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 데이비드 호크니
온유한 실내 정경이다. 블라인드 형태의 접이식 대형 창 앞에서 두 남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특이하게도 여인이 서 있고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다. 남자의 무릎에는 하얀 고양이가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사실주의적이면서도 단순한 양식이 인상적이다.
이 그림은 데이비드 호크니가 1968년 이후 작업하기 시작한 거대한 이인 초상화 시리즈 중 하나이다. 인물은 패션 디자이너인 오시 클라크와 섬유 디자이너인 셀리아 버트웰로 이들이 결혼한 직후에 그린 것이다. 클라크와 호크니는 런던 왕립미술대학 수학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 사이이다. 고양이 퍼시는 실은 퍼시가 아니다. 다른 고양이의 이름이다. 호크니 생각에 제목으로 퍼시가 더 낫겠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붙였을 뿐이다. 이 그림은 2005년도 영국의 10대 최고 그림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이 그림에 앞서 호크니는 드로잉 습작도 다수 준비하였다. 호크니는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 초상화>와 호가스의 <난봉꾼의 일대기>에 기초해 그림의 구도와 상징을 차용하였다. 벽에는 호가스의 난봉꾼의 일대기를 호크니가 재해석해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백합은 순결의 상징으로서 마침 버트웰도 임신중이어서 수태고지의 묘사와도 연관된다. 반면 클라크의 무릎위 고양이는 부정과 질시의 상징이다. 여기에 어떤 계시가 숨겨져 있었던 것일까. 실제로 클라크는 결혼 후에도 계속 애정행각을 벌여 이 그림이 그려진 지 서너 해 뒤인 1974년 이들의 결혼은 결국 깨어지고 이 그림만 남았다.
고양이의 시선이 꽤 암시적이다. 이인 초상화에서 대개 인물의 시선은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쳐다보고, 그 시선을 받는 사람은 화가나 관람객을 쳐다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는 두 인물이 모두 관람객을 보고 있다. 단지 고양이만 등을 돌리고 창밖을 보고 있다. 창의 풍광은 기대하고 소망하는 꿈의 풍광이다. 하지만 도심의 창 풍경은 이웃집 벽에 막혀 있으며, 그 집의 또다른 창만을 보여준다. 얼굴없는 고양이가 보고 있는 것은 창 너머의 또다른 창이다. 고양이는 이들 부부가 앞으로 각기 다른 창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일러 주려 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