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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Johan Sep 25. 2022

문과폭망 시대에 내 적성이 인문학이라니!

적성은 불가불변한 가치인가

"아 이거 좀 에반데"


요새 다니던 헬스장에서 무게를 조금 더 올릴때 습관처럼 이 말이 나온다. 말인즉슨 "이거 좀 오버인데" 한마디로 하기 싫고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근데 내가 이렇게 죽는 소리를 낼 때 옆에 어떤 우락부락 근육을 자랑하는 어떤 분은 내가 드는 무게의 10배까지 들면서 옆에서 슉슉 소리를 내며 근력운동을 하고 있다.


나는 당장 힘들고 죽을 것 같은 무언가를 다른 사람은 별 고생없이 잘 해내는 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적성(適性)'이라는 것이 진짜 있는 것 같다. 적성이란 무엇인가를 하는게 잘 맞는 소질이나 성격을 뜻한다.


문과 출신으로서 "너는 문과적성이지"이란 말이 왠지 '수학을 못하고 코딩도 못하고 4차산업혁명 시대에 뒤떨어진 아날로그적 적성'이란 늬앙스를 품어 그닥 좋은 말처럼 들리지 않는 요즘시대에, 과연 문과 전공자들의 적성이란 무엇일까.



문과 적성이라는 것에 대한 고찰


'문과 적성'이란 말을 잘 생각해 보자. 한가지 확실히 해야할 것은 수학을 싫어하고 과학을 싫어한다고 해서 문과 적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수학을 싫어하는건 그냥 '수학을 싫어하는 사람'인거지 이게 문과 적성이란 말은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문과 적성은 무엇일까? 흔히 말하는 어학 능력, 커뮤니케이션 능력, 협상 능력, 논리정연한 사고능력, 사회과학의 영역이 문과 적성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과 적성은 결코 이과적성보다 깊으면 깊었지 낮지 않다.


나는 대학 시절때 처음에는 회계사(CPA)가 되고 싶었다. 별 이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다니던 학교가 공인회계사 시험 합격자가 제일 많이 나왔고 (2010년대까지는 그랬다. 지금은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주위 선후배들이 이 시험을 많이 준비했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하지 않고 친구 따라 강남에 같이간 결과는 역시나였다.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고 회계학 세법 상법 재무관리 등을 달달 외웠지만 하면서도 '내가 이것을 왜 해야 하나, 정말로 좋아하나?'란 생각을 끊임없이 했고, 그러다보니 결과가 좋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언론사 기자 신입채용 공고를 우연스럽게 보게 되었고, 곧바로 CPA 시험을 접고 언론고시에 뛰어들었는데 그 전까지 작문이니 논술이니 이런걸 한번도 해본적 없던 내가 준비한지 3개월도 안되어서 국내 최대규모 경제언론사에 바로 합격했다. 그것도 졸업하기도 전인 4학년 2학기때 말이다.


문과라고 다 같은 문과가 아니다. 공인회계사 같은 시험은 문과쪽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시험과목이나 푸는 방법 그리고 요구하는 능력을 보면 이과에 더 가깝고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안성맞춤인 시험이다. 당시의 나는 이게 적성이 아니었던 것이다.


숫자를 다루고 논리적이어야 하는 재무&회계쪽 적성과 커뮤니케이션과 글쓰기 능력이 중요한 언론&광고홍보쪽 적성은 너무 다르다. 법학이나 어학쪽 적성도 그렇고.


인생이 이렇다. 화려해 보이고 좋아보이는 길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주체적으로 선택한 길이 아니라면, 그 과정에서 상처만 입고 패배감만 맛 볼 가능성이 크다. 그런가 하면 조금은 쌩뚱맞은 길이라도 내가 하고싶은 적성에 따라 무언가를 선택한다면 그 보답은 생각보다 클 수도 있다.


이런데 어떻게 이를 뭉뚱거려 "나는 수학을 싫어하니 문과적성인가 봐요"라고 퉁칠수 있나. 진짜 피타고라스가 무덤에서 뛰쳐나와 삼각자로 팰수도 있다.


웃긴건 이 적성이란것도 인생을 살면서 바뀌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사실 엄청 불변적인 지고지순한 가치도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학창시절 수학을 안좋아했지만 지금은 매우 좋아한다. 답이 딱딱 있는게 오히려 모든게 애매한 것보다 낫기 때문이다.


애당초 한가지 성격을 20년 30년 한결같이 유지하는게 더 대단한 거다. 뭐 살다보면 바뀔수도 있는거지. MBTI도 하다보면 "전 원래 P였는데 지금은 J에요" 이러지 않나. 이 '적성'이란 놈도 그렇다.   


문과 이과 배틀

그래서 적성이란 무엇인가.


때문에 세상에 적성이 없는 사람은 없다. 그냥 못찾고 있을뿐.

사실 적성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뭔지 모르겠는 사람들은, 그만큼 한 가지 특출난 적성 분야가 없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이게 나쁜 말이 전혀 아닌게, 적성이 없다는 말은 다른 말로 '모든것에 조금 조금씩 다 적성이 있다'는 다른 표현과 같기 때문이다.


삼국지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을 예를 들어보자. 내가 신무장을 커스터마이즈해서 만든다. 내게 주어진 스탯 지수는 200이다. 이 200을 가지고 내 기호대로 지력, 무력, 정치력, 매력 등에 배분을 해야만 한다.


나는 여포같은 맹장을 원하므로 무력에 100을 올인해 보겠다. 그러면 무슨 일이 생기나? 나머지 100을 가지고 나머지 지력, 정치력, 매력 등에 모두 배분을 해야만 하는 사태가 생긴다. 덕분에 나오는 것이 무력은 100인데 지력은 30,정치력 30, 매력 40이란 뇌까지 근육으로 된것 같은 캐릭터가 나온다.


이렇게 탄생한 캐릭터는 과연 좋을까? 게임을 해본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이런 장수는 무력이 100이지만 매력이 부족하므로 조그만한 이간질 계략에 부하들이 모두 떠나가고, 전장시에는 화공 같은 계략에 속속무책으로 당한다. 무력 100을 실제로 발휘할 무대는 그리 많지 않다.


그렇다면 제일 무난한 선택은 무엇인가? 무력을 70정도만 주고 남는 스탯으로 나머지 영역에 적당히 잘 배분을 하는 옵션이 있다. 그렇게 되면 여포 같은 인물은 되지 않아도 '간손미(간옹-손건-미축)' 같은 적당히 명이 길고 잘 나갈 수 있는 장수가 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분야에 조금조금씩 적성이 있기 때문에 딱히 스스로 적성이 있다 생각하지는 않지만 하다보면 숙달되어 곧 잘하곤 한다. 또 하다보면 그게 어느새 본인의 특출난 적성이 되어 있기도 하다.


하고 싶은 말은, 적성이 없다고 느낀다 해서 슬퍼하거나 자괴감에 빠지거나 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머리에는 한계가 있다. 당장 어제 먹은 점심 메뉴도 기억못하는 것이 우리의 뇌다.


오히려 한쪽 적성이 매우 높다는건 그 반작용으로 그만큼 다른 영역에 구멍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지.


‘적성'이란 말로 본인을 가두지 않았으면 한다. 오히려 적성이 없는 사람은 모든것을 다 잘 할 수 있는 팔방미인형 인재일 가능성이 높으니 더 당당해져도 된다. 당신이 바로 4차산업혁명시대의 인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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