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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r 18. 2016

장미빛 인생

54-#02-앙리 르 시다네르

앙리 르 시다네르,  <꽃이 핀 집의 식탁>, 1924

  그대, 장미빛 인생을 꿈꾸는가. 장미빛 인생이란 자신이 바라는 삶을 어떤 장애나 어려움 없이 뜻하는 대로 모두 이루면서 사는 인생이다. 원하는 대로 다 성취하는 삶이란 빛나는 것이어서 화려할 수밖에 없다. 그 빛의 색깔은 꽃빛깔이며, 꽃 중에서도 으뜸인 장미꽃 빛깔이다. 물론 장미에는 붉은 장미에서부터 순백의 흰 장미나 정열의 노란 장미도 있으며, 심지어 흑장미까지 여러 가지가 있다. 이들은 색깔은 달라도 모두 화사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미빛 인생을 꿈꾸는 그대 인생은 어떤 빛깔로 화사하고 싶은가.

  이 장미빛 인생을 형상화한다면 어떤 것을 떠올릴 수 있을까. 떠오르는 이미지의 대상물은 대부분 그것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으로 제약되어 인생 자체를 포괄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집은 어떠한가. 상대적으로 인생의 많은 부분을 어느 정도 대변해서 담아내지 않을까 싶다. 집이라고 해서 꼭 으리으리한 궁전 같은 대저택일 필요는 없다. 장미빛 인생을 표상하는 그림을 그린다면, 이 그림처럼 꼭 장미가 아니더라도 각양각색의 만개한 꽃들이 창문을 휘감아 올라가고 있는 집이 되지 않을까.

  앙리 르 시다네르(1862~1939)는 꽃이 만발한 정원이나 집 풍경을 많이 그렸다. 그는 프랑스령이었던 아프리카 모리셔스 섬의 포트루이스 태생으로 짧게나마 에콜데보자르에서 수학하다가 아카데미 화풍의 수련을 거부하고 독자적인 길을 걸었다. 초기 작품은 라파엘전파나 상징주의 색채를 띤다. 로댕의 소개로 우아즈 지역의 역사적인 요새도시인 제르베로이(Gerberoy)로 옮겨와 그 곳에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제르베로이는 장미의 도시로도 알려져 있다. 시다네르는 1901년 3월에 처음 제르베로이를 방문하여 그 해 6월에 아예 세를 얻어 거처를 마련했다가 1904년에 그림에서처럼 장미를 비롯한 꽃들이 우겨진 집을 구입하여 눌러 앉았다. 이후 꽃이 만발한 집과 정원은 다양한 형태로 변주되면서 그의 그림 주제가 되었다. 그림에는 사람들이 점차 사라지고, 도시의 정경이나 꽃만 무성한 고적한 집과 창문에서 바라보는 정원, 식탁, 탁자 위의 화병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인물은 정원이나 집 정경 속의 고요한 적요에 방해가 되었던 모양이다.


앙리 르 시다네르,  <가을의 집>, 1919

  시다네르의 장미꽃 만발한 이 집도 처음에는 창고였던 곳을 사들여 수리하고 개축하여 만들었다고 한다. 장미꽃 인생도 그냥 덜컥 주어지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꿈을 꾸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항상 부단한 노력과 수고스러움이 필요한 법이다. 장미꽃도 심는 것은 물론이요 물 주고 가꾸는 수고스러움을 감내해야 즐길 수 있지 않은가.

  장미의 도시에서 장미꽃 만발한 집의 풍경들을 그린 시다네르는 그런대로 이름도 얻고 나름 여유있는 장밋빛 인생을 살았던 듯싶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4편 「소돔과 고모라」에서도 언급이 되는데, 유명한 파리 출신 바리스타가 그 수입의 대부분을 이 시다네르의 그림을 수집하는 데 쓰고 있다는 묘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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