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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Johan Jul 26. 2023

인간 조종사의 종말

파일럿 로봇 등장에 부쳐


엔진 스타트부터 착륙까지 전 과정을 도와주는 파일럿 로봇을 우리나라에서 개발했다는 기사를 읽고, 먼저 든 생각은 오히려 '지금 나왔다고?'였다.


우리나라에서 먼저 개발했다는것도 신기했지만, 사실 현재 인간 조종사가 비행할때 하는 역할은 99.999% 매뉴얼화되어 있기 때문에 정상 비행이라면 현재도 얼마든지 바로 대체 가능하다.


사실 비행석에 앉는 로봇을 개발하는 것보다 비행기 안에 AI를 탑재해서 무인기로 가는 것이 돈도 훨씬 적게 들고 투자도 중복되지 않는 것이겠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저 로봇은 인간 조종사가 하는 역할을 그대로 수행할테니 오히려 더 대체하기가 쉽겠다는 생각도 든다. 조종석에 인간 대신에 휴머노이드를 앉히면 될테니깐.


.


#.인간 조종사는 쓸모있나


이미 조종사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우리 자신을 칭할때 'Pilot(조종사)'이 아닌 'Cockpit Manager(조종석 관리자)'라고 불러야 하는거 아니냐고들 말한다. 그만큼 절차가 다 표준화되어 있고 컴퓨터 오토매이션이 일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민간 항공사에서 조종사의 역할이라는게 사실 '비행' 그 자체가 차지하는 비중이 생각보다 그렇게 크지 않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날라가는건 기본중의 기본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행을 하다보면 가치 판단적인 요구를 할때가 많다.


예컨대 기내에 환자가 생겼을때 정말 심각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과연 어느정도 아픈 환자인건가' '얼마나 아픈건가' '이게 회항을 할정도로 급한 상황인가' 상당히 아리까리할때가 많다.


차 운전하다가 급똥이 마려울때 갓길에 세우고 수치심을 내놓고 그냥 싸든지 괄약근 조이면서 30분 걸려 휴게소로 가든지 아니면 바지에 조금씩 지리면서 그대로 운전하든지 이런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생기는 것처럼 말이다.


그대로 목적지까지 비행을 하면 3시간이 걸리고 회항을 할 경우 1시간이 걸린다고 하면 기장은 이제 머리가 매우 복잡해진다.


'과연 이 승객을 위해 비행기를 지금 돌릴 것인가?'


2시간만 더 버티면 본래 계획대로 목적지에 잘 도착해서 치료도 받을 수 있고 우리 항공사에서 파견한 지상 직원도 그곳에 있기에 훨씬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데,


회항을 하게 되면 항공사에 끼칠 손해와 나머지 승객들의 불편은 차치하더라도 무엇보다 회항을 하게 될 가까운 공항에 어떤 의료시설이 있을지 이 환자를 잘 돌볼 수 있는 환경인가도 확실치 않다.


비상환자가 있다고 무턱대고 가까운 곳에 회항하는 것이 오히려 더 좋지 않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기장은 이렇게 생길 수 있는 모든 시나리오를 염두에 두고 최종판단을 내린다. 그 뒤 모든 책임은 조종사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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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와 B를 어떻게 선택하나


이런건 작은 예이고, 비행하다보면 정치적인 판단을 해야할 때도 매우 많다.


비행도중 기내 화장실이 막힌다든지, VIP 고객이 있다든지, 착륙을 하려는데 날씨가 뭔가 착륙가능과 불가능의 그 사이 어딘가에 걸려 있다든지...


A와 B로 딱 짤라서 판단하기 힘들어 뭘 선택하더라도 책임을 져야하는 경우도 많다.


만약 비상상황에서 비행기의 추락을 막을 수 없다고 할때, A쪽으로 기수를 틀면 정부요인 총리 및 장관 10명이 죽고, B쪽으로 기수를 틀면 큰 쇼핑몰이라 시민 1만명이 죽는다고 할때 과연 휴머노이드는 어디로 틀까.


그리고 그 뒤 책임은 누가 지나?


기자 일로 따진다면 보도자료 받고 기사쓰는게 현재 휴머노이드 로봇이 할 수 있는 일이고, 단독거리 발로 뛰어 다니고 기획 발제해서 기획기사 쓰는게 인간 조종사가 그래도 아직 필요한 이유라 볼 수 있겠다.


뭐 언젠가는 이런 '가치판단' 혹은 '딜레마' 상황도 모두 해결할 수 있는 로봇이 나와 조종사들 모두가 실업자가 되겠지만


그때쯤 되면 이 세상 거의 모든 직업들이 이미 로봇으로 전부대체된 뒤의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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