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나의 달력은 요일이 아니라 목적지로 채워진다

by 구름 위 연필

나에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오늘이 무슨 요일이야? "이다.


승무원인 나의 달력은 일반 직장인들의 책상 위 달력과는 완전히 다른 리듬으로 움직인다.

그들의 달력에는 월요일, 금요일이 있다면 나의 달력에는 뉴욕 가는 날, 런던 레이오버, 파리 데이오프가 찍혀있다.

사실 나는 요일 감각을 상실한 지 오래다. 몸이 기억하는 것은 요일이 아니라 오직 목적지뿐이다.


새벽 6시, LA-ICN(인천) 도착

방금까지 느끼던 LA의 느끼함을 털어내려니 문득 얼큰하고 매콤한 것이 당긴다.

순진한 착각에 설레는 마음으로 친구들에게 톡을 남겨본다.


채령: "나 랜딩! LA에서 빵만 먹었더니 마라탕 땡긴다ㅠㅠ 점심에 마라탕 먹으러 가자!

꿔바로우도! 12시에 만날까? "


잠시 후, 친구에게서 피로가 섞인 답장이 돌아온다.


친구: "마라탕? 야, 지금 수요일이야!

나 오늘 부장님이랑 점심 먹어야 돼. 나 지금 지옥철 타고 출근 중ㅠㅠ 너 퇴근한 거야? 나도 집에 가고 싶다."


그제야 현실이 스르륵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나의 뇌는 오늘이 일요일이라고 우기고 있지만 이곳은 누구보다 바쁘게 돌아가는 평일 하루였다.

이렇듯 나에게 요일은 그저 흐릿한 표식일 뿐이다.


이런 불규칙한 삶이 남기는 가장 큰 부작용은 세상과의 미묘한 '엇박자'다.

모두가 쉬는 시간에 쉬지 못하고, 모두가 일하는 시간에 홀로 멈춰 서 있는 그 고독은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는 여전히 혼란을 불러온다.


한 번은 한국에 돌아와 오랜만에 쇼핑몰에 갔다.

분명 내가 기억하는 시계는 화요일 아침이었다.

'평일 아침이니 한산하겠지' 생각하고 갔는데 그곳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어리둥절해서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토요일 오전 11시. 나의 정신은 아직 뉴욕의 화요일 아침에 갇혀 있었던 것이다.


나는 이처럼 사회적 리듬에서 완전히 벗어나 홀로 외딴섬처럼 존재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친구들과의 약속? 평범한 주말 저녁 약속을 잡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친구: "채령아, 이번 주 토요일 저녁 어때? 우리 드디어 다 모일 수 있을 것 같아!"


채령: "음 잠깐만, 스케줄 볼게. (나의 달력 확인)

나 그날 샌프란시스코 하늘 어딘가에 있을 예정이야.

혹시 그다음 주 금요일은 안 되겠지? "


대부분의 우정은 이 불규칙한 달력 앞에서 잠시 보류되거나 아니면 깊은 이해로 굳건해진다.

감사하게도 내 주변에는 내가 한국에 있는 날을 우선적으로 챙겨주는 좋은 사람들이 많다.


나의 삶은 매번 바뀌지만 캐리어 안에 담긴 나의 물건들(컵라면, 전기장판, 다리 마사지기…)은 항상 그 자리에 있다.

낯설지만 익숙한 호텔 방에 들어서 캐리어를 펼치고 이 물건들을 늘어놓는 행위 자체가 나만의 요일이자 안정감이다.


나의 달력은 요일 대신 목적지로 채워진다. 이 불규칙한 삶은 때로는 나를 고독하게 만들지만 내가 지구의 모든 경계를 넘나드는 특별한 존재라는 자부심을 준다.


오늘 나의 달력에 찍힌 목적지는 ICN(인천)이다.

그리고 HOME은 오늘이 토요일이든 수요일이든 상관없이 언제나 가장 따뜻하고 안정적인 목적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