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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29. 2016

청순하거나 도도하거나

29 - 존 래버리

존 래버리, 미스 오러스, 빨간 책,  1890

  제목에 빨간 책이 들어가 있어서 처음에는 엉뚱한 상상도 하게 되지만, 그림의 주인공은 청초하기만 하다. 목까지 올라오는 연분홍색 원피스가 오히려 다부진 내면을 보여준다. 옷에 직조된 은색 라인에 힘입어 화사한 이미지도 얼굴에 비치지만, 전체적으로는 윤곽선의 날카로움 때문에 차가운 지성미를 가진 도도함이 느껴진다. 한 손에 들고 있는 빨간 책 표지와 마주하고 있는 입술의 붉은 색이 화면 전체에서 돋아져 보인다. 독서로 더욱 다듬어진 그녀의 단심(丹心)은 누가 차지했을까.


  존 래버리(John Lavery: 1856–1941)는 아일랜드 벨페스트 태생의 영국 화가로 초상화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윈스턴 처칠의 초상화도 있다.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의고 여기저기 떠돌다 글래스고우에 정착하여, 그곳의 할데인미술학교 야간반에 들어갔다. 이후 런던과 파리 줄리앙 아카데미에서 수학하였다. 영국으로 다시 돌아와서는 몇몇 화가들과 같이 “글래스고우 보이즈”(Glasgow Boys)로 활동하여 일정 부분 성공한 다음 바로 런던으로 자리를 옮겼다. 런던에서 뛰어난 초상화가로 널리 알려지면서 기반을 잡았다. 그의 아내인 헤이젤 마틴(Hazel Martyn) 역시 뛰어난 미모로 사교계에서 인기를 얻었으며, 화가로서 아마추어 화가 지망생이었던 처칠에게 그림을 가르치기도 하였다. 아일랜드 독립운동에 열정적으로 관여하였으며, 나중에 그녀의 초상화가 아일랜드 지폐에 들어가기도 하였다. 존 래버리의 그림에는 인물화가 다수를 차지하지만, 1차 세계대전 때 종군화가로도 활동한 관계로 당시의 전함이나 비행기, 비행선, 함장이나 제독, 군인병동, 군수공장 등을 그린 그림들도 눈에 띈다. 1918년 기사작위를 받았으며, 1941년 84세로 카운티 킬케니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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