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ying Johan Sep 28. 2022

"기자 왜 그만두셨어요?" 질문 100번 받았는데

둘 다입니다

"와우 너 되게 유명인이었나 보다!"


이집트 카이로로 비행 가는 길에 캇핏안에서 옆 자리에 앉은 캡틴이 흥미롭다는 표정을 짓고 날 바라본다. 나는 '아 또 이 레퍼토리구나...'라며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긴다.


내가 근무하는 항공사에는 한국인 기장이 단 한 명도 없다. 아니 아시아인 자체가 별로 없다. 조종석 내 왼쪽 자리에 앉는 캡틴들은 전부 다 보통의 한국인들이 평소 접할 일이 없는 인도 파키스탄, 중동, 유럽 대륙 출신들이 대부분이다.


보통 비행기가 순항고도에 이르면 남는 시간에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시간을 때우고는 하는데, 그러다 보면 가장 먼저 나오는 얘기가 '넌 비행하기 전에 뭐 했어?' 질문이다. 그럼 나는 있는 그대로 '어 나 한국에서 저널리스트였어'라고 대답하고는 하는데 그러면 항상 나오는 게 저기 위의 첫 문장 반응이다.


비행과 전혀 관련이 없는 '저 멀리 BTS와 오징어게임 나라에서 건너온 저널리스트 출신의 늦깎이부기장'을 보면서 외국인 입장에서 호기심이 샘솟는 것이 옆에서 딱 봐도 눈에 보인달까. 그리고는 다음 질문이 이어진다.


"아니 왜 그 좋은 저널리스트 좝을 그만뒀어?"


이 캡틴들이 상상하는 그 저널리스트의 표상이란, 방송에서 정치인들과 때로는 싸우면서 총기를 잃지 않고, 독재에 항거하고 사회의 불의에도 못 참고 들고일어나면서, 포탄이 떨어지는 우크라이나 같은 곳도 자청해 들어가 소식을 전하는 그런 참다운 언론인이겠지만, 미안하지만 내가 그런 사람 일리가...


나는 그러면 그냥 '어렸을 때부터 파일럿은  로망이었고 나의 버킷리스트였으며 항상 푸른 하늘을  때마다 어린 소년은 블라블라~'라고 대답하고 대충 넘기곤 하는데(대충해서 그렇지 맞는말이긴 하다), 내가  외국인 기장과 영혼의 도원결의를 맺을 것도 아니고, 어차피 이분도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보단 그냥 단순한 1 호기심으로 물어보는 것이기에.


그런데 웃긴 건, 정말 진부한 대답이고 클리셰 투성 이건만 어쨌든 이렇게 대답하면 비행에 평생 인생을 바친 기장의 흐뭇한 아빠미소를 목격할 수 있으면서 그날의 비행이 편해진다는 것이다.  (^^)


어느 날 비행에서 일몰이 너무 예뻐서 찍었다




뭔가 이상한데?


그러고 보면 언론사를 그만두고 조종사의 길을 택한 이후로 지금까지 정말 숱한 사람들에게서 질문을 받아왔던 것 같다.


"왜 기자를 그만두셨냐요?"


그런데 저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확실히 할 것은, 난 기자를 그만둔 적이 없다!!!


질문이 '거대 언론사에 소속된 정규직 기자 업무를 그만두다'란 의미라면 맞는 얘기이지만, 이 질문을 '기자 직군'으로 한정 짓는다면 나는 아직도 기자질(?)을 열심히 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현재 우리나라 뉴스 채널 중 한 곳과 계약을 맺고 UAE 두바이 담당 기자로 일하는 중이다. 또 각종 언론매체에 관련해서 연재와 기고도 하고 있으며 가끔 칼럼도 쓰고 있다.


당장 이 글을 쓰고 있는 오늘 새벽에도 카타르 월드컵으로 인해 이번 주 뉴스에 쓰일 스탠드업 영상을 찍어 서울 오피스에 송고했으며, (이번 주말에 방송 예정이다) 내일모레에도 영상 인터뷰가 하나 있어서 준비해야 한다. 비행은 언제 하니?


글로 승부를 보던 신문기자 출신이 영상까지 챙겨야 하는 방송기자 역할까지 새로 하려다 보니 적응하기도 힘들고 예전과는 달리 영상까지 챙겨야 하는 게 힘들어서 '옛날이 좋았지'란 생각이 항상 들긴 하지만 나는 어쨌든 하는 일도 그렇고 지금도 당당히 기자다.


두바이에서 이런걸 같이 합니다




조종사 출신 기자입니다


때문에 '왜 기자를 그만두셨나요?'가 아니라 '왜 아직도 기자를 하시나요?'라고 내게 묻는 게 더 적절한 질문일 것이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당연하게도 이 일을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이다. 억만금을 준다 해도 자신의 몸을 해치고 스트레스 많이 받는다면 오래 못한다. 최소한 나는 그렇다.


무엇보다 나는 일상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 그 신선한 바이브를 느끼고 대화를 하며 그분의 인생을 간접 경험하는 게 좋다. 서로 정서를 교류하며 생각의 지평이 넓어지고 내 안의 편협함도 치유된다.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마음껏 만날 수 있다'라는 덕목은 사실 기자들 모두가 인정하는 기자 직업의 최고 장점 중 하나다.


또한 뭔가 내가 열심히 한 결과물들이 세상에 발표되고 공유되는 그 과정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글 쓰는 것도 좋아하기에 뭔가 하나하나 쌓이는 아카이브를 바라보는 기분이랄까. 유튜브를 하거나 브런치에 글 쓰는 것도 같은 마음이겠지.


언론사에 입사하고 수습기자를 막 뗐을 무렵 기사 바이라인에 내 이름이 처음 나왔을 때 그 쾌감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도 기억 안나는 작은 기사였지만, 나 혼자 신나 그날의 신문을 잔뜩 챙겨 집으로 가져와 읽고 부모님에게도 선물드렸던 나. 10여 년 전 사회초년생 시절의 소중한 기억이다.


이렇듯 잠시 조종사가 되기 위해 언론계를 떠났지만, 이러한 내 성격과 적성이 결국 날 다시 언론계로 부른 것 같다. 본격 양다리 


사람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야 정신건강에 좋고 오래 살 수 있다. 물론 100% 좋아하는 직업이란 세상에 없는데, 직업이란 것 자체가 남의 돈을 받기 위해 있는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 스트레스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뭐 비행기 조종사가 되기 전 내가 소속된 언론사에서 기자 일을 하면서, 솔직히 짜증 나고 힘든 일이 왜 없었겠냐만은, 어딜 가도 마찬가지란 걸 알기에. 화려해 보이는 비행기 조종사의 세계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다 똑같기에 그렇다. 정말 눈물 나는 얘기들 많다..이건 다음기회에


그런 불평보다는 이곳 머나먼 두바이까지 와서도, 이렇게 내가 가진 탤런트를 잘 살려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또 주어졌다는 것에 먼저 감사하는 게 맞는 도리겠지. 앞으로도 열심히 하다 보면 또 새로운 기회가 찾아올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