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밤의 향락, 카페 콩세르

06-드가

by 유시
드가, 앙바사되르 카페 콩세르, 1875-1885, 종이에 파스텔, 37×27cm, 리옹 미술관

카페 콩세르(cafe concert)는 음악이나 춤, 단막극, 서커스 등의 여러 유흥거리를 제공해 주는 주점이다. 향락적이고 때로 경박하기도 한 이 공간은 동시에 문화적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오페라가 우아한 문화를 대변한다면 카페 콩세르는 그 반대편에서 활기찬 통속적 문화를 이끌었다.

19세기 말에 파리에는 우후죽순으로 카페들이 들어서 최소 24,000여개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 이중 카페 콩세르는 약 200여개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파리 최초의 카페 콩세르는 엘리제 몽마르트르로 1840년에 클리시 대로에 문을 열었다. 그 수가 늘어나면서 이들간의 경쟁도 치열해져 각자 차별화된 요소들을 도입하여 고객들의 관심을 끌려고 애를 썼다. 사람들은 그 곳에서 가수의 노래를 듣거나 무용수나 곡예사의 공연을 보면서 술 한 잔 하는 것을 즐겼다. 화가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많은 화가들이 카페 콩세르를 드나들며 그 풍취를 그림으로 그렸다.

드가, 카페 콩세르(관객), 1876-1877, 종이에 모노타이프와 파스텔, 20.1×41.5cm, 시카고미술관

에드가 드가도 여러 편의 카페 콩세르 관련 그림을 그렸는데, 이를 보면 카페 콩세르의 일반적인 구조를 알 수 있다. 대개는 여느 극장처럼 전면에 가수나 배우가 공연을 하는 무대가 있고 그 바로 아래로 악단이 위치하고 그 뒤로 관객석이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통상적인 극장과는 달리 극장 관객석 주변이나 뒤로 주점의 탁자들이 놓여 있다.

드가, 카페 콩세르, 1876-1877, 모노타이프에 파스텔, 워싱턴, 코코란 미술관

드가가 자주 갔던 카페 콩세르는 앙바사되르(Les Amabassadeurs)와 알카자르(Alcazar)였다. 드가가 화가이자 음악가인 친구 앙리 르롤(Henri Lerolle)에게 1883년에 쓴 편지를 보면, 그곳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를 보러 알카자르에 한번 가보고자고 제안하고 있다. ‘그녀가 그 큰 입을 열면 미묘하면서도 감미로운 영적 목소리가 나오는데, 어디가서 그런 소리와 영혼을 찾을 수 있겠느냐’ 하는 식으로 이 가수를 한껏 찬미하면서 친구를 꼬드기고 있는 것이다.

드가, 장갑을 낀 가수, 1878, 캔버스에 파스텔과 혼합기법, 52.8×41.1cm, 케임브리지, 하바드대학교 포그미술관

마네가 무대를 배경으로 밀어넣고 카페에 온 사람들과 웨이트리스를 주로 묘사하였던 것과는 달리, 드가는 무대의 가수들을 전면에 내세운 그림들을 많이 그렸다. 그의 아버지가 아마추어 오르간 연주자였던 만큼 공연하는 사람들이 배경보다는 주대상으로서 부각되는 경향성이 있는 듯하다. 드가는 기타리스트 로렌조 파강의 연주를 듣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화폭에 담기도 했다.

드가의 <앙바사되르 카페 콩세르>에서도 무대의 배우들과 가수들이 전면에 있고 그 앞에 연주하는 악단, 그리고 이를 관람하는 관객들이 묘사되고 있다. 관객들 바로 뒷 좌석에서 무대를 찍은 사진처럼 그림의 구도를 잡고 있어서 그 자리에 앉아서 구경하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붉은 드레스를 입고 무대 앞 전면에 나서 있는 가수가 앞에서 드가가 친구를 꼬드기면서 언급했던 바로 그 가수이다. 그녀는 에밀리 베샤 또는 테레사라는 예명으로도 불리운 엠마 발라동이다. 이들은 오늘날의 연예인들과 다름없어 인기가 좋은 이들은 큰 명성과 함께 부도 단숨에 거머쥘 수 있었다. 그녀는 1875년 한 해에 5만 프랑이라는 큰 돈을 벌었다.

드가, 카페 콩세르(개의 노래), 1875-1877, 구아슈와 파스텔, 57.5×45.4cm, 개인소장

드가의 그림에는 카페 콩세르의 가수를 직접적으로 다룬 연작이 다수 있다. <장갑을 낀 가수>, <카페 콩세르(개의 노래)>, <녹색의 가수>, <카페 콩세르의 가수> 등이 이에 해당한다. <장갑을 낀 가수>는 제4회 인상주의 전시회의 출품작이기도 했다. 이들 연작은 밤무대이니 만큼 인공적인 무대조명의 효과를 세심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색채에 활기와 강렬함을 부여해 주고 있다. 연작의 모든 그림에서 노래 부르는 가수의 얼굴에 조명이 비추는 부분과 그늘이 지는 부분 사이의 명암 대비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드가, 카페 콩세르의 가수, 1878, 파스텔, 16.8 x 15.9 cm, 개인소장

특히 <장갑을 낀 가수>와 <카페 콩세르(개의 노래)>의 경우에는 무대 바닥 조명이 아래에서 강렬한 빛을 쏘고 있어서 가수의 얼굴이 창백하다 못해 기괴한 느낌마저 준다. <카페 콩세르(개의 노래)>의 그림 부제가 다소 해괴한 점을 들어 여성혐오 성향의 드가가 의도적으로 여가수를 비하한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으나, 여가수가 부르고 있는 노래의 제목을 부기한 듯하다. 개의 앞 발인양 아래로 늘어뜨린 양손도 단순히 개를 흉내내면서 부르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야 나름 우아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다른 그림들을 설명할 수 없지 않겠는가.

연작 가운데 <녹색의 가수>는 특히 색채 대비 또한 두드러진다. 보색의 병치를 통한 색조의 강렬함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색에 대한 드가의 새로운 접근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드레스 하단의 주황색을 가로지르는 녹색의 줄 무늬가 주는 대비 색의 강렬함이 목에 두른 가느다란 녹색 스카프와 상의, 상단 뒷배경의 녹색이 주는 통일감 속에서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반면에 주황색 드레스는 허리 부분의 밝은 노란색과 하단 배경의 어두운 노란색으로 녹아들고 있다. 무대 위에서 비추고 있는 조명으로 인해 얼굴과 어깨, 쇄골에 드러난 음영이 현장의 사실감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다. 이 그림은 1881년 제6회 인상주의 전시회에 출품되었던 드가의 조각 <14세의 작은 댄서>를 연상시킨다.

드가, 녹색의 가수, 1885, 파스텔, 60.3×46.4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카페 콩세르나 가수 연작 그림들은 대부분 파스텔로 그린 것들이다. 드가는 카페 콩세르의 가수들의 동작이나 치장을 표현하기 위해서 파스텔을 사용였는데, 이는 파스텔이 순간적인 인상을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오돌토돌한 알갱이의 질감이 물리적 현존감을 가지면서 그림의 표면에 주제와는 독립적인 감각적 흥미를 준다. 드가는 화학자 친구인 루이지 쉬알리바(Luigi Chialiva)와 함께 파스텔화가 지워지지 않도록 하는 접착제를 만들기도 하였다. 가끔은 스스로 창안한 기법으로 먼저 흑백 모노타이프로 프린트한 다음 파스텔로 윤곽선을 그리기도 하였다.


카페 콩세르는 하루의 일과를 마친 소시민들이 밤에만이라도 신사가 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곳에서는 부르주아에서부터 일반 노동자, 상점 점원, 하인, 심지어 범죄자들까지 온갖 사회계층의 사람들이 한데 어울릴 수 있었다. 카페 콩세르 그림을 보면 부유한 신분을 상징하는 운두모자나 귀부인들의 장식모자, 중산층의 중절모들이 눈에 띈다. 하지만 무대 앞쪽은 음료 가격이 비쌌다. 그래서 점차 무대가 잘 보이는 자리는 주로 부르주아들이 차지하고, 돈이 없는 가난한 노동자들은 무대에서 먼 뒤쪽이나 카페의 바깥 거리에서 노래를 들었다. 드가의 그림은 19세기말 프랑스 사회에서 기존의 신분질서가 붕괴되고 새로운 계급 질서가 탄생하는 사회변동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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