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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y 02. 2016

도시 풍광으로서 책읽기

31-에두아르 마네

에두아르 마네, 철도(생라자르역), 1872-1873, 워싱톤 국립미술관

   파리의 생라자르 역 근처에 주거지나 화실을 마련한 인상주의 화가들이 많아 이 기차역을 그린 그림들이 많다. 마네의 경우도 1872년 파리 북서부의 생라자르 역 근처에 자신의 새 화실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 역을 배경으로 <철도>를 그려, 1874년 살롱전에 출품하였다.

  하지만 비평가나 관람자들은 제목은 철도지만 연기만 보일 뿐 기차도 보이지 않아 그 주제도 이해할 수 없고, 구도도 말이 안되고 그림 솜씨마저 스케치 수준이라고 악평을 퍼부었다. 심지어 일부에서는 마네의 <철도>를 풍자한 만평을 통해 철도역의 난간 창살을 빗대어 화가가 대중을 존중하지 않은 죄로 감옥에 갇혀 있다는 식으로 비꼬며 조소를 보냈다.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마네의 <철도>가 표상하고 있는 근대의 상징을 인식하였다. 철도의 도입과 확장으로 이동 속도의 단축이라는 근대적 시간 감각을 확보하게 되고, 동시에 공간의 확장과 압축도 가능해졌다. 이는 결과적으로 근대 도시 생활에서 여가 시간의 확대와 도시 근교로까지 여가생활 공간의 확장을 가져왔다. 철도와 기차역은 바로 이를 대변해 주는 구체적인 상징물이다.

  그림에서는 젊은 여인이 아이와 함께 시내 산책을 나왔다가 기차가 내뿜는 증기가 뿌옇게 내려다 보이는 역 근처의 거리 벤치에서 다리쉼을 하고 있다. 그럴 때를 대비해 미리 준비한 책을 펼쳐 들고서 읽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전면을 바라다 보고 있는 모습이다. 예전만 하더라도 이처럼 어디 바깥 나들이를 하게 되면 책 한 권씩은 들고 다녔었다. 잠시라도 짜투리 시간이 나면 읽을 요량으로 말이다. 요새는 휴대폰이 그런 책의 기능을 대체해 버려서 점점 보기 힘들어지는 풍경이긴 하지만, 당시만 해도 도시의 일상이었나 보다. 마네는 이처럼 근대 도시 파리의 한 단편을 포착해 내고 있다.

  그림 오른쪽 상단에 역 건너편으로 흐릿하게 보이는 유리창 건물은 바로 마네의 화실이 있는 건물이다. 마치 야외 작업을 하고 있는 화가 자신의 모습을 내밀하게 자축이라도 하듯이 자신의 화실을 화폭에 살짝 그려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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