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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Johan Jul 28. 2023

파일럿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

나는 없지만

시계를 본다. 오늘 비행 스케줄을 확인해본다. 저녁 10시까지 체크인을 해서 남쪽 인도 어느 도시에 간 다음에 바로 턴해서 다음날 오전 7시에 다시 UAE에 되돌아 오는 일정이다.

이른바 밤비행, 벌써부터 한숨이 나온다.


잠의 중요성이야 말해 무엇하리. 고문중에 '잠 못자게 하는 고문'이 젤 악랄하다는게 괜히 있는게 아니다.


이런 생체리듬을 무시하는 Night Flight은 내게 재앙과도 같은 선고다. 스케줄 근무표가 나오면 본인의 일정을 미리 확인할 수 있는데 밤비행이 껴있는 날은 전날부터 신경쓰이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아 진짜 지금 못자면 이따 큰일나는데...'



시계를 바라보니 오후 3시다. 이것저것 준비하는데 2시간은 걸리니깐 최소한 3시간은 자야만 한다.


낮잠 자야 하는데...생각하지만 어쩜 세상에 이렇게도 컨디션이 좋다니. 세상 재미있는 일들은 지금 이 순간에 다 일어나고 있는것만 같다.




#.덕중 덕은 수면이라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몇번 저녁비행이 있는 날 쉬거나 자지 않고 바로 출근한 적이 몇번 있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나는 좀비가 되어 옆자리에 앉은 기장에게 민폐덩어리로 전락해버리고는 했다.


기장: “너 몸상태 안좋아보이는데, 좀 쉴래?"
나: ”우어어어어어…” (이미 좀비화가 반쯤 진행됨)



비행기가 순항고도로 이르면 파일럿들은 controled rest라고 합법적으로 눈을 붙일 수 있다. 인간 조종사가 해야 할 일이 이륙 착륙때 비해 줄어들기 때문이다.


시간은 최대 40분이다. 과학적으로 그 이상 자면 자도 더 피곤한 상태가 된다고 해서 규제가 있다.


물론 조종사가 둘 다 자면 당연히 안된다. 하나는 깨어서 관제와 비행기 주조종을 담당해야만 한다. (주: 이걸 실패한 사례가 지난해 케냐항공이다. 조종사 둘이 둘다 깊게 잠이 들어서 목적지를 그냥 지나쳐 30분간 더 가버렸다...)


근데 이것도 어느정도 피곤한 상태어야 효과가 있는것이지, 하나도 안자고 비행 가서 미치도록 졸린 상태에서 20~30분 자봤자 오히려 감질맛만 나고 더 피곤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잠을 못 잔 댓가는 바로 그 날 퍼포먼스의 하락으로 나타난다. 관제할 때 안하던 실수도 계속 나오고 평소라면 자연스럽게 되어야 하는 바람 예측 계산 같은 것도 안 된다.


잠이 이렇게 중요한 것이었다니!


실수가 계속 되면 옆에 앉은 기장에게도 피해를 주게 된다. 2인1조 팀플레이의 기본이 깨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피해는 고스란히 몇백명 승객들에게 전가된다.




#.잠 못드는 밤 비는 내리고



때문에 많은 파일럿들은 오늘도 불면증에 시달린다. 생체리듬이 바뀌는 날도 많고, 외국에 도착해서 레이오버를 하면 시차가 완전히 바뀌어 버리기 때문에 적응하기도 힘들다.


피곤해 죽겠는데 해가 쨍쨍해서 잠도 안오고 암막커튼을 쳐놔도 한 3시간뒤면 잠에서 깨버린다. 환장의 콜라보다 아주.


파일럿들이 모여 있는 단체방에선 그래서 어떤 음식이 잠이 잘 오나 어떻게 해야 잠을 잘 수 있나 등등의 대화가 종종 오고가곤 한다. 야 이게 몸에 좋다더라 멜라닌이 많이 포함돼 있다더라 등등.


누군가 내게 '파일럿이 되기 위해서 무슨 능력이 제일 필요한가요?'라 묻는다면 나는 일시의 망설임없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무데서나 잘 자는 능력이요.


아 하나님, 제게 왜 수면의 은사를 주시지 않으셨나이까!


눕기만 하면 5초컷으로 자는 사람들, 아무데서 던져놔도 꿀잠 자는 사람들, 수면의 질이 좋은 사람들은 만약 창공을 누비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면 조종간을 잡아도 될 것이라 내가 감히 추천한다.


잠 잘 자는 당신이 미래의 탑건 매버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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