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돌아온 지 일주일, 이제 시차 적응이 다 되었는지 더 이상 오후에 머리가 멍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책을 집어들 수가 있었습니다. 오랜만에 하는 독서가 참 신나고 즐겁습니다. 지난 몇 주간 한국에 머물며 하루에 몇 시간씩 책을 읽을 때는 이 정도로 즐겁지는 않았습니다. 같은 책이었는데 말이죠.
며칠 전 브런치에서 알림을 받았습니다. 한 보름 쉬었더니 글 좀 쓰랍니다. 그러면서 "글쓰기는 운동과 같아서 매일 한 문장이라도 쓰는 근육을 기르는 게 중요"하답니다. 어휴... 미안합니다만 제게 있어서 무언가를 매일 해야만 하는 것은 생업으로 족합니다. 네, 저도 가끔 발동이 걸리면 한동안 매일 글을 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미리 정해놓고 일하듯 수련하듯 쓰는 건 원치 않습니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브런치에서 좋아하는 작가님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멋진 글들도, 비슷한 주제와 형식의 것들을 지속적으로 매일 접하다 보면, 어느 순간 다 비슷비슷해 보이면서 그 작가님의 글을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으니까요.
그저께부터 냉장고를 열 때마다 맥주가 자꾸 유혹합니다만 애써 외면하며 참고 있습니다. 이틀만 더 참았다가 주말에 좋은 이웃들과 함께 더 맛있게 마실 겁니다. 제게 있어서 가장 맛있는 맥주는 뭐니 뭐니 해도 한동안 꾹 참고 안 마시다가 배고프고 목마를 때를 기다려 벌컥벌컥 마시는 맥주입니다.
나름 오랫동안 간헐적 단식을 지켜오고 있습니다. 물론 몸관리 차원에서 하는 것이지만, 16시간 단식 후 허기질 때 먹는 첫 끼니가 맛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배가 고프면 찬밥에 김만 싸 먹어도 맛있고, 삶은 달걀에 샐러드만 만들어 먹어도 참 맛있습니다.
오늘은 달리기를 쉬었습니다. 내일도 쉴 예정입니다. 어제 13km가 넘는 장거리를 달려서 살짝 피곤한 탓도 있지만, 지난 일주일간 거의 매일 달렸더니 좀 질렸기 때문입니다. 달리기도 바쁜 주중에 꾹 참았다가 주말 아침에 봇물 터지듯 하는 달리기가 제일 맛있습니다(?).
다음 주면 일본에서 누나네 가족이 옵니다. 작년에 한국에서 잠깐 만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두 가족이 다 같이 함께 지내보기는 지난 2018년 이후 처음입니다. 한국보다 더 덥고 습한 일본의 여름에 지친 누나네 가족이, 아침기온 12-15°C 의 시원한 캐나다 동생네서 잘 쉬면서 몸과 마음의 원기를 회복하기를 바랍니다. 어머니와 누나네를 자주 보지 못하는 것이 매우 안타깝지만, 어쩌면 우리 가족이 이렇게 서로 애틋한 이유는 모두 뿔뿔이 다른 나라에 멀리 떨어져 살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의 뇌는 늘 한결같은 것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거나, 아예 인지하지도 못하도록 진화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우리가 얼굴에 불어오는 초속 5 m/s도 안 되는 미풍은 느끼면서도, 지금 이 순간 지구와 함께 총알보다 30여 배나 빠른 107,000 km/h의 무시무시한 속도로 태양 주위를 공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죠. 일상의 감사함과 가족의 소중함도 다 마찬가지이겠지요. 그리고 어쩌면 이것이, 굳이 어떤 거창한 가치나 목적을 생각할 것도 없이, 그저 단지 즐거움과 행복을 위해서라도 우리 삶에 때로 결핍과 절제가 꼭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