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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y 14. 2016

좌표, 내가 가야 할

58-#06- 에드바르 뭉크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22, 캔버스에 유채, 120.5×100 cm, 뭉크미술관


밤길을 갈 때 밤하늘의 별은 하나의 좌표가 된다. 지도가 없을 때에도 별을 보고 위치와 방향을 잡아 행로를 정해 나아갔다.  멀리 있는 불빛 역시 방향을 가늠하는 데 도움을 준다. 어둠 속에서 저멀리서 빛나는 불빛은 대개 불켜진 창문을 통해 나오는 것들이다. 특히 날이 흐려 별이 뜨지 않는 날 칠흑같은 어둠 속에서 깜박이는 불빛은 외로운 밤길에 좋은 길잡이가 된다.


별이 빛나는 밤은 그 자체로 황홀한 경험이다. 인공 조명이 전혀 없는 궁벽한 시골에서 말그대로 별이 쏟이지는 것을 한번쯤 경험해 보면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된다.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단연 고흐를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이보다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지만 뭉크의 것도 이에 못지 않다.


뭉크의 <별이 빛나는 밤>은 여러 버전이 있다. 우선 가장 처음에 그린 것으로 1893년 작이 있다. 이 작품은 오슬로 남쪽의 작은 바닷가 휴양지인 오스가르스트란의 작은 해안가 밤풍경을 그린 것이다. 이곳은 1880년대 후반 이후로 뭉크가 매 여름을 보내던 곳이다.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893, 캔버스에 유채, 135.6 × 140 cm, 폴게티미술관

바다를 배경으로 밤하늘의 흐릿한 별들과 그 별빛이 바다에 드리워져 있는 모습, 단순한 형체로 표현된  해안가 나무숲 등이 그만의 독특한 화풍으로 간결하게 묘사되어 있다. 여기에서 뭉크는 밤 풍광을 사진처럼 기록하려고 하기보다는 감정을 포착하려고 시도한다. 화면 전체를 지배하는 검푸른 색조는 풍광이 가지는 신비주의적인 분위기와 멜랑콜리한 심상을 불러일으켜 어떤 예감을 느끼도록 만든다. 대각선으로 비스듬하게 배열된 하얀 담벼락이 전면에 있는데, 거기에는 뭉크가 자주 그리는 주제중 하나인 두 연인들의 그림자인 것처럼 보여지는 형체가 흐릿하게 있다. 이들 연인들이 별을 헤고 있었다면 어느 별 하나에 그들의 영원한 사랑을 빌었음직도 하다. 다양한 농담의 푸른색과 녹색이 한데 어루러져 밤하늘의 인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다음으로는 1922년에 그린 <별이 빛나는 밤>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약간 지형이 높은 집의 발코니 계단 위에서 저멀리 평원 위로 펼쳐진 밤하늘을 조망하고 있는 정경을 그리고 있다. 집안의 불빛 조명으로 발코니 기둥 그림자가 눈 위로 길게 드리워져 있다. 또 위에서 내려다 보고 있는 인물의 얼굴 그림자로 보이는 어두운 형체도 발코니 오른쪽에 보이는데 기둥 그림자와는 방향이 다르다. 왼쪽에도 광원이 하나 더 있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집어 넣은 것으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집 앞의 나무들 사이로 불켜진 창의 불빛이 환하다. 낮은 지대에 위치한 마을의 불빛들도 군락을 이루어 노랗게 빛난다. 아직 완전히 해가 지지 않았는지 지평선 위의 밤하늘은 홍조를 띠고 있다. 그위로 파란 밤하늘이 펼쳐져 있고 아직 하늘 높이 뜨지 않은 별들이 가까이에서 하얗게 빛나고 있다.


이와 거의 구도가 같은 것으로 1922년에서 1924년 사이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는 동명 제목의 다른 버전 작품도 있다. 이 그림에서는 지평선 위의 분홍빛 낙조나 발코니의 기둥 그림자나 인물 그림자가 없다. 밤하늘도 녹색이 감돈다.  별빛도 다소 투박하게 박혀 있으며 전체적으로 선이나 묘사가 거칠게 표현되어 있다.

 

에드바르 뭉크, 별이 빛나는 밤, 1922-1924, 캔버스에 유채,  140 × 119 cm, 뭉크미술관


그런데 이 그림들은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밤>과 구도가 유사하다. 발코니는 강둑으로, 숲과 마을은 강으로 바뀌었고, 밤하늘의 별들도 빛나는 방식만 다를 뿐 비슷하다. 화면을 바짝 당겨 클로즈업시킨 것이나 나머지 소소한 것들을 간결하게 처리한 것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뭉크와 고흐가 10년 터울의 동시대 사람이지만 생전에 서로 만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뭉크가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혹시 고흐가 한때 그의 좌표가 되었을 수도 있다. 이에 착안하였는지 최근에 뭉크미술관과 반고흐미술관은 이 두 대가들의 작품을 한데 모아 "반고흐+뭉크"전을 기획하여 오슬로와 암스테르담의 각 미술관에서 번갈아 전시하기도 하였다. 여기에 전시된 그림들 중에는 그렇게 보아서 그런지 서로 유사한 구도의 그림들이 꽤 눈에 띈다.

 

빈센트 반고흐,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 1888, 캔버스에 유채, 72.5 × 92cm, 오르세미술관


좌표는 지점이다. 현재의 위치에 대한 인식도 좌표로부터 나오고, 앞으로 도달해야 할 곳에 대한 설정도 좌표로 부여될 수 있다. 좌표는 목적지가 되기도 하지만 경유지가 될 수도 있고, 단지 방향만을 지시해 줄 수도 있다. 별들만이 우리들의 좌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어두운 밤길 저멀리서 반짝이는 창가 불빛도 좌표가 될 수 있다. 고흐의 <론강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면 밤하늘에 별이 빛나고 있지만 정작 길을 보여주는 것은 강 건너편 지상의 불빛이다. 그 불빛이 강 물결을 따라 넘실거리며 우리에게 건너오고 있다.


스타를 꿈꾸는 사람에게는 물론 자신이 선망하는 스타들이 다다라야 할 좌표가 될 것이다. 하지만 굳이 스타가 되지 않아도 결코 불행하지 않은 평범한 우리들은 내 주위의 가까운 불빛만으로도 방향을 찾을 수 있다.  삶의 자세를 보여주는 부모나 존경하는 스승, 정말로 멋진 친구나 동료 들도 내 인생걸음을 되돌아보고 방향을 다잡아가는 데 롤모델이 된다. 주위가 캄캄하여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할 때, 어디에서 불빛이 반짝거리며 손짓하고 있는지 한번 찾아보라.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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