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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y 09. 2016

투영

57-#05- 뭉크

에드바르 뭉크, 창가에서, 1942, 캔버스에 유채, 95 x 110cm, 오슬로 시립미술관(뭉크미술관)

 창은 때로 존재를 투영시킨다. 하지만 거울처럼 정면에서 담아내기보다 배경으로 은근하게 드러낸다. 대표적인 것이 뭉크의 자화상이다.


뭉크에게 그림은 그의 인생에 대한 심리학적 드라마라 할 수 있다. 그에게 그림은 엄격한 자기점검이자 자기정의의 수단이었다.  그는 평생 70여점 이상의 자화상 그림과 함께 자신을 그린 드로잉과 스케치 들을 남겼다. 최초의 자화상은 19살 때인 1882년에 그린 것으로 세련되고 자신만만한 젊은이의 모습을 그렸다. 이후 그의 자화상은 자신의 상황을 투영시키는 심리적 바로미터가 되었다.


<창가에서>에서는 뭉크 나이 79세인 1942년에 제작된 것이다. 머리는 빠지고 입꼬리를 아래로 꼭 다문 모습에서 늙은이의 고집스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그럼에도 얼굴의 붉은 채색이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은 열망의 잔재를 보여준다. 창밖의 겨울 나무들이 잎을 떨군 채 눈을 이고 있다. 차갑고 황량한 소멸의 계절이다. 


비슷한 정경의 자화상을 이미 10여 년전에도 그린 바 있다. <유리 베란다에서의 자화상>이 그것이다.


에드바르 뭉크, 유리 베란다에서의 자화상, 1930-1933, 캔버스에 유채, 45 x 55cm, 뭉크미술관

 <유리 베란다에서의 자화상>은 버전이 둘이다. 하나는 캔버스에 유채로, 다른 하나는 나무 판넬에 크레용과 유채로 그린 것이다. 각각 인물의 위치가  화면 중앙과  우측 구석에 위치한다. 둘 다 <창가에서>에서 보다 인물의 표정은 더 침울하다. 하지만 입꼬리를 아래로 앙다문 모습은 여전하다. 유리베란다 뒤로는 마찬가지로 앙상한 겨울나무가 눈속에 서 있다. 이 그림들은 오슬로 근처 에켈리에서 지내면서 비슷한 시기에 그린 것들이다.

에드바르 뭉크, 유리 베란다에서의 자화상, 1930-1933, 판넬에 유채, 45 x 55 cm, 뭉크미술관

육체가 쇠잔해지면 마음의 풍경도 이처럼 스산하고  황량해진다. 몸과 마음이 다 병들면 존재의 풍광은 암울하다 못해 괴기스러워지기까지 한다. 다시 이때보다 10여년 전으로 더 되돌아가, 그때 그린 <밤의 방랑자>가 딱 그러하다.


에드바르 뭉크, 밤의 방랑자, 1923-1924, 캔버스에 유채, 68 x 90 cm, 뭉크미술관

아직은 머리카락은 많이 남아있다. 하지만 얼굴의 윤곽은 뚜럿해도 눈동자는 움푹 패인 채 까만 어둠 속에 함몰되어 있다. 어둠 속에서 바라보는 것은 어둠밖에 보이지 않는다. 몸 전체가 역광으로 짙은 어둠에 싸여있다. 마루 바닥조차 깊은 심연이다.  앞에 의자와 책상이 보이고 그 위로 책더미가 어지러이 놓여 있다. 하지만 차분히 앉아 성찰할 수 없어 혼돈 속에서 배회하는 모습이다. 창밖의 어둠은 오히려 명징하게  푸른 빛이다. 그는 혼돈 속에서 나가는 길인가, 아니면 들어오는 길인가.


반대로 아직 생기와 활력이 남아있다면 비록 병상에 있더라도 분위기 자체가 달라진다. 다시 15년 전쯤에 그린  자화상을 한번 보자.

에드바르 뭉크, 야콥센 교수의 병원에서의 자화상, 1909,  캔버스에 유채, 110 x 100 cm, 라스무스 메이어 콜렉션

1908년 12월 코펜하겐에서 뭉크는 신경쇠약으로 다니엘 야콥센 교수의 병원에 입원하였다. 이때가  이른바 그의 정신병 발현 시기이다. 과로와 과음을 거쳐 심신쇠약으로 이어진 그의 정신병은 그의 정신을 망가뜨렸다. 그곳에서 그는 8개월 동안 전기충격과 마사지 처치를 비롯 치료를 받았다. 어느 정도 병세가 회복된 이후 그는 고국인 노르웨이로 돌아갔다. 그는 새로 얻은 기운과 새로운 비전으로 불안감을 극복하고 다시 작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즈음에 그려진 그림 중 하나가 <야콥센 교수의 병원에서의 자화상>(1909)이다. 나름의 자기반성과 앞으로의 각오가 다부진 얼굴 표정에서 묻어 나온다. 붓놀림도 확고하고 단호하다. 등 뒤의 창으로는 백색의 환한 햇빛이 강렬하다. 새로운 희망이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 본 자화상에서 드러나는 뭉크의 심리학적 드라마는 정신적 방황이나 좌절, 심신의 피폐함, 쇠락하는 육신 속에서 때로 절규하고 때로 각오를 다지는 화가 자신의 심리적 파노라마를 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 한때 술에 탐닉하여 현실로부터 도망치기도 하였지만 끝내 자기 자신과의 대면을 피하지는 않았다. 가식없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 일련의 그의 자화상은  삶의 진정한 용기가 무엇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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