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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y 05. 2016

부재

56-#04-에드워드 호퍼

에드워드 호퍼, 바다에 면한 방, 1951, 캔버스에 유채,   73.6 x 101.9 cm, 개인소장

 방에 햇살이 가득 들어온다. 열어 놓은 문을 통해서. 왼쪽 뒤로 보이는 다른 방으로도 창문에 들친 햇빛이 들어오고 있다. 문밖으로는 푸른 바다가 바로 맞닿아 있다. 조금은 비현실적이다. 사람은 없다. 빈  방의 햇빛이 주인공이다.


<바다에 면한 방>은 트루로에 있는 호퍼의 스튜디오 앞문에서 바라본 풍경을 그린 것이다. 당초에는 문밖에 계단이 있었지만 계단을 없애고 문앞까지 올라오는 것 같은 수평선을 바다 위에 그렸다. 이로써 그림은 집의 콘크리트  현실을 벗어났다. 대상의 단순한 재현이  아닌 화가가 인식한 것을 보여주는 표현이 된 것이다.


이 주제는 10 여년 뒤에 다시 반복된다. <빈 방의 햇빛>이 그것이다. 이 그림은 호퍼가 81세 때인 1963년에 제작되었다.


에드워드 호퍼, 빈 방의 햇빛, 1963, 캔버스에 유채, 101.6×152.4cm, 개인소장

빈 방에 창문으로 들어온 햇빛이 벽의 굴곡에 따라 두 개의 상을 만들고 있다. 하나는 중앙에 튀어나온 벽모서리에 크고 밝은 빛 기둥이고, 다른 하나는 모서리 너머 그림자를 지나 구석으로 난 작은 빛기둥이다. 이 둘은 벽의 어두운 그늘을 배경으로 두드러진 형상으로 벽을 타고 내려와 바닥의 빛과 합쳐진다. 창문 밖은 녹색의 덤불이 보인다. 역시 사람은 없다.


호퍼는 오랫동안 빈 방을 궁금해 했었다. 학창시절에도  다른 사람들이 아무도 보지 않고 들여다 보지 않을 때 방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친구들과 함께 토론하기도 했다. 그는 말년에  이르러 이를 완벽하게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어느 평론가는 이 두 그림에서 공히 나타나는 이항의 대조를 지적한다. 즉, 빈 방으로 대변되는 문명과 문 밖 바다  혹은  창문 밖 덤불이  상징하는 자연의 대조가 그것이다. 이를 받아들인다면 소멸의 운명을 갖는 짧은 시간대의 인위와 영속하는 긴 시간대의 자연이 햇빛을 매개로 서로 교차하고 있는 셈이다. 거기에서 인간의 시간은 더욱  짧은 시간대의  순간이다.


호퍼도 이를 깨달았던 것 같다. 애초에 스케치를 할 때 그려 넣었던 인물을 본 작품에서는 빼 놓았다.

 누군가 이 그림에서 무엇을 추구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가 답하였다. " 나는 나를  추구한다"


가끔 생각해 본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나고 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이제 답을 알 것 같기도 하다. 빈 방에 이렇게 햇빛이 가득 들 것이다. 창밖으로 푸른 바다 한 점, 초록 덤불 하나 바람에 하늘거릴 것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되었다.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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