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Flying Pie Mar 24. 2024

영어는 도구인가, 치명적인 매력인가

아님 벼슬인가?

한국 예능 프로그램들을 보다 보면 새삼 의아하게 느껴지는 장면들이 종종 있습니다. 진행자가 해외유학파나 동포 출신의 게스트를 모셔놓고 영어로 말하기를 부탁하는 것 말입니다. 옆에 영어권 출신 외국인 보조 진행자라도 있으면, 소위 말하는 “프리토킹”을 시켜놓고선 호들갑스럽게 감탄하면서 띄워주는 모습을 종종 봅니다. 또 해외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에서는 영어를 잘하는 멤버를 꼭 한두 명 데리고 가서, 그들이 현지 외국인들과 능숙하게 소통하는 모습을 아주 근사하게 담아내는 것도 꽤 흔한 장면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유창한 영어로 매력을 발산하는 건 이제 너무 많이 써먹은 진부한 클리셰이기도 합니다.  


몇 년 전 영화 ”미나리“의 성공으로 배우 윤여정 씨가 해외의 유명 시상식이나 토크쇼에 출연해서, 멋지게 영어로 소통하는 모습을 저를 포함한 많은 한국인들이 흐뭇하고 자랑스럽게 바라봤던 기억이 납니다. 물론 발음이 좀 투박하고 표현이 살짝 어색하기도 했지만, 1947년생인 그녀의 나이를 고려해서인지 그것을 지적하는 사람들은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대성공으로 이십 대의 젊은 배우 정호연 씨가 해외에 나가 여러 곳에서 인터뷰를 하니,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호평 일색이었지만, 그녀의 살짝 부족한 영어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등장하더군요. 심지어 “보는 내가 다 창피하다!”라는 댓글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들이 왜 그렇게까지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왠지 알 것 같으면서도 여전히 의아했습니다.  

https://images.app.goo.gl/aK514hGp3RS8toX8A
한국인들에게 영어란 과연 뭘까요?

한국에서 영어를 잘해서 부러움을 사는 사람이, 다른 많은 유용한 능력들을 두고, 예를 들어 컴퓨터 프로그래밍 지식이 없다며 부끄러워하는 것은 별로 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어가 아닌 다른 뛰어난 능력으로 큰 성공을 이룬 사람들은 종종 스스로 영어를 잘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며, 때로는 부끄러워하기까지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커리어에 영어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더라도 말입니다.


영어를 그저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기 위해 필요한 도구로서만 바라보기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다른 무언가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영어 말고도 도구로서 유용한 다른 많은 능력들이 누리지 못하는 특별한 지위를 영어는 가지고 있으니까요. 한국 사회에서 영어를 잘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그 사람을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 하고, 선망하게 하고, 좀 더 비약하자면 은연중에 그 사람의 신분(?)마저 드러낸다고 하면 너무 지나친 생각일까요?


대체 영어가 뭐길래…

https://images.app.goo.gl/1t1ocURWErzugkqU7

제가 남학교에서 근무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캐나다 사람들은 스포츠에 정말 진심입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아마 미국도 마찬가지겠죠. 물론 한국의 사교육 열기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이곳 부모들도 자녀들의 스포츠에 무척 정성을 들이며, 많은 비용을 기꺼이 지불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조금이라도 자녀들의 공부에 방해가 되면 운동부터 그만두게 하는 아시아권 부모들과 많이 대비가 됩니다. 이것은 나이 서른 다 되어서 캐나다에 이민을 온 저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현상이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운동선수를 시킬 것도 아닌데, 학교 공부에 지장이 생겨도 운동만큼은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궁금했었습니다. 물론 성장기에 하는 운동의 장점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공감하겠지요, 그리고 북미에서 운동을 잘하면 꼭 프로선수가 되지 않더라도 이와 관련해서 다양한 좋은 직업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운동을 잘한다는 것이 가지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북미 사람들이 스포츠를 대하는 모습은 어쩌면 한국사람들이 영어를 대하는 것과 닮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운동을 잘하는 것 그 자체로 벼슬이고, 대단한 매력이고, 선망의 대상이 되니까요. 스포츠를 잘하는 아이들의 그 자신감 넘치는 모습과, 아무리 공부를 잘하고 다른 재능이 뛰어나도 운동을 못하는 아이들의 왠지 소심하고 주눅 들어 있는 듯한 모습을 보면 말입니다. 재미있지 않습니까? 대체 운동이 뭐길래…


Source: Pixabay
매거진의 이전글 오십여 가지의 눈(snow)이라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