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의 고단함이 밀려올 때, 너무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나를 다시 일어나게 하는 원동력은 무엇일까요?
나를 일으켜 세우는 힘은 무엇일까?
올해 또 가스라이팅을 당했다. 오랫동안 부동산투자만 하고 살아왔기에 인간관계가 서툴다보니 조금만 말이 통하면 너무 쉽게 마음을 연다. 보이는대로, 말하는 그대로 믿는 편이어서 목적을 갖고 나에게 접근하여 나를 이용하려고 하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다행스러운 것이 나이가 들면서 눈치가 빨라져서 큰 피해가 오기 전에 인연을 정리한다. 그래도 상처가 남아 몇 일은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그 날도 동굴속에서 분노와 자책을 반복하다가, 문득 "내가 너보다 잘 살아야 복수다!" 라는 생각이 들면서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주먹을 불끈 쥐고 일주일만에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를 세팅하고 새로운 도전을 했다. 그 때 깨달았다. 아.... 내 힘의 원천은 "복수" 구나
첫번째 "복수는 나의 힘"
늦은 결혼으로 내 나이 마흔에 첫 딸을 낳았다. 디자이너로 일했던 나는 결혼을 하고, 애엄마가 되자 일이 들어오지 않았다. 결혼을 하고 애엄마가 되면 감이 떨어진다는 선입견이 작용한 것도 있고, 시간적으로 체력적으로 예전처럼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다. 산후우울증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이 밤마다 찾아오면서 내가 죽을까봐 두려워졌다
디자이너 회사의 대표로 콧대 세우며 살았던 내가 한참 후배인 동생을 찾아가 무슨 일이든 달라고 부탁을 했다. 후배의 도움으로 아르바이트 일을 하면서 애엄마라는 이유로 일을 못하고 피해를 준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서 집에 갖고 가서 밤 늦게까지 일하고, 주말에도 나와서 일했다
두사람 이상의 업무를 해내는데도 급여는 아르바이트 비용을 줬다. 내가 애 때문에 조금 늦게 출근해서 일찍 퇴근한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일의 양이 너무 많으니 급여를 올려달라고 요청하자 그럼 다른 사람들처럼 일찍 나와서 야근까지 하라는 거다. 회사 입장에서는 일의 양보다 그들이 보는 책상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중요했던 거다. 애엄마라는 약점을 이용하는 것에 분노했지만 나는 일을 하고 조금이라도 돈을 번다는 것이 너무 좋았기에 꾹 참았다
둘째가 생겼지만 일을 하면서 무리를 한 탓에 유산을 했다. 하혈이 심해서 일주일간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자 내 자리에 다른 사람을 고용해서 앉혀놨다. 내 옆자리에서 매일 같이 밥먹고 웃으며 떠들며 함께 일하던 파트너가 애엄마라서 같이 야근을 못하니 다른 사람을 써달라고 위에 요청했고, 담당 이사는 내가 둘째를 갖고 싶어한다는 이유로 해고했다. 계약직이었기 때문에 그냥 당할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나는 "반드시 너희보다 잘 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내 안에 우울에게 지지 않기 위해 블로그를 시작했고, 전업투자자가 되었다. 바로 어제처럼 생생하거늘 아기였던 딸이 13살이 되었으니 벌써 10년이 흘렀구나
나는 지금 그들보다 잘 산다. 최고의 복수다
두번째 "복수는 나의 힘"
결혼을 하고 딸이 5살쯤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시아버지가 계실 때는 안그랬던 시어머니의 히스테리와 화풀이, 막말이 도를 넘으면서 견디기가 힘들었다. 시어머니와의 불화는 부부싸움으로 이어졌다. 어머니와 자꾸 부딪히자 남편은 내 편을 들기보다 차라리 이혼을 하자고 했다. 당신 엄마에게 억울하게 당하고 있는 나한테 감히 이혼을 요구해? 분노가 머리 끝까지 올랐지만 어린 딸을 혼자 키울 자신이 없어 어머니에게 잘못했다고 무릎을 꿇었다. 억울했지만 어린 내가 양보하는 것이 맞다고 올라오는 화를 꾹꾹 눌렀다
그 때 나는 부동산투자를 더 잘하고 싶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었다. 쉽지 않을 거라 생각했지만, 탈모가 심각해질 정도로 공부는 어려웠다. 시험을 한 달 앞두고 위에 일이 터졌다. 시어머니가 주는 고통, 남편에 대한 배신감 때문에 공부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하루에 4시간씩 걸으며 화을 다스리며 더 열심히 공부했다. '내가 목표한 것을 반드시 이루어서 당신들이 나에게 한 짓을 후회하게 하리라! 내가 지금의 힘듦을 핑게로 공부를 포기한다면 최고의 바보다!' 매일 나에게 되새김질하며 눈에 불을 켜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나는 시험에 붙었고 부동산투자자로 한 뼘 성장했다
내가 시험에 붙자 가장 만세를 부른 것은 남편이었고, 지금은 관계가 편안해진 시어머니는 주변에 며느리 자랑을 하고 다니신다. 나를 인정하게 만드는 것이 최고의 복수가 아닐까?
힘들 때마다 나를 한 뼘씩 성장시킨 것은 "복수의 힘" 이었다
내가 어릴 때 서교동은 부자 동네였다. 가난했던 우리는 다른 사람이 준 옷을 물려입거나, 엄마가 동대문 시장을 돌며 구제옷을 사오셨다. 조금만 신으면 찍찍 벗겨지는 짜가 비닐운동화를 신고 예쁜 옷을 입지 못하는 나는 늘 어깨를 움추리고 기가 죽어 살았다. 찢어진 운동화를 누가 볼까봐 머리를 푹 숙이고 다녔다. 그런 날들이었지만 참으로 신기하게도 내 안에서는 "나는 부자로 살거야!" 라는 믿음? 같은 것이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 직장을 다니고, 프리랜서로 독립하고, 디자인 회사 대표가 되고, 전업투자자가 되고, 작가가 되고, 강사가 되고, 지금은 초보 투자자들에게 스승님이라는 소리를 듣게 되기까지....나는 어떻게 그 힘겨운 시간들을 버티고 견뎌냈을까?
지난 날을 돌아보니 "복수의 힘" 이었다. 가난하다는 이유로, 공부 못한다는 이유로 무시하고 왕따를 했던 그 애들보다 잘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목표였다. 지칠 때마다 힘겨울 때마다 어린 날의 그 때를 떠올렸고, 나를 무시했던 사람들을 생각했다. "내가 너희들보다 잘 살리라!" 나는 눈에 '불을 켠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안다. '주먹을 불끈쥔다'는 느낌을 너무도 잘 안다. 내가 그렇게 힘을 냈기 때문이다
확실한 것은 지금 나는 그들보다 잘 산다
아....나를 성장시킨 것은 "나를 무시하고 괴롭힌 사람들" 이었구나
"복수"를 떠나 보내며....
"복수" 덕분에 여기까지 왔지만, 나이가 드니 "복수는 나의 힘?" 웃음이 나온다
오랫동안 눈과 주먹에 힘을 주고 살았다. 이제는 힘을 주는 것이 지친다
앞으로의 삶은 "복수" 를 품기보다...'그럴 수 있지' '애쓴다' 이렇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고 싶다. 올해 나에게 가스라이팅을 한 그 친구도 어떻게든 잘 살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보인다. "복수" 를 떠나보낼 때가 된 것 같다.
이 글은 이제까지 내 곁에서 나에게 큰 힘을 주었던 "복수"에게 감사의 마음으로 썼다
마음 속에 묵직하게 자리 잡고 앉아 흔들리는 나를 붙잡아주었고, 힘이 없어 무너지고 싶을 때마다 내 손을 잡아 주먹을 쥐게 만들어줬던 나의 복수야, 나를 키워주서 고마워.... 네가 있어 힘겨운 날들이 견딜만했다. 고맙고 또 고맙다. 이제 나를 떠나.....지금 주저앉아 힘겨운 그 누군가를 찾아가 그들에게 다시 일어날 힘을 주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