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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시 May 21. 2016

절망

48 - 프랭크 브램리

프랭크 브램리, 희망 없는 새벽, 1888,  캔버스에 유채,  123cm x 168cm, 테이트미술관

빛이 희망이 아닌 절망인 경우도 있다. 날이 밝아 창밖으로 새 어스름 햇빛이 들어오고 있는데, 방안은 더 어두워지고 있다. 바다로 고기잡이 간 남편을 기다리며 밤을 꼬박 새웠는데도 아무런 소식없이 그만 날이 밝았다. 아내는  더이상  몸을 가누지 못하고 시어머니의 무릎에 쓰러져 비탄에  빠져 있다. 아들을 기다리던 어머니 역시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애써 드러내지 않고 며느리를 위로하고 있다. 간밤 폭풍우가 멎고 이제 파도도 잔잔해졌지만 여전히 하늘은 흐리고 구름이 잔뜩 껴있다. 두 여인들의 앞날을 예견하듯이.


1888년 로얄아카데미에서 이 그림이 전시되었을 때, 해설에 존 러스킨의 다음 글이  인용되었다.

 "인간의 노력과 슬픔은  되풀이되네, 대대로 영원히 . 파도는 영원히 출렁거리고, 바람도 아우성치는데. 마음의 믿음은 사라지고 영원히 병들어 가네. 겁없던 삶들이 해변의 수초처럼 쏜살같이 달려가 버리네, 영원히. 그리고 한결같이 모든 외로운 배의 키에는,  별없는 밤과 희망없는 새벽을 지나, 어부 그물에서 시돈 궁전의 먼지에 이르기까지 신의 손이 닿아있어, 천상왕국의 열쇠를 어부의 손에 쥐어 주시네"


펼쳐져 있는 책은 성경이다. 나약한 인간들이 의지하고 위로받는 절대말씀이다. 날이 밝아 식탁 위 촛불이 약해 보이지만 간밤처럼 어둠이 깊을수록 더욱 환하게 비추어 줄 것이다. 신의 손이 그녀들을 잡아 절망으로부터 빠져나오게끔 이끌어 주었기를.


프랭크 브램리(Frank Bramley: 1857–1915) 는 영국 태생으로 뉴린 화파를 주도하였다.  뉴린 화파의 다른 화가들과는 대조적으로 실내 정경화에 일가를 이루었으며, 이 그림에서와 같이 자연과 인공의 빛을 적절히 혼합하여 작업하였다. 이 작품은 색조의 통일성과 미학적 소구력과 함께 감성적이면서도 서사적인 내용의 강렬함 때문에   뉴린 화파의 대표적인 저작중 하나로 오늘날에도  찬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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