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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17. 2016

유혹

55-#03- 윌리엄 드구브 드 뉭크


드구브 드 뉭크, <핑크 하우스>, 1892, 캔버스에 유채

  창은 때로 유혹이다. 춥고 허기진 밤길을 가는 이들에게 따스한 불빛은 그 어떠한 꼬드김보다도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이다. 저 창을 두르려 김 모락모락 나는 밥 한 공기 얻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타닥타닥 장작 불꽃 튀는 난로가나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지친 몸을 누이고 싶은 생각도 간절하다. 하지만 그대, 유혹에 한번 손 내밀면 다시는 길을 떠나지 못하리라.

  어둠 속에 오른쪽으로 창문 불을 환히 밝힌 분홍색 건물이 나뭇가지 사이로 손짓하며 서있다. 왼쪽으로는 짙은 어둠 속에서 다른 창들은 모두 꺼져 있는 가운데 아래로 조그마한 창 하나만이 나뭇잎 사이로 홀로 불을 밝힌 채 떠올라 있다. 어둔 밤하늘 위로는 별들이 점점이 박힌 채 빛을 발하고 있다. 사람은 창 그림자로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윌리엄 드구브 드 뉭크(William Degouve de Nunques)는 밤의 화가이다. 프랑스 태생의 벨기에 상징주의 화가로 밤의 정취를 담은 그림을 많이 그렸다. 19세기말에는 맥닐 휘슬러의 영향으로 밤의 풍경을 그린 그림들이 회화 주제의 하나였다. 이 그림 <핑크 하우스>(The Pink House)가 없었다면, 르네 마그리트의 <빛의 제국>도 없었을 것이라고 이야기들 한다. 드구브의 상상세계로부터 초현실주의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10여년 가까이 지난 다음에야 드구브는 불켜진 창이 붙박이 삶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드구브의 <핑크 하우스>는 이 지점에서 시인 한 강이 「캄캄한 불빛의 집」에서 토로하고 있는 언명과도 맞닿는다.  시인은 이 따스한 불빛의 유혹을 뿌리치고 망설이지 말고 가라고 한다.


  (중략)

 

  가거라


  망설이느냐

  무엇을 꿈꾸며 서성이느냐


  꽃처럼 불 밝힌 이층집들,

  그 아래서 나는 고통을 배웠고

  아직 닿아보지 못한 기쁨의 나라로

  어리석게 손 내밀었다


 - 한강, 「캄캄한 불빛의 집」 부분 -


  안주하지 않고 떠난 길에서 맞는 밤의 정경을 묘사하는 색은 푸른 색이다.   이 색깔은 꿈의 색깔이다.  건너편 창가의  

드구브 드 뉭크, <브뤼헤의 밤>, 1897, 캔버스에 유채, 23.6×35.4cm,

불빛이 강가에 아른거린다. 출렁거리는 불빛 너울을 따라 갖은 상념이 일렁인다. 젊은 날 꾸었던 꿈은 얼마나 찬란했던가. 어떤 꿈들은 단단한 집을 이루고 어둠 속에서도 줄줄이 건재하다. 생각해 본다. 여기서 그만 멈출까. 얼마나, 어디까지 더 가야 하나. 하지만 아무도 답을 주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답할 수 있고, 그것이 답이었음을 자신만이 깨닫는다.

  때로 안주하고 싶었으나, 허용되지 않았던 기억도 있다. 먼바다만 험한 것이 아니다. 풍랑 한번 없을 잔잔한 운하도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운이 따르지 않는다면 일을 당할 수도 있다. 이제는 소용이 닿지 않아 버리고 떠난 폐허 건물의 깨진 유리창들이 을시년스럽다. 마치 이리저리 상처받고 부서진 꿈들 같다. 주인 없는 빈 배만 덩그런히 떠 있다.

드구브 드 뉭크, <운하>, 1894.

  가슴에 품었던 꿈들을 내처 부리기도 하고 새로운 꿈들을 가득 싣고 떠나기도 했던 선창가 불빛은 여전히 유혹적이다. 무릇 모든 길들이 다 그러하지만, 바닷길은 더더욱 앞날을 자신할 수 없다. 이들 뱃길을 가는 이에게 창은 사이렌의 유혹이다. 돛을 접고 오늘 하루를 무리져 같이 보내는 이들이 밝히는 창의 불빛들이 풀어놓은 욕망처럼 넘실거린다. 그대 꿈은 어디에서 닻을 내렸는가.

드구브 드 뉭크, <황혼의 제당공장>, 1917. 55.5×76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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