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지금의 내 나이와 같은 오십에 강원도로 내려가셨다. 젊은 시절 아버지가 잘못 사신 땅을 정리하러 가신다는 것이 이유였지만 20년이 지나고서야 엄마는 나에게 고백하셨다
사실은 부동산투자자로 산다는 것이 너무 지긋지긋하고 피곤해서 도망쳤노라고... 그런데 도망쳐도 도망쳐도 도망칠 수가 없더라... 부동산이 먼저 나를 놔주지 않으면 절대 끝나지 않아
부동산투자를 시작하기는 아주 쉽다. 돈을 준비해서 중개사무소로 들어가 내가 사고 싶은 것을 사면 된다. 그리고 내가 원할 때 팔면 된다. 그렇게 다른 투자처럼 단순하게 생각했던 이들이 간과한 것은 부동산이 생물이라는 것이다
살 때는 골라서 맘대로 살 수 있으나, 팔 때는 절대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고통의 날들을 경험하고 나서야 알게 된다. 내 계획대로 되는 것은 거의 없고 그만둘 수도 없다. 부동산이 나를 놓아주어야 끝이 난다. 주도권이 부동산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20년지기 예뻐하는 후배가 있다. 분양받은 새 집에서 알콩달콩 만족하며 살던 그녀가 어느 날 문득 나에게 전화에 "부동산투자를 해야겠다"고 바로 옆에 분양예정인 아파트에 대해 물어본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다
나는 그녀가 이 고단한 길을 걷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지금도 충분히 잘 살고 있으니까 시작하지 말라고 했다. 시작하면 절대 네 마음대로 끝낼 수 없어
2023년 11월 7일 압구정동 4구역
어제는 압구정동 1구역에서부터 6구역까지 2시간을 넘게 걸었다. 무릎이 아프다. 지난 날 너무 많이 걸어다니면서 무릎을 혹사한 탓이다
무릎을 아끼기 위해 대부분은 차로 다니지만, 걸어야만 느껴지는 부동산의 기운이 있다. 길 위에 기운들이 내 몸에 스며든다. 걸으며 스며든 것들은 절대 잊혀지지 않는다
길 위에서의 이 충만함을 잊지 못해 나는 또 길 위로 나와 걷고 있구나... 조금만 걷겠노라 했거늘 2시간을 넘게 걷고 말았다. 압구정1구역에서부터 갤러리아 백화점이 있는 6구역을 돌아 신사동 안쪽에 고급빌라들까지 보고나니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젊었을 때는 더 빨리 더 많은 것을 보아야 한다는 급한 마음에 무릎에 힘을 주고 서둘러 걸었다. 빨리 걸으면 더 많은 것을 소유하고 더 빨리 부자가 되어 지금의 내 나이가 되면 편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 오십이 된 지금도 나는 길 위를 걷고 있다. 인생 크게 달라지지 않더라
서두르고 달려봤자 크게 달라지는 것도 없거늘 뭘 그리 급하게 다녔을까? 부동산투자자로 20년 가까이 살아보니 부동산은 우리네 인생과 같다. 끝도 없이 이어진 길을 쉬지 않고 걸어야 한다
그러니 주먹에 힘을 주고 속도를 내어 달릴 필요가 없다. 쉬이 지치고 길 위에 쓰러지고 만다
청담동 골목으로 들어가 옷가게를 구경하며 예쁜 옷을 사고, 카페에 들러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압구정 현대백화점 지하 매장에서 맛집을 찾아 냠냠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임장을 목적으로 발품을 팔러 나왔지만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들로 만든다
부동산투자자로 산다는 것은 무릎에 힘을 빼고 어슬렁 어슬렁 산책을 하듯 길을 걸어야 한다. 멈출 수 없으니 느긋하게 오늘을 즐겨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다
2023년 11월 8일. 압구정동 전체를 돌아보고 온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