜증만 내다가 요즘엔 계속 하루 종일 울기만 해요. 사람도 반 미친 거 같아서 이제 모두가 걔를 피해요.


이 이론에 따르면 해당 승무원은 현재 부정, 분노, 타협의 단계를 지나 우울의 단계에 있는 듯하다.

하지만 이제 조금 있으면 불운한 본인의 처지에 대해 납득을 하고 끝내 본인의 상황을 수용하면서 신변 정리를 하고 고국 인도로 돌아갈 준비를 할 것이다.


어쨌든 마음이 좋진 않다...




2. 대인배형


계약 해지서를 받아들었지만 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훌훌 털어버리면서 지금까지 본인을 키워준 회사에 감사인사까지 올리는 유형이다. 대단한 강철멘탈이다.


최근 인스타그램에선 Kelsey라는 캐나다 출신의 에미레이트항공 승무원이 계약해지 통지서를 받기 위해 회사에 마지막 출근하는 본인의 마지막 순간을 아름다운 영상으로 만들어 이를 공유해 크게 화제가 됐다.


(좋게 말해 아름다운 영상이지 솔직히 까놓고 말하면 해고통지받고 본인 마지막날 회사에 도장찍으러 출근하는걸 영상으로 만들어서 전체공개로 본인 SNS에 올린거다. 멘탈 무엇...)


Kelsey Johnson 씨 인스타그램 (@lipstickandluggage) 캡처


이 승무원은 해당 포스팅에서 "지금까지 4년 10개월 동안 73개국과 100개 넘는 도시를 갔고 4000시간 넘게 비행을 했다. 이제 에미레이트와의 여정이 마지막을 고했다" "한 달 전쯤 수백 명의 내 동료와 함께 인력감축 대상이 됐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우린 회사가 하는 일에 대해 왜 그러는지 항상 이해하진 못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를 있게 해주고,
사람들과 만났고,
좋은 추억을 만들게 해준 에미레이트항공에 진심으로 감사함을 올리고 싶다

고 고백했다.


덧붙여 "혹시 VIP 전용기 승무원을 찾거나 SNS 홍보담당자를 찾고 있으면 내게 바로 연락해달라"고 재치 있게 말했다. 해당 포스팅은 두바이 현지 뉴스에서도 보도되는 등 좋은 마무리의 전형으로 꼽히고 있다.

이렇게


이런 멘탈에 이런 마음가짐으로 무엇을 못 하랴.


나는 그녀가 앞으로 지금보다 더 좋은 곳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3. 개그욕심형


'개그욕심'이라고 썼지만 사실 상술한 '대인배형'에 가까운 이들이다.


내가 아는 최고의 대인배.jpg


차이점이 있다면 대인배형이 좀 더 진지하다면 이들은 이 슬픈 상황마저 유머로 넘기는 여유로움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진심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유형이다.


에미레이트항공의 경우에는 승무원과의 마지막 계약 해지를 알릴 때 이를 이메일로 미리 알려주는데, 해당 승무원이 그 마지막 레터에 사인하기 위해 본사로 출근하면 방 안에 머핀 및 다과 등이 승무원들을 위해 준비돼 있다고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배려하는 회사의 방침인 것이다.



눈물젖은 머핀...


해고 통지를 받은 승무원들 일부는 "난 머핀보다는 허니 브레드가 좋은데 회사에 떼써 볼까" 혹은 "머핀 남은 거 싸와도 되나? 앞으로 많이 배고플 텐데 ��" 등 다른 동료 승무원과 이를 유머 소재로 쓰고 있다.


상심에 빠져 있기보단 끝까지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모습이다. 직접 당사자와 이런 농담을 주고받음 참 웃프다.


승무원의 기내방송, 영어로는 Public Announcement (PA)라고 한다.


계약 해지를 이메일로 통지받고 회사로 출근해 레터에 사인하기 전 본인의 마지막 비행 기내방송에서


승객여러분, 저는 이번 비행이 마지막입니다.
이번에 인력감축 대상이 됐죠.
하지만 여러분과 같이 있어서 좋고 행복합니다.
저 마지막 사진 좀 많이 찍어주세요!!!

이런 식으로 승객들과 소통해 화제가 된 승무원들도 있었다.


실업의 공포만큼 일반 소시민에게 더한 공포가 있겠냐마는,

코로나19 사태가 평생 가진 않을 것이고 항공업계도 조만간 다시 살아나 지금보다 더 날 것이다.


이미 떠난 사람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 모두에게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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