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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Apr 30. 2016

기다림

30- 헨리 베이컨

헨리 베이컨, 처음으로 보는 육지, 73 x 50.5 cm, 1877

  황급히 의자에서 일어서는 여인의 한 손에 담요가 쥐어져 있고 그 한 켠으로는 책 한 권이 떨어져 있다. 바다 바람이 차가웠는지 담요를 덮고서 책을 읽던 중이었나 보다.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보던 책을 내던지고 자리를 박차게 했을까? 배 난간에 기대어 있는 두 남녀에게 그 실마리가 있다. 여자가 보는 망원경으로 육지가 잡혔다. 아마도 그녀는 육지가 보인다고 소란을 떨었을 것이고, 그 소리에 책을 보던 여인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역경만 힘든 것이 아니라, 무료한 권태도 힘들기는 매한가지이다. 가도 가도 끝없는 망망대해. 언제나 목적지에 도착할는지. 말벗도 없이 혼자 하는 여행이라 적적하기 그지없다. 그럴 때 한 권의 책은 또 얼마나 위안이 되는가. 읽고 또 읽어 책장이며 책 표지가 구겨지고 접혀져 있다. 그래도 육지가 보인다는 말 한 마디에 바로 내팽개칠 줄이야.


  헨리 베이컨(Henry Bacon: 1839~1912)은 미국 메사추세츠 주 출신으로 여행을 좋아하여 대서양을 오가는 여객선의 풍광을 많이 그렸다. 1870년대 당시 젊은 여인들 가운데 여유있는 층에서는 교육이나 결혼 준비를 위한 방편으로 유럽 여행을 많이 하였다.


우리네 인생 항해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때로 폭풍우를 만나기도 하고, 잔잔해진 파도위로 노을지는 수평선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순간도 있을 것이다. 뜻하지 않은 곳에서 난파되거나 좌초되지 않고 다들 목적했던 곳에 도착했으면 싶다. 그런데 아는가. 마지막 닻을 내리는 곳이 목적지이고, 다시 출발하면 기항지가 되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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