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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Johan Jul 29. 2023

비행과 여행의 공통점

당신을 잘 기억하는 방법

아, 처음 가는 곳이구나!


문득 비행 스케줄을 보다가 작게 소리쳤다. 다음주에 사우디아라비아 어딘가 소도시에 가야 한다.

구글링을 해보니 이런 곳이 있었나 싶다.


아니 뭐 압둘 어쩌고 공항인데 진짜 한국인에게는 처음 듣는 장소다. 현지에선 유명한것 같긴 한데, 여기가 어디뇨?  


가본 적 없는 공항에 처음 갈 때는 평소때보다 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공항 차트도 더 살펴하고, 날씨같은 것도 더 꼼꼼하게 확인한다. 이미 갔다온 적 있는 동료들의 경험 조언도 들으면 금상첨화다.


"거기 공항에 approach할때 조심해야할거 있어?"

"관제에서 좀 고도를 high하게 주는 경향이 있으니 미리 속력을 좀 줄여주는게 좋아"


몇 주전 해당 도시에 이미 비행 다녀온 요르단 출신 친구가 대답한다. 여기에 '요즘 날씨가 매우 더러워서 터뷸런스도 매우 심하다'고 덧붙인다.  


이해를 돕기 위한 어프로치 차트 중 일부. 두바이 국제공항이다.


여기서 '고도를 high하게 준다'는게 무슨 의미냐면, 예컨대 나는 이 거리에서는 대략 10,000ft에 있어야 해당 공항에 타이밍 맞게 착륙할 수 있는데, 관제에서는 15,000ft 를 준다는 의미다.


이러다가 잘못하면 공항에 못내리고 그냥 지나칠 수 있기에 파일럿들은 미리 속력을 줄인다든지 강하율을 높인다든지 등의 대책을 세운다. 그걸 미리 대비하라는 의미다.


꼼꼼히 준비했으니 별일 없겠지. 어느 정도의 긴장감과 기대감을 갖고 짐을 꾸린다. 자, 오늘도 무사히.



#. 비행과 여행의 공통점


비행과 멀리 나가는 여행의 공통점이 있다. 새로운 곳을 간다는 설레임을 갖고 낯선 곳으로 가는 동안 밖을 바라보며 사색에 잠길 수 있다는 점이다. 나는 비행하면서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한다.


순항고도에 이르러 밖을 쳐다보면 특히 저녁때는 비행기 밑 도시가 수많은 밝게 빛나는 점의 모임처럼 보인다.


순항고도에 이르러 밖을 쳐다보면 특히 저녁때는 비행기 밑 도시가 수많은 밝게 빛나는 점의 모임처럼 보인다.


그 점들은 하나의 선으로 이어지고 선들은 커다란 덩어리로 다시 뭉쳐진다. 그 점 하나하나가 다 우리가 살고 있는 흔적이겠지.


저 점 안에는 희노애락이 있고 누군가의 삶이 있을 것이다.


웃음을 잃지 않는 천방지축 어린이가 그려지고, 한창 자식들에게 줄 요리를 하고 있는 어머니의 손길이 느껴진다. 애들 주겠다고 치킨 한마리 사고 들어가는 고단한 퇴근길 아버지의 뒷모습도 보인다.


이러한 것들을 상상하는건 크나큰 즐거움이다.



#. 당신을 기억해요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는 것이다 (Esse is percipi)'


17세기 영국의 경험주의 철학자인 조지 버클리가 한 말이다.그는 대상은 인식됨으로 인해 의미를 갖게 되고, 우리들은 서로를 인식하면서 존재하게 된다고 봤다.

조지 버클리(1685~1753)

그는 내게 있어서 지루한 일상에 '의미'를 안겨줬던 철학자로 기억된다.


그의 말에 따르면 내가 비행할 때 봤던 하늘 아래 저 밝게 빛나는 점들은 내가 지각함으로 인해 존재하게 된 셈이다.


그러고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도 비슷한 구절이 나온다. 내가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단지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네게 이름을 불러주니 '나의 의미'가 된다는 그 구절 말이다.


지도를 보면 가본적 없는 수많은 장소들, 비행을 하면서도 가지 않은곳 가야할 곳 그리고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그곳이 어떨지 미리 상상을 하며 특별한 존재로 만드는것은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 가지고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도 든다. 존재를 단순히 지각하는데서 그치고 싶지는 않다. 그 의미를 더 느끼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기 때문이다.


앞으로 더 많은 곳을 다니고 누비면서, 내 지각으로 인해 존재하게 된 공간들을 계속 추억하고 싶다.


굳이 파일럿으로써 가지 아니해도 된다.

백팩 대충 둘러메고 가기만 해도 신나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품게 되는 날, 언젠가는 이렇게외칠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존재하는 것은 기억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그 장소들은 영원토록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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