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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ying Pie Feb 11. 2024

오십여 가지의 눈(snow)이라니!

https://www.magzter.com/stories/science/WIRED/MARGARET-ATWOOD-OPTIMIST

에스키모(*)들은 눈을 표현하는 말이 쉰두 개나 있답니다. 눈이 그들에게 중요하기 때문이죠. 사랑을 칭하는 단어도 그 정도로 많아야 합니다. — 마가렛 애트우드


부커상 수상자인 캐나다의 작가 마가렛 애트우드의 1972년작 소설 Surfacing에 나온 이후 널리 알려지게 된 인용구입니다. 세상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랑이 필요하며, 사랑에 대한 더 다양하고 섬세한 표현들이 필요하다는 말이겠죠. 깊이 공감합니다.


하지만 이누이트 사람들이 눈에 대한 표현을 52개나 가지고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 합니다. 위키피디아에 따르면, 이 잘못 알려진 사실은 20세기 초반 미국의 인류학자 Franz Boas의 저서에서 유래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후 캐나다의 언어학자 Lucien Schneider가 1985년 저술한 극지역 원주민들의 언어 사전에는, 다양한 상태의 눈과 얼음을 지칭하는 표현들이 스물두 가지 정도 나열되어 있다고 합니다. 몇 가지 예를 들자면 내리고 있는 눈, 땅 위에 내린 눈, 얼음 같은 눈, 식수로 사용하는 눈, 얼음을 총칭하는 단어, 바닷가의 슬러쉬 상태의 얼음 등, 뭐 이런 식입니다. 물론 잘못 알려진 52라는 수에는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스물두 개가 넘는 표현이라니,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말은 어떨까요? 물론 최근엔 잘 쓰이지 않는 표현들이 대부분이고, 이누이트들의 스물두 개에는 못 미치지만, 우리말에도 눈에 대한 표현이 열 개 정도나 있더군요: 가루눈, 싸라기눈(싸락눈), 진눈깨비, 소낙눈, 함박눈, 습설, 자국눈, 잣눈, 마른눈 등등.


그렇다면 우리말에 사랑을 뜻하는 낱말은 몇 개나 될까요? 사랑, 애정, 연모, 애착, 흠모, 사모, 애모, 은애, 애열, 첫사랑, 청연, 가연, 다솜, 연리지, 오매불망, 일편단심…  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데요? 내친김에 영어 사전을 검색하니  LOVE와 관련한 단어가 12개 정도 뜹니다. 마가렛 작가님, 이 정도면 사랑 표현에 대한 단어걱정은 안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만… 하하.


갑자기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과연 그렇다면 우리말에 부동산에 대한 표현들은 얼마나 많이 있을까요? 아이고, 대충 봐도 참 많기도 합니다: 용적률, 건폐율, 공시지가, 기준시가, 보존등기, 본등기, 소유권이전등기, 말소등기, 담보권, 저당권, 지상권, 가압류, 가처분, 재건축, 재개발, 주택담보대출비율, 총부채상환비율, 총체적 상환능력비율, 다가구, 다세대, 전용면적, 공용면적, 서비스면적, 공급면적, 계약면적, 지분등기, 구분등기, 등기필증, 임대인, 임차인, 전대차, 청약, 근저당… 그, 그만!

부동산이 우리 사회에서 중요하긴 한가봐요. 하하.


(*) 에스키모: Snowshoe-netter(눈신을 만들어 신는 사람?)라는 뜻을 가진 ‘에스키모’라는 표현은 차별적이고 왜곡된 의미가 있다 하여 최근에는 쓰이지 않습니다. 마치 일제 강점기 때 조선인을 뜻하는

“조센징”이란 단어가 오랜 식민지배를 지나며 멸시와 차별의 말이 된 것과 비슷하다 할 수 있겠죠. 따라서 캐나다에서는 극지방에 사는 원주민들이 선호하는, 그들의 언어로 ‘사람들’이라는 의미를 가지는 이누이트 (Inuit)라는 표현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아내가 묻습니다.

“여보, 그래서 이 글의 포인트가 뭐야? 오빠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어.“

“그러게, 내가 봐도 잘 모르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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