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상주의

몸으로 쓰는 시, 발레

07-드가

by 유시

드가, 솟구쳐 오르는 댄서, 1900년경, 종이에 파스텔, 84.1 x 58.1cm,보스턴 미술관

에드가 드가는 종종 발레리나의 화가로 불리운다. 이에 대해 그 자신은 섬세한 직물을 표현하고 움직임을 가시화하는 기회로 발레리나를 그렸을 뿐이라고 말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별칭을 만족스러워 하기도 했다.

보들레르는 ‘춤은 팔과 다리로 쓰는 시’라고 말했다. 춤은 움직임을 통해서 아름답게 꾸민 전율을 느끼게 만드는 우아함 그 자체이다. 드가의 발레 그림중 특히 파스텔 그림은 바로 이를 확인시켜 준다. 여기에서 발레리나의 얼굴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초상화가 아닌 까닭에 많은 경우에 발레리나의 얼굴은 대부분 흐릿하거나 음영으로 그늘진 윤곽으로만 그려진다. 그에게는 춤이라는 시의 인상이 중요할 뿐이다.

드가, 오페라극장의 오케스트라, 1870년경, 캔버스에 유채, 56.5×4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드가가 발레리나를 그리기 시작한 것은 <오페라극장의 오케스트라> (1868-1869)에서 부터이다. 바순 연주자인 데지레 디오(Désiré Dihau)로부터 초상화 부탁을 받고, 처음에는 단독 그림으로 준비하던 중 당초의 생각을 바꾸어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함께 무대 위의 발레리나까지 그려 넣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배경으로서였다. 심지어 여기에서 발레리나들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다리만 보인다. 이와 유사하게 <오케스트라 단원들>(1870-1871)에서도 무대의 발레리나는 전경에 얼굴이 크게 묘사된 단원들의 무대 배경으로서만 등장한다.

드가, 무용수업, 1870년경, 패널에 유채, 60×90cm,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이후 발레리나들을 본격적인 소재로 한 초기작이 나오는데 그중 하나가 1870년경에 그린 <무용수업>이다. 왼쪽에 인물이 모여 있어 무게중심을 쏠리고 있지만, 오른쪽의 빈 공간이 이를 받아내고 있는 것은 교습중인 발레리나가 앞으로 내딛는 움직임의 힘 때문이다. 그림에 거울을 등장시켜 공간을 확장시키거나 다양한 시점에서 인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다. 이러한 방식은 수업 받는 모습을 그린 다른 발레리나 그림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이제 막 시험이 끝나고 무용선생님이 몇 가지 조언을 해 주고 있는 순간을 그린<오페라극장의 대기실> 에서도 거울이 공간을 확장시켜 준다.

드가, 오페라극장의 대기실, 1874, 캔버스 유채, 32×46cm, 파리 오르세미술관

드가의 발레리나 연작은 다양한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공연중인 것은 물론이고 대기하고 있는 모습, 공연을 준비하거나 연습을 하는 모습, 교습을 받거나 시험을 보는 모습, 휴식을 취하는 모습 등 여러 형태를 취하고 있다.

드가, 발레수업, 1871-1874, 캔버스에 유채, 85×75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발레 수업> 역시 발레리나들이 수업을 경청하고 있는 모습을 그린 것으로, 가운데 지팡이를 짚고 가르치고 있는 이는 당대 최고의 발레리노이자 안무가였던 쥘페로이다. 드가는 그 교습현장의 작은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고 있다. 맨 왼쪽에 피아노 위에 앉아 있는 소녀는 왼손으로 등을 긁고 있고, 그녀 옆에 서있는 발레리나와의 사이에 손과 얼굴만 보이는 소녀가 귀걸이를 매만지고 있는 모습까지도 잡아내고 있다. 뒤쪽으로는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준비를 하거나 잡담을 나누는 모습도 보이고 그 뒤 벽 쪽에는 어린 발레리나들의 어머니인 듯한 여인들도 보인다. 실제로 오른쪽 맨 끝에는 한 어머니가 어린 발레리나를 껴안고 격려하고 있다.

드가, 무대 앞쪽의 꽃다발을 든 발레리나(아라베스크의 끝), 1877, 파스텔로 덧칠된 유화, 67×38cm, 파리, 오르세 미술관

<무대 앞쪽의 꽃다발을 든 발레리나 (아라베스크의 끝)>는 공연을 끝낸 발레리나가 꽂다발을 한 손에 들고 관객들의 박수에 머리 숙여 답례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녀 뒤로는 이미 역할을 끝냈거나 다음 장면을 준비하는 동료들이 보인다.

드가, 푸른 옷의 댄서, 1899, 종이에 파스텔, 65×65cm, 모스크바, 푸시킨 미술관
드가, 막간의 분홍 옷 댄서, 1884, 캔버스에 유채, 코펜하겐, 뉴칼스베아 글립토테크
드가, 허리를 구부린 댄서, 1885, 파스텔, 개인소장

<푸른 옷의 댄서>, <막간의 분홍 옷 댄서>는 무대에서 공연을 준비하거나 연습하는 모습이고, <허리를 구부린 댄서>는 공연중인 모습이다. 파스텔로 그린 댄서들의 의상 색깔들이 각각 파란 색과 분홍색, 노란색으로 통일된 색조를 띠고 있어 화면 전체를 강렬하게 지배하고 있다. 이들 그림은 발레 교습 현장을 중심으로 그린 초기 유화들과는 달리 파스텔을 사용하면서 댄서들을 더욱 직접적인 대상으로 삼아 색조의 강렬함을 다양한 형태로 시험하고 있다.

드가, 무대에서의 발레 리허설, 1874, 캔버스에 유채, 65×81cm,파리, 오르세 미술관

<무대에서의 발레 리허설>은 무대 위에서 무대를 아래로 내려다 보며 조망하는 시점으로 그려져 있다. 실연을 하거나 자기 차례를 기다리며 준비 또는 연습을 하고 있는 발레리나의 다양한 모습을 담고 있다. 이들의 하얀 발레복이 무대 뒤의 어둠과 대비되어 더욱 두드러지게 보인다. 한편으로 명암으로만 드러나는 발레리나들의 얼굴은 감정없이 무표정하게 그려지고 있으며, 때로 창백한 얼굴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오른쪽 무대 끝에 조그맣게 그리져 있어 유심히 보아야만 알 수 있는 나이든 신사가 모자를 쓰고 의자에 앉아 있는데, 조금은 생뚱맞다.

이 신사는 안무가나 연출자가 아니다. 이들은 당시 관행으로 발레리나들을 후원하는 이른바 후원자로서 이렇게 무대 뒤나 대기실 등을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었다. 대개 어린 발레리나들은 가난한 집 딸로 이들의 후원을 받아 무대의 님프나 여왕이 되어 화려한 신분상승을 할 수 있기를 꿈꾸었다. 이들은 그 과정에서 때로 후원자들의 유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드가, 댄서 의상실,

드가, 기다림, 1880-1882, 종이에 파스텔

<기다림>은 이러한 당시 발레리나들의 상황을 단 한 컷으로 설명해 준다. 어린 발레리나와 함께 그녀의 어머니가 대기실의 긴 의자에 앉아서 순서를 기다리는 장면을 담은 그림이다. 발레리나는 아예 얼굴을 숙이고 있고 어머니 역시 모자를 눌러 써서 눈이 보이지 않아 표정을 알 수 없지만, 두 모녀는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상징하고 있다. 그들이 기다리는 것은 단지 차례가 아니다. 그들은 다음에 올 미래의 시간, 즉, 그들의 궁벽한 현실을 뛰어넘을 수 있는 꿈이 실현되는 그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면서 차례가 오면 시험도 보고 연습도 해서 결국 무대에 오른다. 그리고 무대 위에 서면 <솟구쳐 오르는 댄서>에서처럼 그 꿈에 다가가기 위해 날개짓을 하는 것이다.

드가, 연습봉에서의 댄서, 1880년경, 파스텔, 버몬트 쉘번, 쉘번 미술관

드가, 휴식을 취하는 두 발레리나, 1910년경, 파리, 오르세 미술관

드가는 말년에 거의 시력을 잃어갔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이 좋아했던 발레리나 그림을 계속 그렸다. 1910년경의 <휴식을 취하는 두 발레리나>의 경우가 그즈음 그린 작품중 하나이다. 드로잉과 인물이 분리된 듯한 것이 마치 마음속의 환영을 그려 놓은 것처럼 색조까지도 비현실적으로 몽환적인 느낌을 준다. 발레리나는 근 40년 가까이 드가가 즐겨 그려온 소재였다. 누가 뭐래도 그는 역시 발레리나의 화가일 수밖에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밤의 향락, 카페 콩세르