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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Johan Aug 16. 2023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혼자라면 못했을 것들

어느날 공항 차트를 보는데 이해가 되지 않는 규정이 보였다. 차트 메뉴얼을 계속 뒤져봤는데도 내가 원하는 답변이 나오지 않았다.


책을 뒤적뒤적 검색한지 20분이 흘러가자 짜증이 슬슬 밀려오기 시작한다.  '아 왜 안나오지?' 고민하다가 끝내 한 파일럿 동료에게 왓츠앱 문자를 보냈다.


"야, 너 혹시 이거 차트에서 이거 라이트 갯수에 따라서 xxxx하는거 알아?"


"그거 ~~~~~ 이렇게 해석하는거야. 챕터 xxx 보면 나와 있어."


찾아보니 진짜다. 바로 해결됐다. 아 진작에 물어볼껄…..


모르면 빨리 물어봐야 고생을 덜한다


#. 먼저 경험했다는 것


비행을 하다보면 생각치 못한 난제에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 갑자기 절차가 생각 안난다든지 궁금한게 있는데 아무리 메뉴얼을 뒤져봐도 답이 나오지 않는 그런 것들 말이다.


이럴때 주위에 똑똑한 친구가 있으면 참으로 편하다. 비행과 관련된 어떤 질문을 해도 "그거 요거임"이라면서 말해주는 그런 사람의 존재들. 업계 용어로 '빠꼼이', '감돌이'이라고도 하는데 나는 이런 애들보고 요새 ‘걸어다니는 챗GPT'란 별명을 붙여주고 있다.


물어보기만 하는건 아니다. 나도 이제는 어느정도 경력이 쌓이면서 이제 막 트레이닝을 시작한 조종사들에게 조언을 주는 존재가 됐다.


"그 공항에서는 어프로치 어떻게 해야해요?",

"어떤 순간에 플랩을 펴야해요?",

"빨리 하강할때 스피드를 높이는게 불가능하면 어떻게 해요?",

"관제 ATC가 너무 어려워요" 등등.


어떤 질문은 어렵지만 대부분은 어느정도 경험이 쌓이면 쉬운 질문들이다. 먼저 경험을 한 선배로써 대답을 성심성의껏 해주다가 갑자기 천장을 쳐다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나도 그때 참 질문 많이 했었는데.....'


현재 에어라인에서 정식 부기장이 되기 직전까지 카뎃 파일럿 신분이었던 지난 몇 년간을 세월을 기억한다.




#. 인생과 인연의 의미


지금껏 비행에 있어 내게 소중한 인연들과 많이 마주했다. 현재 에어라인에서 정식 부기장이 되기 직전까지 '카뎃 파일럿(Cadet Pilot; 조종 훈련생)' 신분이었던 지난 몇 년간을 세월을 기억한다.


나는 솔직히 비행훈련을 할 때 우등생은 아니였다. 오히려 고문관에 가깝지 않았나 생각한다. 나이먹고 무언가를 새로 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공감할 것이다. 어릴 때보다 몸도 느리고 암기력도 떨어진다는 것을.


우리의 인생은 사람으로 시작해서 사람으로 끝난다. 훌륭한 인연은 그 사람 인생에 긍정적이고 훌륭한 영향을 부여한다. 우리는 그런 인연을 '멘토'라 부르고 있다.


위대한 사람은 인연을 살려나가고 미련한 사람은 인연을 흘려보낸다. 반면 나처럼 하릴없는 사람은 인연과 마주 보는 경우가 많다. 다행히 나는 살면서 그게 행운으로 작용할 때가 많았다.


비행에 있어서 나는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다. 처음 아무 연고 없는 두바이에 맨땅에 헤딩할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K는 항상 멋진 누나다.


그는 정情으로 사는 사람이다. 아무 상관없는 나를 그저 내가 도와달라고 부탁하자 자신의 시간을 쪼개 나를 도와준 그는 또한 정서가 섬세한 사람이다. 동정을 주는데 인색하지 않고 작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자기를 뽐내는 일이 없으며 미소 같은 총명함을 지닌 그런 사람이다. 나는 이 누나가 앞으로도 순탄한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나의 훈련 동기 Batch Mate들도 훌륭한 사람들이다. 인도, 스웨덴, 요르단 등 국적도 사는 곳도 자라온 환경도 모두 달랐지만 적게는 한두살에서 많게는 열살 가까이 차이나는 한국 친구를 도와주기 위해 기꺼이 희생하고 손을 내밀어줬다.


최근에는 이들중 몇몇이 이미 결혼을 했거나 결혼을 앞두고 있다. 가구가 오래가면 정이 드는 것처럼,  쓸수록 길이 들고 길이 들어 윤이 나는 그런 그릇들과 같이 이들과 늙어가고 싶다.


하지만 내게 있어 '멘토'의 정의에 가장 어울리는 분은 캡틴제이일 것이다. 내가 지금 어디가서 "나 파일럿이요"라고 거들먹거릴 수 있는 것도 전부 그의 도움 덕택이다.


그는 훌륭한 군인이자, 참된 선배이자, 선생님이자 선배 조종사다. 커다란 산과 같은 그는 자신이 평생 모은 경험들을 내게 전수하는데도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한번은 받는 도움에 비해 보답이 보잘 것 없음을 걱정하는 나의 질문에  '나도 군인 시절에도 그랬고 국내항공에서 이곳 항공사로 옮길 때도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는데 지금 많은 분들이 연락이 안 된다. (너를 도와주는 건) 예전에 내가 받은걸 갚는 과정이다'라고 말씀하셨다.


멋이 있는 사람은 멋있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다. 멋있는 사람은 궁상맞지 않고 인색하지 않다. 10년을 내다보고 그가 정성과 사랑으로 가꾼 나무는 현재 무사히 자라나고 있는 중이다.


'폐포파립을 걸치더라도 마음이 행운유수와 같으면 곧 멋이다. 받는 것이 멋이 아니라, 선뜻 내어주는 것이 멋이다’라고 말한 수필가 피천득의 말처럼, 그는 멋을 아는 선배다.


그리고 이런 멋 때문에 각박한 세상도 살아갈수 있는 것이다. 내 인생은 작은 인연들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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