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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Jun 21. 2016

책없는 독서

46-루시안 프로이드

루시안 프로이드, 책읽는 소녀, 1952, 캔버스에 유채, 20.3 x 15.2 cm, 개인소장

책을 읽고 있다는데 책은 없다. 무슨 수수께끼 같기도 하고 선문답 같기도 하다. 한손으로 얼굴을 짚고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바로 위에서 사진 찍듯이 얼굴만 크게 클로즈업해서 그렇다. 머리카락의 한올한올 느낌을 생생하게 살려내고 있어 관람객이 직접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준다.


루시안  프로이드(Lucian Freud:1922-2011)는 정신분석학의 태두인 지그문트 프로이드의 손자로, 사실주의 초상화가로 독자적인 자신의 이름을 얻었다. 그의 그림은 두껍게 칠한 임파스토( impasto) 기법의 초상화와 구상화가 특징이다. 마치 과학수사와 같은 치밀한 주의를 모든 디테일에까지 기울인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져, 어느 예술사학자는 그를 "실존주의의 앵그르"라 칭하기도 하였다. 그가 초상화를 그리는 방식은 얼굴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진행된다. 해당 인물을 잘 알지 못할 때는 일단 얼굴부터 시작해서 나머지 부분으로 확장해 나가다가 인물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완전해지면 다시 얼굴로 되돌아가 마무리하였다.


여기 화면에 가득한 금발의 이 여인은 화가의 두번째 부인인 캐롤린 블랙우드이다. 이 그림에서는 얼굴 이외의 다른 요소가 없어 그림의 시작도 끝도 모두 완벽한 이해에 기초한 얼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첫 부인인 캐슬린 엡스타인과는 4년 남짓 살다 이혼하고 캐롤린과 결혼하였다. 이 그림을 그릴 때는 아직 결혼 전으로, 그 해 이들은 새로운 열정에 휩싸여 파리로 같이 일종의 도피여행을 떠나기도 했었다. 하지만 캐롤린과도 7년쯤 살다 다시 이혼하였다. 그의 여성편력은 아주 유명하여 공식적으로는 두번의 결혼과 열두명의 여인들 사이에서 모두 열네 명의 자식들을 보았으며, 일설에 의하면 서른에서 마흔명까지도 추정한다 하니, 피카소 못지 않은 애정행각과 생산력을 자랑한다. 그래도 사랑의 파탄으로 그의 마음을 고통스럽게 만든 유일한 여인은 캐롤린이었다. 이혼 이후의 상심을 달래기 위해 그는 술독에 빠졌으며, 주위에서는 혹시 그가 자살을 시도하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했다.


베를린에서 태어났으나 나치를 피해 가족이 영국으로 이주하면서 영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추상화가 대세인 상황에서도 구상화에 천착한 일군의 구상화가들의 그룹인 런던스쿨의 멤버로 활약하였다. 초기의 그림은 대부분 크기가 작았으며 사람이나 식물, 동물 등의 묘사에서 독일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의 영향을 받기도 하였다. 나중에는 부드러운 색깔과 함께 얇게 칠하면서 매우 정확한 선을 보여주는 스타일로 발전되었다. 1950년대부터 다른 모든 것을 배제하고 초상화 작업에 집중하였으며 가끔 누드를 그리기도 하였다. 이후 임파스토를 비롯해 두텁게 칠하는 방식으로 인물의 살 색깔과 질감에 초집중하면서 돼지털 붓을 사용해 보다 더 자유로운 스타일로 변화하였다. 그림의 크기도 점차 커졌다. 초상화의 인물은 그의 삶에 등장하는 이들, 예컨대 친구나 가족, 동료 화가, 연인, 아이들이었다. 그림의 주제에 대해 그 스스로 일종의 자전적 대상이라고 언급할 정도였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희망이나 기억, 관능과 몰입을 다룬 모든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림의 제목에서 이들은 종종 익명으로 처리되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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