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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Jun 17. 2016

이중언어

45 - 변월룡

변월룡, 아내와 아들의 독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2016년 한국근대거장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백년의 신화’라는 제목 아래 몇몇 전시회를 기획하였다. 여기에는 1916년생들인 국민화가 이중섭, 한국추상미술의 선구자 유영국과 함께 변월룡(1916~90)의 삶과 예술을 소개하는 전시회도 포함되어 있다. 이 전시회에 갔다가 우연히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그림을 보았다. 그런데 책을 읽어주는 여인과 옆에서 이를 듣고 있는 아이의 생김새가 조금 낯설게 다가왔다. 


이들은 모자 관계로 어머니는 러시아인이고 아버지는 러시아에서 활동한 고려인이다. 화가인 아버지가 자신의 아내와 아들을 그린 것이다. 변월룡은 식민 시대 연해주의 한 유랑촌에서 태어나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미술교육을 받고 그 곳에서 화가이자 교육자로 일생을 보낸 고려인이다. 러시아식 이름으로는 펜 바를렌이다. 그는 일리야 레핀 레닌그라드 회화 조각 건축학교 회화과에서 공부하였으며, 그 곳에서 동급생인 아내 제르비조바를 만나 1944년에 결혼하였다. 그들 부부는 아들 세르게이와 딸 올랴를 낳았다. 피는 못속이는지 아들딸도 모두 부모와 같은 학교를 나와 화가가 되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모국어가 서로 다르면 그 자식들은 이중언어를 배우게 된다. 그림의 아들도 조선어와 러시아어 둘 다를 배웠을 것이다. 러시아인 어머니가 읽어주는 책은 러시아 그림책이나 동화책이지 않았을까 싶다. 이중언어를 배우는 것은 오늘날과 같은 글로벌한 세상에서 남들과는 다른 장점이지만, 그 시절에도 2개 이상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은 차별적인 장점이었을 것이다. 언어는 존재이기도 하다. 많은 재외국민들이 현지에 적응해 생활하면서 모국어를 잃는 모습을 본다.  러시아 국적을 가지고 살았던 변월룡은 유언으로 자신의 묘비에 한글 이름을 새겨 달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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