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꿈꾸는 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시 Mar 03. 2016

거리의 적요

35 -  로리

가뭇없는 빈 거리에 집의 창문만 커다랗게 그려놓았다. 창에는 흰 커튼이 좌우로 내려져 있고 가운데에는 화병에 꽃이 자리하고 있다. 실내에서 장식해 놓은 화병이지만 마치 지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 듯 시선이 간다. 커튼으로 가리지 않고 창을 통해 실내를 그대로 보여주는 자신감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로렌스 스테펜 로리(Laurence Stephen Lowry: 1887-1974)는 영국의 도시풍경 화가이다. 40여년 이상 그가 살았던 펜들버리와 랑카셔 지역의 도시 및 거리 풍광을 많이 그렸다. 20세기 초의 영국 산업 도시의 정경들을 기록화처럼 남겨 100년전 영국의 산업화 모습을 생생히 볼 수 있다. 도시의 풍경에는 사람들이 등장하는데 한 두 사람이 아니라 떼로 무리져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작은 화폭에 가득 나오다 보니 작고 가느다랗게 묘사되어 마치 성냥개비처럼 보인다. 일명 매치스틱맨(matchstick men)으로 불리우는 성냥개비 사람이다. 어릴 적 놀이 가운데 하나로 책을 펼쳐 해당 쪽의 삽화에 나오는 사람의 숫자가 많은 쪽이 이기는 게임이 있다. 이때 L. S. 로리가 그린 그림이 걸렸다면 단연 일등일 것이다.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거리는 사뭇 교교하다. 방안의 인기척도 없고. 빨간 벽돌 집의 꼭잠긴 문들 하며 똑바로 네모진 창틀이 단아한 가운데 꽃송이들도 조용히 숨을 죽이고 있다. 번잡스런 마음이 고요히 가라앉는다. 그동안 왁자지껄하고 소란스럽던 도심 거리 풍경만을 그리던 화가가 70세가 다된 노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눈에 보이게 된 도시 길가 풍경이다.

 

  로리는 주말에만 그림을 그리는 일명 "일요화가Sunday Painter로 한동안 조롱을 받았다. 은퇴할 때까지 풀타임으로 다른 일을 하면서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그는 부동산회사의 임대료수금원으로 일하다 현금출납계의 책임자로 은퇴하였다. 그림도 야간에 맨체스터시립예술대학과 샐포드 예술학교를 각각 10년씩 다니면서 배웠다. 하지만 이런 조롱에 맞서 스스로 칭하기를 "사람들이 나를 일요화가라 한다지만, 그렇더라도 난 주중에  날마다 그림을 그리는 일요화가이다"라며 굴하지 않았다. 임대료수금원의 직업도 그의 화업에 도움을 주었다. 집세를 받으러 시내를 돌아다니며 보았던 온갖 도심 정경들, 오가는 사람들, 거리의 사건, 가난의 모습들이 고스란히 그림의 소재가 되었던 것이다. 그의 회화 양식은 정통 회화의 전통으로부터 자유로이 벗어난 현대의 원시주의로 평을 받는다. 혹자는 또다른 일요 화가인 앙리 루소가 자연 속의 원시주의를 구가한 것에 빗대어 산업시대 루소라 부르기도 한다.

  그의 이름은 서서히 알려졌다. 왕립미술원 회원이 된 것도 75세가 되어서였다. 하지만 나름 명성도 얻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끝에 여러 차례에 걸쳐 기사 작위나 훈장 수여가 결정되었으나 스스로 이를 모두 거절하였다. 허명을 얻는 데 무심했던 모양이다. 은퇴한 이후 말년 생활도 체셔에 있는 조그만 옛날 집에서 근 30여년 가까이를 그림만 그리며 은둔자처럼 지내다 생을 마감하였다. 그림 속 창 안의 수수한 화병이 꼭 화가를 상징하는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심연보다 깊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