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좀 하는 남자의 지독한 영어 열등감
어쩌다 보니 브런치에서 영어로 에세이는 자주 쓰고 있지만, 영어 자체나 영어학습에 대한 글은 쓰지 않습니다. 영어에 대한 나름 뚜렷한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특별한 노하우를 가지고 있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직업상 은근히 까탈스러워서 소위 유명 영어 강사들이 영어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들어봐도 공감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더욱 말조심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제 영어가 영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하하. 되게 웃기죠? 브런치라는 공간에서 굳이 영어로 에세이를 쓰는 것도 웃기고, 그러면서 다른 한편 이렇게 영어에 대한 열등감을 고백하는 것도 그렇고요.
영어로 쓰는 에세이에 대해서 불편한 시선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다행히(?) 브런치에서 많이 노출되는 인기작가가 아니다 보니, 아직은 이와 관련해서 곱지 않은 소리를 들은 적은 없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1999년, 만 나이 스물일곱에 캐나다로 이민 와서 그와 거의 비슷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영어 쓰는 나라에서 고등학교 교사를 하며 먹고살고 있으니, 제 영어가 그렇게 형편없다고는 할 수 없겠죠. 이민 초기때와는 달리 제가 말하는 것을 듣고 되묻는 사람들이 별로 없는 걸 보면, 발음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가 봅니다.
하지만 이 정도 영어를 구사하는 것이 제게는 결코 자랑이 아닙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하루 종일 만나는 사람들의 거의 대부분이 (사실은 전부가 ^^) 저보다 영어를 월등히 잘하는 사람들이다 보니, 도대체 이놈의 영어 열등감에서 평생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동료 교사들이 별로 수고하는 기색도 없이 휘리릭 뚝딱 만들어 내는 그 위트 있고 화려하고, 논리적이고 설득력 있으면서도, 때로는 마음에 깊은 울림을 주는 말과 글을 볼 때마다 저는 한없이 작아집니다. 마치 강남에서 자라던 어린 시절, 대한민국 전체를 놓고 보면 결코 가난하다고 할 수 없는 집안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 빈곤감에 늘 움츠려 들었던 제 모습과 비슷합니다.
영어, 정말 잘하고 싶습니다.
우리 학교에서는 매년 은퇴를 하거나 다른 학교로 떠나는 동료 교사들을 위해서 송사와 답사를 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동안 가끔 이렇게 송사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기겁을 하며 도망치곤 했는데요, 사실 속으로는 무척 창피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십여 년 후 제가 은퇴할 때는 저도 더 이상 피할 수 없잖아요. 그때쯤에는 저도 멋진 고별사를 쓸 수 있고, 스티브 잡스나 코난 오브라이언처럼 청중을 사로잡으며 낭독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스티브 잡스? 코난 오브라이언? 우리 신 선생이 드디어 미쳤나 봐요. 으하하! 차라리 오타니 같이 야구하고, 손흥민처럼 공 차고 싶다고 하지 그래.
하지만, 아… 상상만 해도 정말 짜릿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