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 때 연휴임을 감사해야 할까?
신 선생의 이번 주말은 금, 토, 일, 월요일로 이어지는, 무려 나흘간의 황금연휴입니다. 그동안 이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모릅니다. 특히 연휴 첫날인 금요일은 신 선생 학교만 쉬는 날이라서 아이들은 학교에 가야 하니, 아침에 아이들만 학교에 던져놓고 아내와 함께 좋아하는 브런치도 먹으러 가고, 식사 후에는 운동화 쇼핑도 할 생각에 지난주부터 잔뜩 들떠 있었습니다.
그동안 1000km 가까이 달려서 이제 수명을 다한 러닝슈즈를 새로 장만할 때가 되었습니다. 아, 새 운동화라니! 생각만 해도 너무 신나잖아요! 달리기 하는 사람한테 자신의 발에 딱 맞는 착용감과 자신의 달리기 스타일에 최적화된 쿠션기능을 가진 새 운동화가 주는 행복감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글 쓰는 사람이 자신의 손 크기에 딱 맞고, 키감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그런 딱 맞는 키보드를 만났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인생 마음대로 안됩디다. 갑자기 지난주 일요일부터 둘째가 열이 나며 감기 증상을 보이더군요. 하루가 지나고 나니 아빠가 슬슬 목이 간지럽기 시작하고, 또 하루가 지나니 깨질듯한 두통과 몸살과 오한이 겹쳐 학교를 이틀이나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쯤 해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주말이 다가오자 이제는 급기야 첫째와 엄마까지 고열과 기침에 쓰러지며 온 가족이 다 드러눕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계획대로라면 어제 아이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아내와 오랜만에 우아하게 브런치를 즐기고, 지난 몇 달간 눈독 들여왔던 운동화도 장만해서, 오늘 아침엔 이제 슬슬 끝물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밴쿠버의 가을길을 신나게 달리고 왔어야 하는데… 현실은 쌓인 설거지에 넘치는 휴지통, 굴러다니는 각종 약병에 사방에서 들려오는 기침소리와 함께 이번 학기의 마지막 황금연휴가 흘러갑니다.
가족 병동 나흘째, 아직도 열이 오르내리는 둘째를 제외하고 나머지 가족들은 빠르게 건강을 회복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월요일이 대체 공휴일이라 하루를 더 쉴 수 있으니 아이가 건강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되겠죠.
가끔 한 번씩 이렇게 감당할 만한 어려움을 겪는 것이 꼭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습니다. 특별할 것 없이 무탈하게 한 주를 보낸다는 것이 사실 매우 특별한 행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해 주니까요. 한동안 별 탈 없이 지내면서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기만 하던 (무탈은 기본에 추가로 이어지는 행운이 있어야만 겨우 느껴지던) 행복을 위한 기본 설정값을 현실에 맞게 재조정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합니다.
그동안 아프다는 핑계로 사흘째 씻지를 않아서 꼬질꼬질함이 절정에 달한 11살과 8살 형제가 지금 침대에 나란히 누워서, 연신 콜록대면서도 뭐가 그래 재밌는지 서로 키득거리고 있습니다. 아놔 이눔들… 귀에 넣어야 하는 체온계를 콧구멍에 넣고 체온을 재보겠다며 재밌다고 깔깔거리고 있네요. 장난치고 노는 걸 보니 이제 살만한가 봅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