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아름다운 월드클래스(?) 도심 공원
아침 6시, 오늘도 달리기 하러 집을 나섭니다. 3주간의 한국방문을 마치고 지난주 목요일에 밴쿠버로 돌아온 이후 일주일째 거의 매일 달리고 있습니다. 이는 빠른 시차적응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여름마다 한국에만 다녀오면 여러 가지 이유로 심경이 복잡해져서 달리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오늘따라 잔뜩 흐린 하늘이 조금 아쉽지만 가시거리 29km에 달하는 깨끗한 공기와 기분 좋게 불어오는 바람이 상쾌합니다. 살짝 한기가 느껴지는 13°C의 기온과 58%의 쾌적한 습도에 왠지 평소에 달리던 동네길 말고 오랜만에 Stanley Park의 Seawall을 달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습니다. 뭐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다운타운으로 향하는 버스에 올라탑니다. 방학이기에 부릴 수 있는 여유입니다.
꽤 이른 시간임에도 버스 안에는 저마다 바쁘게 일터로 향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습니다. 그런 그들의 모습과 그저 동네 한 바퀴 뛸 생각에 눈곱도 안 떼고 양치질도 안 하고, 민망할 정도로 짧은 반바지에 알록달록 요란한 색상의 양말을 신고서 이렇게 혼자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어색하게 서있는 신 선생의 모습이 대비되어 재미있게 느껴집니다.
집을 나선 지 30여 분 후, 드디어 출발지인 캐나다 플레이스에 도착합니다. 산과 바다와 도시가 어우러져 시원하게 펼쳐진 장관에 마음이 설레고 급해져서 하는 둥 마는 둥 급하게 대충 몸을 풀고서, 스탠리 파크를 향해 해안가 서쪽으로 달리기 시작합니다. 밴쿠버의 워터프런트에서 Seawall 둘레길을 따라 스탠리 파크의 잉글리시 베이까지 이어지는 12km의 산책로는 수려한 경관으로 유명하며, 매년 5월 이 길을 따라 밴쿠버 유일의 풀코스 마라톤 대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Sealwall을 달린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전일테니 아마 5년도 더 된 것 같습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팔순이 넘은 연세에도 홀로 씩씩하게 잘 지내고 계신 어머니를 생각합니다. 언제나 넉넉한 마음으로 따뜻하게 맞아주시는 장인장모님과 처제도 생각납니다. 밴쿠버에 홀로 남아 독박육아를 하느라 고생이 많았던 아내와 아이들, 그리고 각자 바쁜 일정에도 매번 시간을 내서 함께 여행을 가주었던 오랜 친구들을 하나하나 떠올립니다. 그러다 보면 감사와 행복, 걱정과 고민, 그리움과 연민 등이 마구 뒤섞인,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여러 감정들이 차올라서 실없이 웃기도 하고, 또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내일은 아버지의 46주기 기일입니다. 황망하게 남편을 보낸 지 거의 50년이 다 되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오늘따라 마음이 허전하시다며 "엄마 마음 지치지 않게" 멀리 사는 아들과 딸에게 기도를 부탁하십니다. 평소에 이런 부탁을 하시는 분이 아니기에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염치없지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께 어머니를 위해 잠시 마음속으로 위로와 축복의 기도를 해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